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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면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까?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공간과 시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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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여행에 재미를 더해 주고, 여행의 기억들을 더 소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어 두고두고 펼쳐 보게 할 것이며, 그렇게 펼칠 때마다 미소를 자아내게 해 줄 거라는 등등 이것저것 늘어놓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장점을 열거하기 시작하면 도리어 매력이 반감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하루키나 칼비노 같은 소설가들은 한 번도 ‘글을 권하는 글’을 쓰진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이들을 글쓰기의 세계로 강렬하게 유혹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그림 여행이란, 대가들의 명화를 찾아다니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낙서라도 직접 끼적이며 다니는 여행, 그림을 그리면서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르는 여행, 여행 중 어느 날엔가는 과감히 사진기를 숙소에 팽개치고 포켓용 스케치북과 연필만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홀연히 문을 나서는 여행……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림 여행이라 부른다. 가끔 사람들에게 그림 여행을 권해 보면 돌아오는 반응이 한결같다.

‘난 그림 못 그려.’, ‘귀찮아.’, ‘사진기가 있는데 왜 굳이……?’

하지만 조금만 더 얘기를 나눠 보면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도 사실은 과거에 그림을 좋아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그림과 친해지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 누가 이들을 그림과 담 쌓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이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지금 이 책을 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난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림은 누가 가르쳐준다기보다 스스로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여행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림을 못 그리도록 막는 장애물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아주 많다. 손을 쓰는 인류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특권을, 그 누구도 박탈당해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치 여행의 권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특권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망각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보자. 그림이란 뭘까? 그림은 명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동사이기도 한 말이다. 나는 이런 구조의 말들이 좋다. 꿈을 꿈. 삶을 삶. 그림을 그림. 이런 말들에는 결과와 과정을 동등하게 중시하는 뜻이 읽힌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이라고 하면 대개 종이에 남는 결과물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동, 더 자세히 말해 그리는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변화이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기어 변환을 하듯,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람은 다른 시간 속을 걷게 된다. 이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이 종이에 그럴싸한 무엇을 남기는 결과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아, 이 사람은 지금 다른 시간을 필요로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고도의 집중 상태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집중도 비집중도 아닌 아주 희한한 상태이다. 내가 만화 드래곤볼의 한 장면을 인용해 “정신과 시간의 방에 다녀왔다.”라고 표현하곤 하는 이 경험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와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여행의 시간만큼 그림 그리기에 어울리는 시간도 없구나. 또, 그런 여행의 시간에 그림만큼 어울리는 행동도 없구나. 어쩌면 그래서 화가가 아닌 사람들, 예를 들어 괴테도 헤세도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닐까.

그림을 그리면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림은 여행에 재미를 더해 주고, 여행의 기억들을 더 소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어 두고두고 펼쳐 보게 할 것이며, 그렇게 펼칠 때마다 미소를 자아내게 해 줄 거라는 등등 이것저것 늘어놓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장점을 열거하기 시작하면 도리어 매력이 반감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하루키나 칼비노 같은 소설가들은 한 번도 ‘글을 권하는 글’을 쓰진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이들을 글쓰기의 세계로 강렬하게 유혹하지 않았던가? 뭐니 뭐니 해도 그림 여행을 권할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정신과 시간의 방’ 속으로의 초대장을 슬쩍 내미는 것이리라.

잠깐.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그림 여행기 하나를 보여 주고 싶다. 그림과 관계된 전공도 직업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일생 동안 한 번도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는, 한마디로 그림과 전혀 무관하게 오십 평생을 살아온, 그러나 나를 믿고 내 권유를 받아들여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겨 갔으며 마침내 용기를 내 그 연필을 필통에서 꺼내는 데 성공했던 사람. 처음에는 못한다고, 귀찮다고 주저하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그림으로 남기기를 정말 잘했다.’라며 두고두고 내게 고마워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 여행기를 보면 당신도 솔깃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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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여행을 권함 김한민 저 | 민음사
일상과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여행의 시간만큼 그림 그리기에 어울리는 시간도 없다. 그림 그리기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자세히 보다 보니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바쁜 일상에 쫓겨 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행지에서조차 일정에 쫓겨 기계적으로 카메라 셔터만 눌러 대는 사람들에게, 그림 여행으로의 초대장을 슬쩍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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