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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수목원은 ‘선물로 받은 정원’

아침고요수목원의 365일, 정원의 일상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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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꽃과 나무 그리고 나비와 새들이 가득한 정원에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마냥 어린애처럼 들뜨고 행복했던 경험을 수채화처럼 그려 적고, 때로 힘들고 낙담이 되었을 때 정원이 내게 일깨워준 깨달음을 통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는지를 기록한 일기다. 이 책을 손에 쥔 독자들도 내가 경험했던 바대로 글로 적은 정원에서 행복을 느끼고, 꽃과 나무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말을 같이 들으면 좋겠다.

하경전망대_ⓒ아침고요수목원

창밖을 보니 우윳빛 안개가 온 숲을 감싸고 있어 앞산의 능선이 겨우 보일 듯 말 듯하다. 낮은 담장 위로 올라온 홍자두나무가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자작나무는 연둣빛 새순과 함께 굵은 실 같은 꽃을 사슬처럼 내려뜨린다. 덩치가 큰 잣나무들 사이에서 용케도 하늘을 차지한 쪽동백이 검은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여린 잎을 달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난히 늦게 온 봄이라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들에 생명의 기운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니 위대한 생명의 섭리에 눈물이 나도록 감격스럽다. 어젯밤엔 올봄 들어 처음으로 소쩍새도 울었다.

남편과 함께 아침고요를 만들고 꾸려온 지 그 간 십수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숲과 정원에서 매일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는 풍경과 소리는 오감을 통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것들은 낮은 울림이 되어 가슴속을 자꾸 맴돌다 위로 솟구치려는 충동을 일으킨다.

어린 시절, 방학숙제 외에 일기라고는 써본 적이 없던 내가 종이 위에 그 울림을 적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 몇 년 전부터 정원일기를 간간이 적어왔다. 그 일기들이 모여 책이 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아침고요에 사는 나무들과 풀꽃, 곤충과 새들 그리고 이것들을 품어 안은 정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화연_ⓒ아침고요수목원

정원은 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세와 부를 소유한 제후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황제나 영주들이 힘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사랑하는 왕비나 공주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대단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정원을 만들고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원을 자신이 만들어서 아내에게 선물하겠다는 남편의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농담 같은 감언이설에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던 나는 한번 말려보지도 못하고 그 험난한 고생길에 동반자가 되고 말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근근이 마련한 집 한 채와 작은 과수원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정원을 만드는 것은 정말 힘겹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무리 쏟아부어도 턱없이 모자라는 자금도 문제였지만 예상치 못한 수많은 장벽이 앞길을 막았다.

힘에 겨운 남편은 자신의 성경책에 “하나님! 이 홍해를 건너게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문을 적어놓고 신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삽질을 하며 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미완성인 채로 아침고요를 개원하고 난 후 나는 정원에서 김을 매다가 손님이 오면 매표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식당에서 밥도 만들어 팔기까지, 일인다역의 전천후 원장을 맡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은 두렵지만 가난한 심정을 안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길이 끝난 것 같은 지점에서도 길은 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년간 힘겨운 삶을 부둥켜안고 견디는 동안 정원과 자연은 내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행복을 선물했다.

하늘정원_ⓒ아침고요수목원

남편은 나에게 종종 “나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정원을 만들어 선물한 남자”라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공치사를 웃으며 늘어놓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주제 파악도 못한 채 정원을 만들겠다고 해서 마음고생, 몸 고생을 실컷 시켜놓고, 선물은 그게 무슨 선물이냐”라고 남편에게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정원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남편이 내게 말한,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던졌던 겸연쩍은 그 공치사가 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정원에 피고 지는 무수한 나무와 풀꽃들,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원의 풍경들과 나누었던 교감과 대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얻은 안식과 평화는 내게 그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도 고귀한 선물이 되었다. 이제는 험한 길을 돌아서 결국 내 손에 분수에 넘치는 선물을 안겨준 그리고 힘겨운 길에서 넘어져 심하게 다친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꽃과 나무 그리고 나비와 새들이 가득한 정원에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마냥 어린애처럼 들뜨고 행복했던 경험을 수채화처럼 그려 적고, 때로 힘들고 낙담이 되었을 때 정원이 내게 일깨워준 깨달음을 통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는지를 기록한 일기다. 이 책을 손에 쥔 독자들도 내가 경험했던 바대로 글로 적은 정원에서 행복을 느끼고, 꽃과 나무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말을 같이 들으면 좋겠다. 그래서 독자들의 가슴에도 정원이 안겨주는 선물인, 사랑과 안식 그리고 평화가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2013년 5월
신록이 가득한 아침고요에서 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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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정원일기 이영자 저 | 샘터
1996년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 자락에 문을 연 아침고요수목원. 10만여 평의 대지에 약 5천여 종의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진 이 ‘낙원을 꿈꾸는 정원’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수목원이다. 아침고요수목원 이영자 원장이 출간한 《아침고요 정원일기》에는 20여 년 가까이 아침고요의 수많은 꽃과 나무들을 가꾸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며 울고 웃으며 함께한 소박한 일상이 담겨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에 자리 잡은 20여 개의 정원과 그곳에 담긴 꽃에 대한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도시에서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진심이 담긴 생생한 자연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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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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