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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고뇌 - 크론보르 궁전(Kronborg Slot)

셰익스피어, 흐린 날씨 그리고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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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흐린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멀리 보이는 크론보르 궁전 주변에만 구름이 가득했다. 바로 저런 느낌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비극으로 만들게 된 것인가 싶어, 흐린 날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도 그 구름이 반가웠다. 햄릿 성이라 하면 모름지기 무언가 장엄하고 우울하며 비극적인 풍모를 풍겨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그 유명한 대사를 촌스럽게 되뇌이며, 햄릿 성이라 불린다는 크론보르 궁전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셰익스피어가 그곳을 방문하고 <햄릿>을 썼기 때문에 그리 불린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봤던 미대 연극부의 연극이 바로 <햄릿>이었다. 비극적인 내용을 미대답게 상당히 화려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든 그 극을 보고 연극부에 들어가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게다가 그때 배우를 했던 오빠들이 너무 멋져 보였단 말이다). 그리고 졸업을 할 때까지 연극부를 떠나지 못했고, <햄릿>을 보았던 기억을 잊지 못했다. 나와 함께, 나보다 더욱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연극부 활동을 했던 수세미양도 크론보르 궁전을 꽤나 기대했다. 거길 가면 왠지 모르게 햄릿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그다지 흐린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멀리 보이는 크론보르 궁전 주변에만 구름이 가득했다. 바로 저런 느낌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비극으로 만들게 된 것인가 싶어, 흐린 날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도 그 구름이 반가웠다. 햄릿 성이라 하면 모름지기 무언가 장엄하고 우울하며 비극적인 풍모를 풍겨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같은 날 가보았던 프레데릭스보르 성Frederiksborg Slot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날씨도 한몫을 단단히 했지만 성의 생김새 자체가 훨씬 남성적이고 시니컬했다. 크론보르가 석가탑이라면 프레데릭스보르는 다보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교과서적인 진부한 표현도 떠오르고.(주입식 교육의 폐해일까?)


바다 건너 보이는 스웨덴을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는 대포 하며, 견고하게 세워진 성벽 하며 넓고 화려해야 할 연회장은 그 쓰임새에도 불구하고 꾸밈새나 전반적인 장식들이 상당히 건조하고 외로운 느낌을 풍겼다. 지하 감옥은 정말이지 최소한의 조명만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이곳에서 발을 잘못 디뎠다가 다친 관광객이 없는 걸까 싶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을 걸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에게 그런 감옥에서 살라고 한다면 차라리 날 죽여주소 할 것 같았다. 어두운 것은 너무 무섭단 말이다.


그 어두운 곳의 어딘가에, 평소에는 잠을 자고 있다가 덴마크가 중대한 위기에 빠지면 잠에서 깨어 나라를 구한다는 전설 속의 영웅 홀러 단스크Holger Danske의 조각상이 아래에서 쏘아 올려지는 빛을 받으며 잠들어 있었다. 내가 슬쩍 발이라도 건드렸다가는 중대한 위기를 느끼고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성의 입구 즈음에 있는 외벽에 박혀 있는 셰익스피어의 부조와 사진을 찍고 성을 나섰다. 하긴 소설은 소설일 뿐 햄릿은 실존 인물이 아니니 햄릿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초상이 있을 수밖에 없기는 할 것이다.

역시나 베로나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애틋한 사랑을 하고 싶어지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고 머리에 구름을 끼고 있는 철옹성 같은 크론보르 성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게 될 것 같긴 하다. 나도 어설프게나마 지하 감옥에서 경보를 하면서 그 고민을 해야 했으니까.


프레데릭스보르성, 크론보르성,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루트를 잘 짜면 한 큐에 돌아볼 수 있으니 데니쉬 페이스트리 도시락을 지참하고 기차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코펜하겐 카드로 교통, 입장 모두 가능하니 즐거운 하루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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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처럼 김나율 저/이임경 사진 | 네시간
디자이너이며 보통의 여행자인 두 저자가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세 도시로 북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정에 얽힌 유쾌한 이야기, 먹고 즐기고 쉬기에 유익한 정보 등 여행지로서의 북유럽을 담으며 그들의 공간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필두로 독특한 문화와 날씨, 물가 등 다양한 관심 키워드를 다룬다. 보통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적당히 놀며 쉬며 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북유럽 스타일의 감성으로 삶을 덜어내고 더한다.

 



북유럽(스칸디나비아) 관련 도서

[ 윈터홀릭 ]
[ 그대로 꿈, 그래도 쉼 ]
[ 스칸딕 베케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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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나율, 이임경(사진)

김나율
드라마 작가와 음악가와 월세 집 주인을 최고 동경하고
처녀 귀신, 생 굴, 날아오는 공이 제일 무섭고
오로라, 한 겨울 사우나, 피오르를 만나러 가고 싶고
디자인, 산수, 집안일이 너무 두렵고
이제 막 맥주와 커피의 맛을 좀 알 것 같은
대체로 무익하지만 가끔은 유익하게 사는 적당한 사람.
서울대 디자인학부 졸업. 싸이월드, LG 전자 근무. 현 프리랜서 모바일 GUI 디자이너.

이임경
점토의 말캉말캉함과 희뿌연 흙먼지, 흐르는 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 도자기를 한다.
가장 맑게 그리고 거침없이 꿈꾸는 열아홉과
함께할 수 있어 수업시간은 늘 기대된다.
안목바다의 수평선 같은 조용하고 담백한 사진은
설렘을 주고 흙 작업을 하며 한껏 벌린 설거지거리를
예쁜 수세미로 닦는 시간은 무척이나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여행은 ‘진짜’ 나를 마주하게 한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공예대학원 졸업, 도자 공예가.
현 선화예고, 남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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