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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海珍味 삼해진미

강릉의 ‘도루묵’부터 서산의 ‘게국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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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 진귀한 음식을 찾아 떠난다. 저마다 다른 풍경을 간직한 동해, 남해, 서해에는 각양각색의 맛이 무궁무진하다.

東海

강릉, 늦겨울에 맛보는 도루묵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의 매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동해가 아닐까.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대관령 고개를 넘는 순간 푸른 바다가 펼쳐진 동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강릉JC에서 속초 방향으로 10여 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주문진항. 강릉 최대의 항구 주문진항은 사시사철 분주하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는 양미리와 도루묵이 좌판마다 수북이 쌓이고, 한겨울에는 대게와 임연수어가 제철을 맞는다. 홍게잡이가 끝나는 여름이면 오징어잡이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다시 돌고 도는 것이다.


(좌) 동해안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도루묵. 알을 밴 암컷은 구이로, 수컷은 세꼬시나 탕 요리로 즐겨 먹는다.
(우) 주문진항 앞 어민수산시장에서는 어민들이 직접 좌판을 늘어놓고 그날 잡은 수산물을 판다.

주문진항으로 향하기 전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제철을 맞는 도루묵을 만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던 것. “크기가 작은 도루묵은 냉동 보관하기가 쉬워 연중 내내 맛볼 수 있답니다.” 주문진 수산시장 건너편 좌판 골목에서 생선구잇집을 운영하는 윤난실 씨의 말에 안도한다. 마침 갈탄 불을 피운 석쇠 위로 도루묵을 굽는 냄새가 골목 가득 진동한다. 이곳 좌판 골목에선 2만 원 정도면 도루묵과 양미리, 가자미 등 각종 생선은 물론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구이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도루묵은 맛도 뛰어나지만 보는 맛도 좋은 생선이지요. 이렇게 마지막에 배를 갈라주면 먹음직스럽게 알이 톡 튀어나오니까요.” 생선구이가 가득 담긴 접시를 건네며 윤난실 씨가 말을 잇는다. 먼저 불그스레한 알을 품은 도루묵 한 토막을 집어 한입 베어 문다. 오독오독 씹히는 알은 바삭하고 맛이 담백하다. 살점이 많진 않지만 고소한 맛이 아주 좋다. 뼈째 먹는 양미리부터 내장까지 통으로 구운 오징어 통심이까지 동해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동해안의 대게는 12월부터 4월 사이 제철을 맞는다.

좌판 골목 너머로 곧장 이어지는 주문진항. 때마침 대게잡이 어선이 부두로 들어선다. 이내 어선에서 살이 꽉 차오른 커다란 대게를 쏟아낸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3단계로 나눠 플라스틱 상자에 분류하는데, 이 중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은 곧장 영덕으로 보낸다고 한다. 남은 대게는 항구 옆 어민수산시장으로 실려 간다. 어선 주인이 직접 수산물을 파는 어민수산시장은 유통 과정이 없어 값이 저렴하다. 각 상점의 이름은 대길호, 금영호, 성산호 등 각자의 어선명을 그대로 썼다. 조금 전 들어온 어선이 유민호라는 사실도 대게를 실어나른 가게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어민수산시장은 제철 수산물을 한눈에 파악하기에도 그만이다. 임연수어부터 가자미, 도치, 대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거대한 문어까지, 주문진 앞바다에서 갓 잡아들인 싱싱한 수산물이 좌판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로컬 푸드’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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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강릉 주문진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북강릉IC에서 빠져나와 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먹을 곳


-주문진 수산시장 건너편 좌판 골목에는 갈탄 불에 다양한 생선을 구워 내는 생선구이 간이식당이 모여 있다. 생선구이 1접시 2만 원부터.
어민수산시장에서는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대게 1상자 5만 원부터.

