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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성의 초석을 다지다 - 나스(Nas)

‘뉴욕 힙합의 진정한 제왕’ 나스(Nas)의 힙합사상 최강의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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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의 데뷔 앨범은 당시 그의 실제 삶과 철저히 맥을 같이합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마약, 총격적, 술 등으로 얼룩진 일상을 냉정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흑인들의 삶에 대한 메시지는 나스 랩의 고유한 특성과 만나 보다 통렬하게 다가옵니다. 치밀한 라임 배열과 기민한 플로우로 대표되는 랩 스타일은 첫 번째 앨범에서부터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죠. 이번 주에는 1994년에 발표된 나스의 데뷔 앨범 <Illmatic>를 소개해드립니다.

나스(Nas) <Illmatic> (1994)


힙합이라는 경계 안에서 랩 게임을 벌이는 각양각색의 래퍼들 중에서 ‘똑똑하다’라는 이미지로 인식된다는 것은 단순한 표상을 뛰어 넘는 이해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나 최근에 와서는 커먼(Common), 모스 데프(Mos Def),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칼리지 힙합(College Hip-Hop)이라고 명명된 구획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철학적이고 사회참여적인 결과물들이 자칫 경박스럽고 퇴폐적으로 치부되어온 힙합의 이미지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지성적이고 이지적인 감성으로 충만한 음악들은 그러나 흑인 내부 사회 안에서조차 일부 식자층에 의해서만 선호될 수 있는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고, 이는 ‘college’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어감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났다. 흑인 공동체 구성원끼리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벽이었고, 대도시의 빈민가에서 주류사회로 편입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대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좀 더 일상적인 현실을 음악으로써 표현해주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나스(Nas)는 데뷔 앨범인 <Illmatic>을 통해서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뉴욕의 퀸스브리지(Queensbridge)에서 늘 지켜봐온 하류인생들의 삶을 놀라울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발화(發話)한다. 그의 가사는 형이상학적이지도 않고 난해하지도 않다. 재기 넘치는 메타포를 사용할 뿐이다. 자기 현실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그를 포위하고 있는 삶 자체를 이방인의 눈이 아닌, 내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마약, 술, 담배, 경찰, 총격전’은 폭력이 일상화된 그의 삶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단어들이고, 음악과 실제 삶의 이질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황폐한 도시 빈민의 문제나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대신, 냉정하면서도 혹은 담담한 어조로 사실적인 묘사를 늘어놓는다. 반면에 자신과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이 반목과 갈등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 경우에는 형제애와 연대감을 나타내는 진실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꼬마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는커녕, 마약을 파는 동네 형들을 역할모델로 삼고, 교도소에 있는 친구의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고뇌의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 현실 하나하나가 <Illmatic>을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소재들이다.

이러한 날것의 이미지는 정연한 비트 속에서, 쉴 틈을 주지 않는 치밀한 래핑으로 전이된다. 기본적으로 재즈와 소울풍의 비트가 피트 록(Pete Rock),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큐 팁(Q-Tip),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에 의해서 제공된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인 올루 다라(Olu Dara)의 영향을 받아, 정통적인 흑인 음악의 뿌리는 효과적으로 답습하면서도 결정적인 방법론의 측면에서 나스만의 랩 스타일로 승화하는 과정이 전체적인 앨범구조이다.

나스의 랩 스타일은 둔탁하면서도 바운스를 느낄 수 있는 드럼 비트 안에서 전개되는 치밀한 라임 배열과, 정박과 엇박을 자유자재로 변환하는 플로우(Flow)의 기민성을 바탕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다소 심심한 비트일수도 있지만 그 안에 리듬감을 최대한 끌어내는 래핑은 청취자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동력이다.

피아노 건반 소리의 악센트를 쉬지 않는 라임과 조화시키며 앨범 서두를 장식하는 「N.Y. state of mind」 와 업 템포의 기본 비트 안에서 꽉 죄인 래핑으로 질주하는 「Represent」 가 효과적인 예이다. 그런 와중에도 수감 중인 친구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으로 작사한 「One love」 와 재즈풍의 루프와 스크래치 파열음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The world is yours」 에서는 절제된 플로우로 시적으로 포장된 메시지를 유연하게 안착시킨다. 상황에 따라 변환이 가능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조밀하고 집약적인 랩 플로우의 매력은 <Illmatic>이 1994년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청취자의 귀에 질리지 않고 매순간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될 것이다.

결국 <Illmatic>은 상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나스의 고유성을 견고하게 다지는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내용의 진정성을 담보로 획득한 작품적ㆍ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데뷔 앨범은 나스의 이후 결과물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척도로써 참고하게 되는 망령이 된 것도 사실이다.

후속 결과물들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던 청취자들은 무엇보다도 <Illmatic>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날선 가사들과 래핑을 원했지만, 일시적인 방향 선회는 나스의 고유성에 의문을 가할 정도의 신랄한 비판으로 돌아왔다. 나스를 ‘칼리지 힙합(College hiphop)’과 ‘클럽 뱅어(Club banger)’들과 구분하게 했던 거리의 언어가 곧 <Illmatic>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어수선 했던 그의 입지와 방향성은 2001년, 다시금 심기일전한 <Stillmatic>에 와서야 재차 강화된다.

글/ 홍혁의 (hyukeui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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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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