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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함으로 수많은 의미와 의도를 포장한 가수. 어어부 프로젝트

어어부 프로젝트 <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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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부 프로젝트의 새 앨범 <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은 동명의 공연에서 비롯된 음반이다

어어부 프로젝트 <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 >

 

어어부 프로젝트의 새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동명의 공연에서 비롯된 음반이다. 공연에서 진행된 곡들이 여러 번의 편곡과 변주를 거쳤고 그 결과물이 이번 앨범으로 다가온 것이다. 공연이라는 매개가 어떤 식으로든 시각적인 자극을 동반하는 것에 반해 음반의 경우는 메시지 전달의 수단이 음악 외에는 없다. 이러한 한정적인 정보 전달의 범위로 논의가 좁혀진 만큼 앨범은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와 같은 설명을 위한 트랙도 포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어부 프로젝트는 아무 말조차 적혀있지 않은 앨범 커버만큼이나 불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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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불친절함이라는 잣대로 수많은 의미와 의도를 포장했다. 타인이 무심결에 흘린 기록을 주운 타인이 이를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 것이 전체적 기조로서 흐른다. 서사의 객관성은 높아진 대신 듣는 이가 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 수록곡들은 시간 순서에 무관하게 나열되어 있는데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부쳐」에서 건네주는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몇 곡 외에는 특별한 인과관계도 없다. 이는 트랙을 시간 순으로 다시 나열하여 들어도 마찬가지다.

 

난수표 위에 던져진 이야기와 정보의 숲에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각각 끓어오르는 절정을 만난다. 「1001 역지사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장미와 「0815 실시간」의 우짖음은 가장 밀도 있는 단편이다. 「0107 빙판과 절벽」의 몽롱하게 점멸하는 사운드가 묘사하는 혼란과 황망함은 듣는 순간부터 상황의 한복판으로 사람을 몰아넣는다. 「0214 라이타」의 독백은 그대로 무대의 한 장면을 묘사하며 이번 음반의 모태인 공연의 한 장면을 그대로 이입한다. 노래 각각의 모습과 가사는 현실적이면서도 너저분하고 그만큼 또 불편하다.

 

어느 정도는 백현진에게 초점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그가 어어부 프로젝트뿐 아니라 솔로 작품을 통해서도 묘사해왔던 세계는 지금 이곳의 현실이지만 쉽게 볼 수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날 것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극히 현실적인 소재와 언어로 위태롭고 불친절한 가상을 그려내면서 나머지 진실과 의도를 우리의 몫으로 남겨둔다.

 

'앨범을 듣고도 도통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감이 안 온다면, 유감스럽지만 우리의 소통은 거기까지인 것입니다.'라는 백현진의 인터뷰는 결국 어떤 실체를 해석한다는 행위에 대한 회의주의다. 언어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수없이 빚어지는 오해와 착각은 이를 바로잡는 순간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나그네 탐정의 일지를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 화자 역시 해석에 대한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고자 설치한 장치가 아닐까.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이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객관적 정보위에서 끊임없는 소통을 요구한 작품이라면 결국 주관적 해석과 오해를

주장하는 이 글 역시 '거기까지인 소통'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2014/12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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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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