포항, 모여서 먹는 국수

포항에서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구룡포항. 외지인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일출을 보거나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 경북 지방 최대 어항으로 명성을 떨쳤다. 세월과 함께 마을 주민은 점차 포항 도심으로 이주했고, 구룡포항의 영광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마을의 규모는 줄었지만 구룡포항은 여전히 활기를 띤다. 이유는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대의 과메기 산지기 때문. 겨우내 구룡포항 주변의 바닷가에서 붉은 맨살을 드러낸 청어와 꽁치를 바닷바람에 말리는 풍경은 이곳의 일상과 같다.


(좌) 과거 청어로 만들어 먹던 과메기는 꽁치를 말린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 구룡포항 어민의 애환이 담겨 있는 모리국수

구룡포의 주인공이 과메기라면 숨은 조연은 구룡포항 뒷골목 어귀의 자그마한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다. “배고프던 시절 구룡포 어민끼리 함께 모여서 먹기 시작해서 모리국수라고 부르지요.” 올해로 47년째 모리국수를 만들어온 까꾸네 식당의 주인 이옥순 할머니가 모리국수의 기원을 들려준다. 원형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이 허름한 어촌 식당은 주말이면 합석은 기본, 골목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구룡포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오로지 모리국수 하나만 준비하기에 메뉴판은 없고, 인원에 맞는 가격만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커다란 양은 냄비를 들고 테이블 한복판에 국수를 내어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냄비에는 뻘건 육수에 납작한 칼국수 면이 가득 들어있다. 국자로 면을 뜨면 국물 아래에 숨어 있던 아귀, 미역치, 명태, 홍합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즘 구룡포에서 아귀가 많이 잡히지 않아 철에 맞는 생선을 같이 넣어 끓였지요.” 매일 새벽 구룡포항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모리국수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것. 후루룩 국수를 입안에 넣고 보니 칼칼한 아귀찜과 얼큰한 매운탕이 적절하게 섞인 맛이다. 통통한 생선 살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해지는 육수의 맛도 일품.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 또한 푸짐하다. “볼품없는 국수 때문에 여기까지들 찾아오는데, 많이 줘야지요. 내가 달리 해드릴 게 있겠어요?” 양은 냄비 하나를 두고 떠먹는 단출한 국수지만 주인 할머니의 이런 따뜻한 인심이 오랜 기간 구룡포의 터줏대감이 된 비결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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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구룡포항까지는 포항 시내에서 31번 국도를 탄 뒤, 나곡서원에서 929번 지방도로로 나온다.

먹을 곳

-구룡포항 인근에는 과메기 장터가 부두 외곽에 늘어서 있다. 과메기 20마리 1만 원부터.
까꾸네 식당의 모리국수는 아귀 등 다양한 해산물을 칼국수 소면과 함께 푹 끓여 만든다. 식당 인근의 구룡포 양조장에서 만드는 탁주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모리국수 1만2,000원부터(2인분 기준), 054 276 2298.


南海

통영, 술 한잔 해산물 한 입

통영에서 단 한 번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물메기탕, 도다리쑥국, 멍게 비빔밥, 싱싱한 생굴… 해산물의 무궁무진한 보물창고 같은 통영에서 한 가지를 고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훌륭한 대안이 하나 있다. 통영만의 독특한 술집 문화라 할 수 있는 다찌집으로 향하는 것. ‘선 채로 술을 마신다’라는 뜻의 일본어 ‘다찌노미(立飮み)’에서 유래한 다찌집은 과거에 빠르게 술안주를 내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해산물이 풍부한 통영에서는 자연스레 술안주로 해산물 요리를 즐겼고, 술을 시킬 때마다 주인이 알아서 안주를 내주는 다찌집이 하나의 지역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동피랑 마을에서 내려다본 통영 강구안 항구의 풍경

