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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던 나를 ‘춤’이 구원해줬다” - 춤추는 어린아이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는 작업. 무대에 서는 것은 내게 있어서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내겐 절실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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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외면하고 차갑게 대하던 나 자신의 움직이는 모습을 거울 앞에 비춰보며 똑바로 주시한다. 내가 움직이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에도 감사하며 살아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다. 이렇게 나와의 화해 이후로 훨씬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자신을 미워하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몸소 느낀 것이다. 세상에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다쳤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느낌. 나 아닌 생명에도 애정이 넘친다.

“심리학자 융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춤추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세비야여행을 다녀온 후 어느 날,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나는 순간 멈춰 버렸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춤추는 어린아이’가 나를 지금까지도 춤으로 향하게 하고, 춤을 추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언니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때 언니의 인기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 학교 어딜 가도 아이들의 소곤거림이 계속되었다. 그것이 좋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입을 가리고 귓속말을 하며 손가락질하는 몸짓은 사람을 왠지 주눅 들게 한다. 날마다 나의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사람들은 수군댄다.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비교.

“눈은 쭉 찢어진 게 못생겨 가지구…….”
“언니 반만이라도 닮지…….”


활달하던 성격은 어느새 내성적이고 소극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비교만큼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열등감이나 자기비하 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도 없다고 한다. 나의 감정이나 기분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는 우울한 날들이었고, 자신감도 점점 줄어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본다. 특히 아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반사해 주면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반사하면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여기기 쉬운 존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극도로 피하게 되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으로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들끓고 있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대로 책상 앞에 앉아서 나를 죽도록 혐오하고 있었다. 나로 인해 공기의 흐름조차 바뀌지 않는 무형의, 무색의, 무취의 상태로 존재를 멈추고 싶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니 심지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숨이 들이마셔지지 않고 숨쉬기를 거부하게 되는 심인성 증상이 생겼다. 쓰레기처럼 가득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던 시기였다. 긍정적인 감정들은 표현하면 되는 것이겠지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슬프거나 너무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공부를 하며 머리를 단련시키고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단련시키지만 정작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 즉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은 두뇌와 신체만을 강조하지 않고 특히 의사표현이 서툰 어린이의 감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열려 있지만 당시 사회적으로 참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표현도 소통도 하지 못하고 홀로 벽을 쌓았던 것 같다. 돌보아지지 않은 감정들이 무의식 속으로 숨어들어, 나의 ‘춤추는 어린아이’는 작고 깜깜하고 폐쇄된 공간에 스스로 갇혀 그 안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서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성장을 멈춘 어린아이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나 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춤을 만났다. 춤을 추게 되면서부터 나조차도 외면했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고 뚱뚱하고 혐오스럽게 여겼던 내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표현할 수도 있구나.’

켜켜이 묵어 썩어가는 감정을 풀 길이 없었던 나에게 춤이 새로운 빛의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언제나 구부정하게 걷던 등이 펴지고 자신감을 호흡하게 되었다.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을 맘껏 표현하고 싶었다. 내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노래하고 춤추고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무대가 필요했다.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는 작업.
무대에 서는 것은 내게 있어서 치유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내겐 절실했으므로.




춤을 만난 이후 나는 돌보아지지 못한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하고,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에 서게 되며 나와 화해하고 서서히 치유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내 몸속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흐르는 듯하다. 그 눈물 같은 땀이 흐르고 나면 세포 하나하나가 숨을 쉬며 크게 웃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 안의 춤추는 어린아이가 행복하게 웃는다. 땀 흘리며 춤을 출수록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심장 박동수는 빨라지며 가슴 벅차는 그 순간, 내 안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국희야!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해.”

스스로 외면하고 차갑게 대하던 나 자신의 움직이는 모습을 거울 앞에 비춰보며 똑바로 주시한다. 내가 움직이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에도 감사하며 살아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다. 이렇게 나와의 화해 이후로 훨씬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자신을 미워하고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몸소 느낀 것이다. 세상에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다쳤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느낌. 나 아닌 생명에도 애정이 넘친다. 나의 경험을 통해 이렇듯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인 것을. 그러니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인간의 삶은 이렇듯 상처와 치유의 반복되는 과정 속에 있다.

나는 발레리나도 전문적인 무용수도 아니지만, 배우의 신체는 감성과 이성을 포함한 영혼과 결합하여 몸짓과 소리를 만들게 되므로, 몸을 단련하여 자유롭고 아름답게 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춤을 배우는 것은 내게 어느 틀 속에서 혹은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움직임과 정서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된다. 나아가 이런 움직임과 동작은 걸음걸이나 몸짓 등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를 표현하고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춤은 이제 스스로를 다스리는 역할도 함께 한다.




