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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처럼 소탈하고, 조금 까칠한 ‘작가의 집’ 방문기

겉치레를 벗은 ‘현대 미국 문학’의 속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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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획 의도를 보고, 작가의 집이 무슨 그리 대단한 잘못이냐, 굳이 비판을 해야겠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비판적으로 보아야 비로소 깊숙하게, 생동감 넘치게 볼 수 있다는 역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자 앤 트루벡에게 있어 비판 정신은 깊은 애정과 탐구 정신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의 기획 의도를 보고, 작가의 집이 무슨 그리 대단한 잘못이냐, 굳이 비판을 해야겠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비판적으로 보아야 비로소 깊숙하게, 생동감 넘치게 볼 수 있다는 역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자 앤 트루벡에게 있어 비판 정신은 깊은 애정과 탐구 정신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비판 수위가 낮은 것은 아니다. 강도가 무척 세다. 비판의 지점과 수단도 참 다양하고 정교하게 준비되어, 이 책 앞부분을 읽다 보면 ‘작가의 집’ 같은 건 정말 없어져야 되나, 성급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딴 작가의 원고지를 가져다가 흩뿌려놓은 월트 휘트먼의 집, 가짜 역사 안내판을 버젓이 세워놓은 마크 트웨인의 집, 방문객이 타자기 좀 쳐보자고 뇌물을 찔러주는 헤밍웨이의 집 등에서 벌어지는 기만과 장삿속에 읽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문학이라는 고귀한(?) 영역을 다루는 사람들의 속물성과 무지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어느 쪽인가? … 카스트로가 압수한 물건들로 가득한 헤밍웨이의 쿠바 집을 도와주는 것이 야만인가? 헤밍웨이의 아이다호 집이 박물관이 되지 못하게 막은 부자들이 야만인가, 혹은 거실을 자살의 순간 그대로 보존한 당국이 야만적인가?
-「chapter 5」

마크 트웨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미주리 주 한니발에는 그 입구부터
“미국의 고향, 한니발로 초대합니다!”와 같은 광고판으로 가득하다

이런 개별적인 문제들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들도 제기된다. 작가의 집을 경멸했던 작가를 위해 작가의 집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진정성을 조롱했던 작가를 진정성 있게 기리는 태도는 어떤가? 작가의 정치관과 작품을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작가의 개인사나 자택보다는 작품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많은 돈이 드는 박물관 유지보다는 작가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드는 일이 더 뜻있지 않을까?

이 책은 분명 작가의 집에 대한 비판과 냉소에서 출발하지만, 문학에 대한 위선적이고 감상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답답해하는 저자 앤 트루벡의 모습은 저명한 대학의 교수라기보다는 문학에 갓 입문한 학생마냥 열정적이다. 결국 이 책은 문학적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순결한(?) 의도에서 쓰인, 대단히 영리한 작전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앤 트루백의 여행은 문학가들의 일생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관광안내인과 동료 방문객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인생사까지 더해져 감동적인 수많은 이야기로 직조된다. 즉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평범한 문학 애호가인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다.


아이다호 케첨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은 자살한 그가 금방이라도 돌아올 듯한 장면을 소름끼치게 연출하고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 저자의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어 간다. 소녀들이나 읽는 책의 저자로 알았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집에서 그녀가 얼마나 복합적 면모를 지닌 작가였는지 새로이 발견하고, 잭 런던이 말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일구었던 농장을 방문하여 불멸에의 욕망과 문학의 몰입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관광 부흥을 맞게 된 도시, 그리고 침체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도시들을 방문해서는 도시와 역사와 문학, 공동체의 정치학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어 마지막 장에서는 가상현실게임까지 들어가며, 꼭 물리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작가를 추모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탐색한다.

독자를 위한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 책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기 위해선 처음부터 읽는 것이 좋겠지만 독서의 재미를 위해서는 뒤부터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여러 곳에서 저자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 책은 그런 내키는 대로의 독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는 책이다.

읽고 나면 세상이 좀 다르게 보이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번역하고 나서 문득 관심이 솟구쳐 다른 작가의 집에 관한 책을 몇 권 찾아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올 여름 휴가는 국내 작가의 집들을 돌아보는 여정을 짜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이 책은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제 1권이다.

2013년 여름
옮긴이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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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앤 트루벡 저/이수영 역 | 메디치미디어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된 바 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문학 교수인 저자 앤 트루벡은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기대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대가의 ‘문학 성지’에 대해서라도 과감하게 독설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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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앤 트루벡> 저/<이수영> 역11,700원(10% + 5%)

겉치레를 벗은 ‘현대 미국 문학’의 속살을 보다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된 바 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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