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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과연 유투브 덕분에 떴을까요?”

“본질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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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 ECD는 광고 사진을 한 장 띄웠다. ‘everything change but nothing change’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에르메스의 광고였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브랜드인데요. 이 헤드라인은 굉장히 멋지죠.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사람은 다 똑같다고요.”

인문학 특강 두 번째 주제. 本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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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 특강의 두 번째 시간. 이날의 주제는 ‘본질’이었다. 박웅현 ECD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이런 얘기를 했다. 강의를 위해서 특별히 어떤 책을 읽을 필요도, 뭔가 준비할 것도 없다. 다만, 그날의 주제에 대해 딱 100초씩만 생각을 해달라고. 그 내용을 자유롭게 적어서 달라고 했다. 주제와 관련된 어떤 질문도 좋다.

그렇게 취합한 생각들을 통해 강의내용을 정돈하고, 강의가 끝난 후에는 페이퍼로 들어온 질문들에 답을 해주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꼭꼭 당부해서일까, 수업에 가는 길 내내 나도 모르게 본질, 본질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본질’은 굉장히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이를테면, 근본이 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깊이 있는 것. 단순한 것. 포장이 없는 것……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도, 본질에서만큼은 추상적인 데에서 헤맨 모양이다. 페이퍼를 취합한 박웅현 ECD는 철학문제가 되었다고 웃었다. 다시 생각해보자고. 책 속에 있고,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로부터의 인문학, 내 삶을 움직이는 인문학 공부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박웅현 ECD는 오늘도 부정어(!)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건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기대하지 말라”고 말해서 기대하게 한 첫 강의처럼, 둘째 날인 오늘 “지난번 강의가 맘에 안 들었다”며 업그레이드를 예고했다(!) 이날의 업그레이드 강의, 박웅현 ECD의 광고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늘 주제인 ‘본질’은 박웅현 ECD의 광고 철학과도 긴밀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인 광고카피로 회자하는 ‘사람을 향합니다’ 역시 전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연결, 관계되고 싶은 마음, 그리움, 결국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통찰해내서 떠올릴 수 있는 카피였다.

박웅현 ECD는 광고 사진을 한 장 띄웠다. ‘everything change but nothing change’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에르메스의 광고였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브랜드인데요. 이 헤드라인은 굉장히 멋지죠.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사람은 다 똑같다고요.”

본질에서 보자면,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같은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세대가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본질인데, 너무 빨리 변하고, 모든 게 변하는 것 같으니까 본질을 놓치는 거예요.”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가 있을까. 한창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7>을 볼 때도, 채널예스에서 진행한 90년대 기획을 맡았을 때도 절절히 느낀 일이었다. 삐삐, 386컴퓨터, 씨티폰. 마이마이, CD플레이어. PC통신 그땐 내 전부였던(!) 것들이 불과 10년 만에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춰버린 걸 떠올리면 기분이 참 아찔하다. 잊히는 건 단순히 10년 전 아이돌 가수의 이름만은 아니었다. 과연 지금의 아이폰, 아이패드, 갤럭시, 트위터, 페이스북 등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것들은 언제, 또 어떻게 사라질까. 박웅현 ECD는 새로 생기고, 소멸하는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왕조는 바뀌었지만, 그 사회를 지배하는 도덕적 기준은 바뀌지 않았어요. 조선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 대부분은 태어난 곳 백 리 이내에서 죽었고요. 그런데 1850년에 살던 사람이 1950년에 산다면? 쉽지 않겠죠. 몹시 어려운 시련을 겪을 거에요. 1950년에 살던 사람이 2000년에 산다면요? 과거의 100년의 세월을 통과한 것 못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인터넷, 휴대폰이 낯설기만 하겠죠. 게다가 요즘엔 영어 모르면 외계인이잖아요. 힐스테이트, 쌍떼빌, 자이… 모든 아파트 이름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인가요?(웃음) 웰빙, 와이파이, 3G, LTE, 애니팡…… 언제부터 나온 말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용어를 언제부터 사용하셨나요?”


‘싸이’가 뜬 게 유투브 덕분일까요?


이런 세상의 격변 속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광고하는 사람이라고. “잘자, 내 꿈 꿔. 그 당시 전 국민이 다 아는 카피였죠. 패러디가 700개가 됐어요. 과연, 그게 그렇게 섹시한 말이었나요? 아니에요. 반복 노출 덕분이었죠. 3개 공중파에 지속해서 2달 동안 틀었어요. 요즘 그런 미디어가 있어요? 10년에는 신문이랑 TV만 잡으면 끝이었어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요즘 버전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때만큼 반응이 안 나올 거에요. 그만큼 안보니까.”

요샌 어떻게 광고해요? 후배들의 질문이 무섭다고. 예전에 ‘끝’을 이루었던 TV와 신문 얘기를 꺼내면 즉시 이런 말이 따라나 온다. ‘요새 누가 TV 봐요? 누가 신문을 봐요?’ 강력한 몇 개의 미디어가 없어졌고, 대부분이 퍼스널 미디어로 변화했다. “이런 변화가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얼마 전에 서울 디지털 포럼에 참여했어요. 20분 동안 스피치 하는데 주제가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방법’이었어요.”

박웅현 ECD는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싸이가 뜬 게 MBC 덕이에요? 조선일보에요? 유투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그런데 유투브가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유투브에 떠 있는 수많은 개그 영상, 뮤직비디오는 그럼 왜 그만큼 뜨지 않을까요? 과연 싸이가 유투브로 홍보를 하려고, 이 결과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걸까요? 강력한 콘텐츠의 힘이었죠. 아이디어가 먼저고, 미디어는 따라오는 거예요.”

