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으로 자취의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은 회사 때문이었다. 직장이 논현동이라 자취집을 구하려면 아무래도 강남 쪽이 좋았겠지만 실수령액이 백오십만원도 안 되는 능력 없는 월급쟁이에게 보증금 오백에 월세 오십이 기본인 강남권 집값(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그것으로도 턱도 없지만)은 죽었다 깨어나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돈이 있으면 양주나 원없이 먹고 죽겠다 싶었다. 그래서 동호대교든 성수대교든 다리 하나는 넘어서 북쪽으로 가야 한다는 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리를 건너가야 집값이 떨어졌다. 재개발이 진행되기 전이라 너무 사정없이 뚝뚝 떨어져서 조금 무안하기까지 했다. 동호대교를 건너야 그 옥수동, 그 금호동이 나온다. 개업 28주년 기념 세일을 하던 미용실, 35년 된 양복점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전히 영업하는 곳. 거리를 사람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마치 애인처럼 그곳을 사랑했다.
어느 날 저녁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댄스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는데 구질구질한 동네의 할 일 없는 백수가 등장하는 장면에 우리 집 바로 앞 경로당, 중국집, 슈퍼가 자세히도 나왔다. 브라운관 앞에서 밥 먹던 나는 그만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옥수동 옥탑방에 사는 가난한 백수가 강 건너의 휘황한 삶을 꿈꾸며 땅바닥만 긁는다. 그룹 샵의 멤버였던 크리스가 솔로로 데뷔하면서 발표한 〈말만 해〉 뮤직비디오였다. 영화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주인공 윤은혜가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여자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배경으로 우리 동네가 나오기도 했다. 우샤인 볼트라도 올라가다 지칠 계단을 주인공 윤은혜는 숨 하나 안 차하고 통화하며 올라가는 바람에 현실성이 몹시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영화나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 구질구질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동네. 그래도 몸 하나 눕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기뻐서 익숙한 궁기가 비속하고 지겹고 정답기까지 했던 동네. 하지만 그 광경도 이제 죄다 무너져서 연인의 비참한 주검처럼 새로 지어질 건물의 뼈대와 천만 을씨년스럽게 휘날린다.
처음부터 그 동네를 좋아해서 간 것은 아니고 고작해야 몇 백만원의 보증금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옥수동 첫 집에는 제대로 된 문도 없어서 미닫이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다녀야 했다. 누군가 가택 침입해 어떤 여자를 강간 살해라도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집이야말로 그 범죄의 가장 적당한 표적일 거였다.
주인아줌마는 먼저 살던 사람이 놓고 간 세탁기와 냉장고를 써도 좋다고 인심 좋게 말했다. 나름대로 옵션이라고 했다. 지하라도 내 방이 생기고 공짜로 냉장고와 세탁기도 생겼다고 기분 좋게 이사 온 날, 냉장고와 세탁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하얗게 빈 네모난 공간만 덜렁 남아 있었다. 나는 어찌된 영문이냐는 눈빛으로 아줌마를 힐끔 봤지만, 아줌마는 아무 말도 않고 푹 쉬라며 사라졌다. 그렇지, 내 주제에 옵션은 무슨 놈의…… 그런데 이 집에는 옵션이 있었다. 아주 중대한 옵션. 부록이라고 해야 할까, 하자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24시간 술에 취해 있는 주인아저씨였다. 같은 주정뱅이 클럽의 우등회원으로 나는 끝내 그를 미워할 수 없었지만 종종 곤란했고, 이것이야말로 내 미래를 당겨 보는 것인가 싶어 마음이 을씨년스러웠다. 사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내 생활은 집주인아저씨보다 나을 것도 없고 오히려 더 나빴지만, 어쨌거나.
처음 짐이 들어간 날부터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막걸리 냄새가 흥건히 풍겼다. 시각은 밤 열한시, 휑한 지하 방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데 다짜고짜 누가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부터 우려했던 가택 침입 후 강간 살해가 첫날부터 이토록 당당하게 일어나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는데 그는 금방 커다란 목소리로 신분을 밝혔다.
― 아하하~ 나 주인아저씨야~ 여기 아주 좋은 집이야~이 문구는 걸그룹의 후크송처럼, 그 이후 약 20회 반복되었다. 나는 그 집에 사는 내내 그 노래를 들어야 했다. 주인아저씨는 이 다가구주택의 세입자라면 모두 다 함께 져야 하는 십자가였다. 벌집처럼 방 위에 방 있고 방 옆에 방 있는 이 집에는 최소한 스무 명 정도가 살고 있는 듯했다. 옆집이나 윗집 사람이 밤에 손톱 깎으면 그 소리까지 다 들렸다. 나중에는 지금은 검지를 깎고 있구나, 하고 구분할 수도 있을 만큼. 주인아저씨는 적어도 불공평한 사람은 아니라서 세입자들을 죄다 공정하게 방문했다. 사정없이 틈입하는 그를 내보내고 또 내보내다 보면 에이 망할, 하고 또 서글펐다. 이 허름한 동네에, 눈이 오면 경사 때문에 노인들이 아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이 산꼭대기에, 오래되고 허접한 집 한 채 가진 사람도 이렇게나 목에 힘을 주는데 강남은 어떠랴, 이거 거참 못 살 도시로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울면서 달리기, 울어도 달리기, 어쨌거나 달리기.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버티어야 한다는 것. 오직 그것뿐. 버텨, 살아. 하수구 물이 넘치면 퍼내고, 술 취한 집주인 아저씨가 쳐들어오면 달래서 쫓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