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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만난 카르멘

나에게 사랑을… 나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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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의 마음을 훔친 카르멘과 빼앗긴 마음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뒤를 쫓아 달리는 호세. 사랑은 늘 누군가를 쫓고 자유는 늘 누군가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깨달은 자가 아닌 이상, 사랑과 자유는 이렇듯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인가…

며칠 전 이사벨 바욘isabel bayon의 수업을 청강하러 갔다가 다리를 건너 되돌아오는 길에 소설과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인 담배공장에 붙어 있는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지금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세비야 대학 건물이 된 바로 그 담배공장에서 메리메 원작의 연극 「카르멘」을 공연한다는 것이다.

‘내가 카르멘을 찾아서 여기 온 걸 누가 귀뜀해 준 거 아니야?’

역시 뜻이 있으면 눈에도 귀에도 자꾸만 보이고 들린다. 그래서 관심이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길이 열리는 것이겠지. 클라라와 우티스도 함께 보기로 했다.

정문을 들어가니 예전 담배공장이었을 때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는 경사진 무대가 보인다. 한가운데 분수가 있는 아주 단순한 무대다. 우리가 흔히 극장에서 보는 (삼면이 막혀 있는)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니라 사방이 탁 트인 야외무대로 꾸며져 있다. 한국에서 올린 뮤지컬 「카르멘」 초연 때에는 중앙에 원형 무대 장치가 있었고 그것이 돌아가면서 장면 변화가 있었는데, 이곳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무대가 만들어져 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밤 10시 30분.
무대 양쪽 객석엔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사방에 설치된 환한 조명 빛을 찾아 나방들도 모여든다. 「카르멘」을 처음 보는 클라라 또한 기대가 큰가 보다.

극이 시작되자 멀리서 코러스 예닐곱 명이 한 명씩 뛰어서 긴 무대를 가로지른다. 잠시 후 카르멘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뒤돌아보며 뛰어가고 그 뒤를 호세도 무언가 간절히 찾아 헤매듯 뛰어가며 사라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카르멘은 자유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호세 또한 필사적으로 사랑을 쫓는다.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나에겐 그들의 다양한 행동과 대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호세는 ‘사랑’이라는 추상명사로 카르멘은 ‘자유’라는 추상명사로만 보이기 시작한다.

호세의 마음을 훔친 카르멘과 빼앗긴 마음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뒤를 쫓아 달리는 호세. 사랑은 늘 누군가를 쫓고 자유는 늘 누군가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깨달은 자가 아닌 이상, 사랑과 자유는 이렇듯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인가. 니체의 말처럼 호세는 그의 사랑 카르멘을 죽임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얻고 카르멘은 순순히 그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렇게 갈망하던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인가?




바스크 지방의 거친 환경과 규율 속에서 생활한 군인 돈 호세, 프랑스인인 작가 메리메(원작에는 작가가 등장한다), 세비야의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 갈리시아 사람인 작가의 시종 카바예로, 까딸루냐 사람인 호세의 상사 즈니가 등 스페인 세비야에서 만난 이 공연은 원작에 있는 인물의 특징을 잘 살린 무대였다.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치 내 머릿속에서 막 나온 것처럼 소설로 읽을 때 상상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10년 전 공연에서 카르멘이 즈니가와 다투며 “더러운 까딸란.”이란 대사를 할 때에도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사람을 까딸란이라고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안 셈이다.
재미있는 발견들로 극이 더욱 흥미로웠다.

“Me escapo?(도망갈까?)”
“Matame!(나를 죽여!)”

극이 모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클라라는 카르멘이 호세에게 했던 대사를 배우처럼 내게 흉내 내며,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한다. 세비야에서의 3개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여행했던 말라가에서도 또 다른 카르멘을 만날 행운을 얻었다. 세르반테스 극장에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하는 것이다. 이런 행운이!




이곳 안달루시아에서 나는 원 없이 카르멘을 만난다. 스페인 사람들의 창의적인 에너지와 개성으로 감동이 있었고, 세비야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그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여러 각도로 작품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1845년 발표가 되었고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187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초연한 뮤지컬 「카르멘」은?? 100년이 훨씬 넘어 2002년에 올려졌다. ^^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의 사회적 반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카르멘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 존재할 수 없는 희귀한 여성상이었다고 한다. 비제가 작품 「카르멘」에 애정을 가지고 다시 각색하여 새로운 등장인물인 미카엘라를 만들고, 관계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당시 오페라 무대에서 이렇게 난폭한 죽음으로 작품이 끝을 맺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극장장은 주인공이 죽는 것에 완강히 반대했지만 6개월간의 설득 끝에 허락을 했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카르멘」은 인간이 가진 저 밑바닥의 본성으로부터 끄집어내어 보고 싶은 신화적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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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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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국희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11,700원(10% + 5%)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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