통영 강구안 항구 옆 항남동의 골목 안쪽에는 현지인이 즐겨 찾는 다찌집이 몰려 있다.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벅수실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찌집의 위력을 실감한다. 쏨뱅이무침, 과메기, 죽이 나오더니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참숭어전, 굴찜, 해삼 내장, 밀치(가숭어) 회가 차례로 상 위에 차려진다. 연이어 가자미구이와 물메기탕까지, 널찍한 상이 순식간에 해산물의 격전장으로 뒤바뀐다. “이것도 한번 드셔보세요. 통영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랍니다.” 벅수실비의 주인 김순점 씨가 사과와 양파를 간장에 버무린 꽃게 회를 하나 더 내온다. 보통의 간장 게장과 달리 상큼한 맛이 색다르다. “물메기탕은 조미료가 따로 필요 없어요. 물메기만으로 시원한 맛을 내거든요.” 국자로 물메기탕을 떠 주며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살짝 물메기를 건드리니 부드럽게 살점이 떨어진다. 국에서는 은은한 남해의 향이 감돌고, 물컹한 물메기 살은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통영의 독특한 술집 문화로 남아 있는 다찌집에선 풍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술은 적당히 인원수에 맞춰 파란 플라스틱 원통에 몇 병씩 담아서 내준다. 거나하게 술상을 벌인 옆 테이블의 현지인이 말을 붙인다. “다찌집은 늦게 올수록 손해예요. 재료가 떨어지기 전에 와야 훨씬 푸짐하게 먹을 수 있거든.” 이미 상 위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 일행의 상차림에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이다. 술 1병을 통에서 집어 들고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 삼아 1잔 기울여본다. 경남 지역 소주 ‘좋은데이’를 빈 잔에 채우니 오늘 밤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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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통영 강구안 방면으로 가려면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통영IC에서 나오면 된다.

먹을 곳

벅수실비는 10여 년 동안 통영 현지인에게서 사랑 받아온 다찌집이다. 기본 상차림 6만 원, 055 641 4684.

장흥, 매생이탕 한 그릇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전라도에 진입하는데,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몽글몽글하게 내리던 눈발이 점점 거세지더니,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보성을 지나 장흥과 가까워지자 눈발이 서서히 가늘어지고, 남해와 맞닿은 내저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완도와 고흥 사이 내륙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한 장흥은 겨울철에도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아 매생이 양식에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췄다. 얼핏 파래 같기도 하고, 가는 미역 같기도 한 매생이가 남도의 별미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장흥 내저 마을 앞의 매생이 양식장에선 겨우내 수확을 한다.

내저마을은 장흥 최대의 매생이 산지.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 선창에서는 매생이 세척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선창 한복판에 벼를 터는 탈곡기처럼 생긴 세척 기계 안으로 양식장에서 막 거둬들인 매생이를 차곡차곡 집어 넣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이 외딴 어촌 마을에서 일하는 모습이 영 낯설다. “방학 동안 친구 아버지 댁의 일손을 돕고 있어요.” 약 50가구가 모여 사는 내저마을에서 매생이 양식업에 종사하는 곳은 40가구 정도. 이렇게 매생이를 수확하는 겨울철이면 타지로 나간 식구를 모두 동원해 매생이 수확에 집중한다. 선창에 정박한 모터보트는 매생이 양식을 위한 중요한 운송 수단. 양식장을 직접 보고 싶어 바다로 막 출발하려는 삼봉호를 얻어 탄다. 약 5분쯤 연안을 따라 돌아 들어가니 잔잔한 바다 위로 대나무를 줄줄이 세운 매생이 양식장이 보인다. 마침 양식장에서는 한 부부가 배 위에서 매생이를 거둬들이고 있다. 몸을 배에 반만 걸친 채 물속에 잠긴 매생이를 일일이 손으로 훑어내는 중이다. 고된 채취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겨울철이면 이렇게 보통 하루 4~5시간씩 배 위에서 보내야해요. 몸이 힘들지만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면 또 마음이 편하답니다.” 내저마을에서 매생이 양식업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는 장삼화 씨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한다.


칼슘과 철분이 풍부한 매생이탕

장흥에서는 정작 매생이 전문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매생이가 너무 흔해서 일반 식당에서 기본 국과 반찬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수소문해 내저마을의 매생이로 요리를 내는 장흥 읍내의 식당으로 향한다. 매생이탕 국물을 한술 떠 입안에 넣어본다. 끈끈한 식감이 낯설면서도 깊은 바다 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릇을 비우는 동안 고요한 내저마을 앞 남해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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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장흥 내저마을로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장흥IC에서 나온 뒤 23번 국도를 타고 대덕읍 방향으로 간다.