그러다가 「카르멘」으로 무대에 서게 되면서 플라멩코를 만났다. 플라멩코를 찾아 여행을 떠났지만 얻은 것은 플라멩코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르를 초월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춤들은 모두 그렇게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격정적인 호흡으로 나 자신과 만나게 해주었다. 그것이 어떤 춤이든 춤은 영혼의 움직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즈댄스시어터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춤에 대한 나의 열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준 곳으로, 1년 반을 꼬박 재즈, 발레, 라틴댄스 등을 배우고 전문인 과정을 수료한 후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곳이다. 또한 숨겨진 내 안의 ‘춤추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게 해준 꿈의 공간이기도 하다. 꾸준히 훈련을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준다. 공연이 있든 없든 지금까지도 나의 춤 사랑은 계속된다. 슬프고 힘들고 괴로울 때에도 다시 털어내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재작년 겨울 어느 날, 포즈댄스시어터의 단장님이 학생을 맡아서 가르칠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 당연히 재즈 레슨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연기’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것도 입시생을. 아직 누군가를 가르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망설였지만 그 학생의 꿈, 여의치 않은 상황과 가정환경 등을 듣고 일단 학생을 만나보기로 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의 조그마한 체구, 표정 없는 모습에서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위태로움을 느꼈다.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펼칠 수 없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너무나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그녀를 보며 어릴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때는 11월 하순. 대학 입시까지는 한 달 반이 남았다. 연기는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중학교 졸업 후 여러 가지 가정형편상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합격을 한 상태였다. 다행히 성실하고 학업 성적도 우수해서 내신은 좋은 상태였지만 다른 학생들은 3년을 공부해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경우는 떨어질 확률이 거의 100% 아니겠는가? 주변 사람들은 합격하면 기적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우선 그녀 자신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가를 깨우쳐주고 싶었다.
시험에 붙고 떨어지는 것보다도 그것 하나만 얻는다면 성공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특별하고 사랑스럽게 여기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매일 변화하는 너를 보여달라.’는 것이 그녀에게 준 첫 번째 과제였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분명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향기가 함께 있어야만 우린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녀가 빛나는 별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길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했던 그 학생이 조금씩 빛이 나기 시작했고 스스로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그 변화를 느끼고 칭찬을 한마디씩 해주니 긍정적인 효과가 더했다. 역시 칭찬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처음에 만났을 때의 그 위태로운 표정이나 무덤덤하고 창백한 모습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날부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이야기해 주고 많은 대사를 외우게 하고 토요일, 일요일엔 공연을 보러 다니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실력은 갑자기 느는 것이 아니므로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아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와의 갈등으로 울음이 턱까지 차서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상처 받은 채 왔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지금 느끼는 감정을 참지 말고 끊임없이 뱉어내라고 했다.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었을 때 그 감정에 실어 지금까지 연습해서 외운 독백을 모두 토해 내도록 했다. 오랫동안 억누르며 참아왔던 그녀의 감정이 끝없이 분출되었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실제 감정은 폭발하면 진실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연기할 때는 그렇게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하게 하라는 얘기를 누누이 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연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을 얼마 안 남기고 수차례 이런 일들이 있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것도 과수석으로, 그리고 1년간 장학금을 받으면서 말이다.

물론 대학 입학이 다는 아니다. 그러나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노력으로 이루어냈다는 것. 무엇보다도 좋은 결과는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밑거름인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 안의 ‘춤추는 어린아이’가 환하게 웃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나의 십대 시절 겪었던 외롭고 불안한 감정이나 경험을 통해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뿌듯했다. 가끔 폐쇄적인 십대 시절을 내 인생의 중세시대라고 표현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세가 꼭 비생산적이고 문명이 없는 시절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처럼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스스로 던지고 고치 속에서 분투하며 나를 알고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리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분명 그것을 내가 겪게 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헛되거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 아픈 과거의 경험과 기억마저도 말이다.




춤을 춘다는 것. 그것은 말 그대로 춤을 추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림을 만난 사람들은 그림으로, 문학을 만난 사람들은 문학으로, 음악을 만난 사람들은 음악으로 ‘춤추는 어린아이’를 맘껏 춤추게 하며 그 과정에서 상처 또한 치유되어 간다.

머리 쓰는 공부만이 아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 미술, 춤, 문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여긴다. 연극을 위해 무대에 서다 보면 무용과 음악과 미술 등의 다른 분야들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내면과 감정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예술이라는 말을 특정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어렵고 거창한 말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예술은 우리 삶 속에 자리한다.

예술의 치유 효과와 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긴 시간 동안 몸소 체득한 셈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긍적적인 에너지와 변화가 필요한 세상 곳곳에 쓰여 지기를 희망해 본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 안의 춤추는 어린아이는 계속 존재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춤추는 어린아이는 마음속에서 속삭이고 있다. 그 어린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래서 그 아이를 자유롭게 춤추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성이는 어른아이가 되지 말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춤추는 어린아이를 마음껏 춤추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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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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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국희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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