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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4명이 만나면, 연극 <취미의 방>

수상한 네 남자 비밀의 방에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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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던 이야기는 극의 마지막에 또 한 번의 반전을 선사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관객들은 멍한 표정으로 지난 이야기를 되새기며 어지러운 퍼즐 조각을 맞추느라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방은 하나요 사람은 넷이로다

 

무대 위에 커다란 방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 책장에는 오밀조밀 귀여운 건담모형이 가득하고 오른쪽 책장에는 희귀한 고서적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가운데 길게 놓인 주방은 여자들의 로망을 채워주듯 아기자기 하다. 그 앞에는 푹신푹신해 보이는 쇼파와 함께 퍼즐이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다. 이쯤 되면 이 아늑하고 감각적인 방이 누구의 방인지 궁금해진다. 괜스레 방의 주인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방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무대의 불이 꺼지고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네 명의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각자 건담이 있는 곳으로, 주방으로, 쇼파로, 오른쪽 책장으로 흩어진다. 뭐지? 이 방 하나에 사람이 4명? 대체 누가 이 방의 주인인거야? 익숙하다는 듯 각자의 일을 하는 네 명의 남자들을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가득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방의 주인은 특정 인물 한 명이 아니라 네 명의 남자 모두의 방이다. 즉 네 남자 모두 이 방의 주인인 것이다. 네 명의 남자들은 각각 자신들의 ‘취미’를 함께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특이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게 취미인 내과의사 아마노, 건담에 미쳐 건담 프라모델을 만들고 건담 코스프레를 하는 게 취미인 정신과 의사 카네다, 고 서(古書) 모으기가 취미인 자동차 세일즈맨 미즈사와, 그리고 퍼즐 맞추기가 취미인(사실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는) 화장품회사 직원 도이.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네 남자는 아마노의 제안에 의해 한 방에 모여 살고 있다. 방의 이름은 ‘취미의 방’. 말 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만을 즐기고 함께 생활하는 방이다.

 

각자의 취미를 즐기면서 종종 다른 이의 취미생활에 대한 얘기도 나누는 이 네 남자의 표정은 굉장히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물론 도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스포츠, 예술감상과 같은 일반적인 취미 생활부터 귤 껍질 아트, 컵라면 뚜껑 컬렉션 심지어 코로 리코더를 부는 독특한 취미까지 다 해봤지만, 도이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행복한 표정으로 취미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도이는 자신이 이 방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상심해한다.

 

그런 그를 위로하면서 그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라고 세 남자가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도이도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각자의 취미에 몰두하려는 순간, 갑자기 ‘취미의 방’의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여경이 한 명 서있다. 이 방의 멤버 중 한 명인 기노시타가 2주째 행방불명이 된 상태라는 얘기를 전하며 조사에 응해달라고 부탁한다.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고 평화롭게 취미를 즐기던 ‘취미의 방’은 여경 미카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사건의 국면을 맞이한다.

 

취미의방.jpg

 

꼬리에 꼬리를 물고

 

<취미의 방>은 연극 <키라사키 미키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극작가 코사와 료타의 작품이다. 2012년 일본 초연 당시 기발한 사건의 전개, 추리와 코미디의 신선한 결합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 들어온 <취미의 방> 역시 플롯은 일본의 원작과 동일하다. 작품 전체에 진하게 일본문화의 요소가 담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간 중간 일본 특유의 말투와 분위기가 느껴져서 어색하기는 하지만 작품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추리와 코미디가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다. 행방불명 된 기노시타를 찾기 위해 각자가 아는 사실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이 후 그 진실을 파헤쳐 나가면서 추리극의 형식을 띄게 된다. 단순히 취미를 함께 즐기기 위해 모인 것처럼 보였던 네 명의 남자들은 그들이 한 방에 모이게 된 게 결코 취미때문은 아님을, 이러한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 2년 전에 죽은 요코라는 여자와 자신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감춰두었던 비밀이 나타난다.

 

흥미롭지만 극단적으로 흐르는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정신이 없어진다.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헷갈리는 수준을 넘어 극 자체가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 전개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휘한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장본인이자 가장 큰 비밀을 간직한 아마노를 연기하는 서범석은 극의 중심을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건담의 팔 동작 하나만 달라져도 흥분하는 카네다로 완벽히 변신한 남문철은 쉴 새 없이 큰 웃음을 준다. 언변이 뛰어나고 능글맞은 미즈사와,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어리버리한 도이 역의 최대철과 안재영 역시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네 배우의 조합 역시 흠잡을 곳이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이야기는 극의 마지막에 또 한 번의 반전을 선사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관객들은 멍한 표정으로 지난 이야기를 되새기며 어지러운 퍼즐 조각을 맞추느라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웃음이라는 코드 뒤에 버무려진 추리적인 요소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누군가의 질문에 혹시 쭈뼛거린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취미의 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취미의 방>에 나오는 네 남자는 모두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 쓸쓸히 지내는 것보다 이 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는 카네다, 함께 모여 이렇게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미즈사와, 결국 자신이 진정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은 도이,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행복해 하는 아마노. 네 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들처럼 순수하게 무언가에 빠져 즐거움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취미’를 극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시켰지만 복잡한 전개에 가려 그 메시지가 가려진 점이 조금 아쉽다. 1시간 반 동안 그들과 함께한 취미활동은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취미를 즐기는 네 남자는 내년 1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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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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