먹을 곳

-장흥토요시장 안에 있는 끄니걱정은 인근의 한우 직판장에서 사 온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삼합 전문 식당이다. 내저마을에서 수확한 매생이로 끓인 매생이탕, 매생이떡국, 매생이전을 별도로 주문해 맛볼 수 있다. 매생이탕 6,000원, 061 862 5678.


西海

영광, 굴비의 참맛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놓고 쳐다보며 식사를 했다는 자린고비의 일화가 전해지듯 예나 지금이나 굴비는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귀한 음식이다. 특히 영광의 법성포에서 나는 굴비라면 더욱 그렇다. 법성포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변에는 규모가 큰 굴비 덕장이 늘어서 있고, 시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비 직판장과 식당의 간판 아래에는 굴비가 곶감을 말리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많은 굴비가 모두 진짜 영광 굴비란 말인가. 나처럼 의심 많은 이를 위해 굴비를 묶은 두름마다 영광 굴비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이 붙어 있다.


물이 빠져나간 법성포항의 풍경

과거 법성포 앞 칠산 바다에서 조기 조업이 성행했지만 최근에는 추자도나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참조기로 굴비를 만든다. 영광에서 잡은 조기는 아니어도 여전히 이 지역의 굴비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광 굴비를 으뜸으로 치는 까닭은 바로 천혜의 염장 조건 덕분이지요. 영광의 염전에서 나는 품질 좋은 천일염으로 참조기를 염장해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00일에 걸쳐 서해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말립니다.” 법성포굴비정식에서 일하는 영광 토박이 서준영 씨가 설명한다. “섶간이라고 하는 염장을 할 땐 조기의 아가미에 먼저 소금을 치지요. 이것은 아가미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굴비를 말리는 시간이 저마다 다른 이유는 구이와 찜, 보리굴비 등 조리 용도에 따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조기를 보통 짚으로 매달아 말렸기에 자연스레 조기의 허리가 굽었고, 그래서 굴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 한다.


(좌) 참조기를 염장해 건조하는 영광 굴비
(우) 법성포의 굴비 정식에는 굴비를 주재료로 만든 다채로운 요리가 포함되어 있다.

법성포굴비정식은 굴비를 기본 재료로 다채롭게 상을 차려내는 곳이다. 구이는 물론, 요즘 흔히 보기 힘든 보리굴비, 조기젓갈, 조기맑은탕까지. 귀한 굴비를 여러가지 요리로 맛볼 수 있어 그야말로 호사다. 보리굴비는 녹차에 말아 먹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서준영 씨는 강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영광에서는 보리굴비를 그냥 먹거나 찬물에 말아 먹습니다. 굴비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다른 맛을 첨가해선 안 돼요.” 이어 굴비구이를 제대로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머리를 뚝 잘라낸 뒤,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살점을 툭툭 발라낸다. 영광 굴비의 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젓가락으로 건드려도 잘 으스러지지 않는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굴비에 집중하느라 간장게장, 홍어삼합 등 다른 진귀한 요리에 도저히 한눈팔 틈이 없다. “좋은 음식이란 요리 솜씨가 아니라 좋은 재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법성포에서 말린 참조기로 만들어낸 영광 굴비를 실컷 맛보고 나서야 서준영 씨가 처음 해준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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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영광 법성포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영광IC나 함평IC로 나온 뒤 22번 국도를 타고 법성면 방면으로 가면 된다.

먹을 곳

-법성포항 앞 간척지에 3년 전 문을 연 법성포굴비정식에서는 굴비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낸다. 영광 지역에서 주로 먹는 참모시 송편과 법성포 전통 증류주 토종도 맛볼 수 있다. 7만 원(2인), 061 356 7575.