“요즘 시대를 따라가려면, 미디어를 공부해라.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해야 해”라는 친구들의 조언에, 박웅현 ECD는 두 손 들었단다. “제 생각에 <강남 스타일>은 싸이가 자기의 본질을 놓지 않아서 얻은 결과에요. 바깥에서 계속 흔들어댔죠. 싸이가 데뷔했을 때 사람들이 ‘쟤는 뭐야?’가 아니라 ‘저건 뭐야?’라고 했대요. 조금 떴지만, 계속 구설에 휘말렸죠.

사기꾼이다. 버클리 출신이 아니라는 둥, 군대를 안 갔다 왔다는 둥. 이 정도 되면 흔들려요. 그럼에도 자기는 흥밖에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 사회에 맞춰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타협한 게 아니라 계속 그대로 나갔어요. 싸이가 하면 다 19금이래요. 그래서 19금으로 앨범을 냈는데, <강남스타일>이 뜨니까 19금이 풀렸대요. 웃기죠. 싸이가 뜬 건 본질을 놓지 않아서 그래요.”



빠르게 변해갈수록, 본질이 더 중요해지는 까닭


좀 더 간편하고, 좀 더 편리한 상품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변하는 기술을 봐야 할까? 박웅현 ECD는 여기서 ‘사람을 본다’ “기술은 사람을 향하게 되어 있어요. 사람을 향하지 않은 기술이, 기업이 어떻게 살아남겠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궁극적으로 봐야 할 것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신기술 시대에 콘텐츠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즉, 지금처럼 본질이 중요할 때가 없다. “예전에는 글발이 없어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MBC 뉴스라는 타이틀만으로도 먹어줬어요. 우리한테 아주 냉정한 지옥의 문이 열린 거죠. 하지만 민초들에게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작된 거예요.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유통이 되니까요.”

본질이 뭔가? 그 역시 잘 모르겠단다. 하지만 본질이 뭔가, 이 생각을 하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대답에 따라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행동하는 것도 달라진다. 박웅현 ECD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몸치였던 그가 수영을 배웠는데, 남들이 매달 월반할 때마다, 꾸준히 기초반을 지켰다고. “내가 수영을 잘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금방 때려 쳤을 거에요. 하지만 난 땀 흘리는 게 목적이었어요. 땀이 많이 나더라고요. 본질이 뭐냐, 목적이 뭐냐에 따라서 행동도 달라져요.”

발표할 때 떨려서 고민해본 적 있지 않은지? 많은 학생이 고민하는 문제에도 이렇게 적용해볼 수 있다. “발표하러 나갔는데 내 앞에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눈을 어디다 둘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왜 이렇게 떨릴까? 들여다봤더니, 내가 잘하려고 하는 거에요. 멋있어 보이고 싶은 거야. 내가 멋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할 말을 잘 전달하면 되잖아요. 10명의 스텝이 피땀 흘려 정리한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본질이죠. 나는 전달자다. 그렇게 생각하고부터 별로 떨리지 않더라고요.”

이 역시 박웅현 ECD의 경험담이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의 중심이 바뀐다. 공부의 본질은 과연 서울대학교일까? 스펙은 본질인가? “스펙은 포장이에요. ‘나는 이만한 덩어리를 가진 사람인데요.’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게 그 사람의 본질은 아니죠. 기업들이 그것만 보니까 중요한 거예요. 그걸로 판단하는 게 쉬우니까. 하지만 스펙은 본질이 될 수 없어요.”


독서의 본질은 내 삶을 바꾸는 것


하지만 본질만을 쫓아서 사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사회에서는 그럴듯한 포장지도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민을 토로한다면 박웅현 ECD는 뭐라고 말할까? 그는 평소 딸에게 이런 격려를 해준단다. “우선 본질을 쌓아놔. 그리고 스펙이 필요할 때, 2~3개월 필요한 기간을 잡아서 준비해. 쌓을 것은 우선 본질적이라는 겁니다.” 본질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질이 아닌 것을 포기하는 용기와 자기를 믿는 고집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것, 혹은 본질이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행동이 5년 후 나한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인가? 한번 물어보세요. ‘애니팡’이 과연 5년 후의 나에게 좋은 체력이 될 것인가?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애니팡’을 하면 풀린다면, 그건 본질적인 행위에요. 하지만 그냥 출퇴근길에 시간 보내는 용이라면, 더 본질적인 일이 있을 거라는 거죠.” 중요한 건, 나 자신이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혹자에게 본질적이지 않은 일도, 나에게는 본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독서의 본질은 뭘까? 단순히 1년에 100권을 읽었다는 기록일까? “독서의 본질은 자랑이 아닙니다. 독서의 본질이 내 삶의 변화였으면 좋겠어요. 열 권이든 스무 권이든 내 삶을 바꿀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내 삶의 변화를 본질로 여기고 책을 읽는다면,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책을 읽는 관점이나 감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독서든 음악감상이든 어떤 활동이든, 나에게 울림을 주는 것들에 집중해보세요. 거기에서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보면 됩니다.”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바뀌니 대답도 달라진다. “인생의 중요한 질문은 순간으로 답할 수 없어요. 전 생애로 답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뭘 보여줘야 하는지, 회사가 뭘 요구하는지 물을 게 아니라 ‘내가 뭘 가졌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뭘 가지고 있나요?” 이것이 ‘나를 기준으로 한’ 본질 찾기의 첫 번째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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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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