서산, 진국이란 이런 것

서산 간월호의 방조제를 지나는 순간 멀찍이 그림 같은 풍경과 마주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절 간월암 뒤로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사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육지로 향하는 길이 열리고 닫힌다. 이곳의 황홀한 풍경 너머에는 특별한 별미가 하나 숨어 있다. 서산을 비롯해 인근의 당진, 예산 등 이 지역 갯벌의 싱싱한 굴로 담근 어리굴젓이다. 특히 간월암 인근 지역에서 채취한 굴로 만든 어리굴젓은 과거 임금에게 올릴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김장철에 담근 게국지는 솥에 푹 끓여야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어리굴젓 외에도 서산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향토 음식이 한 가지 더 있다. 이 지방에서 겨울철 김장을 할 때 함께 담그는 게국지가 바로 그 주인공. 서산 앞 갯벌에서 쉽게 잡히는 능쟁이 게와 각종 해산물, 배추를 함께 넣어 담그고, 이렇게 김치와 같이 담근 게국지는 바로 먹지 않고 찌개로 끓여서 먹는다. 서산시청 앞 골목 어귀에 있는 진국집은 20년 넘도록 게국지 백반을 내는 곳.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적한 골목과 달리 식당 안은 게국지가 나오길 기다리는 이로 왁자지껄하다. 안쪽 방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 한 분이 게국지부터 호박찌개, 계란찜, 된장찌개까지 뚝배기 네 가지와 반찬이 담긴 커다란 원형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간월암 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게국지의 첫맛은 오랜 묵은지를 먹었을 때처럼 시큼한 맛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게국지도 김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숙성됩니다. 철마다 맛이 다른 셈이죠.” 진국집을 운영하는 조이순 할머니의 아들 가삼현 씨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게국지를 비우며 말을 붙인다. “밥맛이 없을 때 이만한 게 또 없더라고요.” 정말이지 게국지를 조금씩 먹다 보면 어느새 시큼하던 첫맛이 사라지고 짭조름한 해산물 향이 듬뿍 밴 배춧잎이 입맛에 착 감긴다. 함께 나오는 호박찌개도 서산의 별미긴 마찬가지. 늙은 호박의 껍질을 발라내고 소금에 절여 새우젓으로 간을 해 푹 끓여 내는 호박찌개는 구수하면서 달달하다. 들깨를 듬뿍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별미 중 하나. 이렇게 숟가락질에 쉴 틈이 없다 보니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우고 어느새 공기밥을 하나 더 추가하고 만다. 진국이라 하면 이렇게 밥맛을 돋우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식당 밖으로 나와 단층 건물의 낡은 간판에 쓰인 ‘진국집’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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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서산 간월암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홍성IC에서 나와 서산 A지구 방조제를 건넌다.

먹을 곳

-간월도 일대에서 채취한 굴로 만든 어리굴젓은 서산 지역 최고의 특산품이며, 간월도 길을 따라 직판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500그램 1만2,000원.
-게국지 백반을 전문으로 내는 진국집은 인근 동부시장에서 해산물 등 식자재를 미리 가져다주면 원하는 요리도 만들어준다. 게국지 백반 1인분 7,000원, 041 664 4994.

고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정수임은 세계 곳곳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포착해온 여행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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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3월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광활한 호주 대륙 동남쪽 끝에서 240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 섬. 호주의 6개 주 중 하나인 태즈메이니아 주는 손꼽을 만큼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전체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을 정도. 주도는 호바트(Hobart)로 야생 탐험을 시작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시지만 지난해 론리플래닛은 호바트의 자연보다 예술적 면모에 주목하며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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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론리플래닛매거진

론리플래닛 매거진은 세계 최고의 여행 콘텐츠 브랜드 론리플래닛이 발행하는 여행 잡지입니다. 론리플래닛 매거진을 손에 드는 순간 여러분은 지금까지 꿈꿔왔던 최고의 여행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 영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인도 등 세계 14개국에서 론리플래닛 매거진이 제안하는 감동적인 여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월간) : 3월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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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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