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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아들 - 어머니 홍영녀

옥수수밭 그늘에 애 뉘여놓고 죽기만을 기다려… 어려서 죽은 무남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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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말에 이르기를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린 데 없다.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옛 말에 이르기를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린 데 없다. 우리 무남이 죽은 지 50년이 넘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절로 난다.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다. 어미가 미련해서 죽였다. 우리 시아버님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그때 돈암동 살던 동생 순일이가 장사 치르는 데 무남이 데리고 가면 병 난다고 두고 가랬다. 우유 끓여 먹인다고, 그 비싼 우유까지 사 와서 데리고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어린것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데리고 갔다. 동생이 젖 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무남이는 순해서 잘 울지도 않았다. 어쩌다 어미와 마주치면 어미한테 오겠다고 두 팔을 벌리곤 했다.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시아버님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약만 사다 먹였는데,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배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다. 그땐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다.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 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다.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놓고 들여다보며 가여워서 “무남아!” 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것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올 때 해온 깨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다.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다.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다. 그렇게 안고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다.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어미 가슴을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게다가 그땐 이 어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나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융 포대기나 그냥 둘 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 포대기를 빼놨었다. 그러고는 헌 치마에 새처럼 말라 깃털 같은 무남이를 쌌다.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안고 나가 묻었다. 어디다 묻었냐고 나중에 물으니까 뒷산 상여집 뒤에 묻었단다. 그땐 왜정 때라 부역하듯이 집집마다 일을 나갔는데, 나도 나오래서 밥도 굶고 울기만 하다 나갔더니 하필이면 일하러 가는 곳이 상여집 뒷산이었다. 그곳을 지나며 보니까 새로 생긴 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있어서 그걸 보고 그냥 그 자리에 가무러쳐서 정신을 잃었었다.

아, 지금 생각하면 무남이는 생으로 그냥 죽였다. 제때 병원에만 갔으면 살았을 텐데……. 오라비 말만 들었어도 살았을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내 한이 하늘에까지 뻗칠 것 같다. 죽으려고 그랬는지 그 녀석은 업고 나가면 다 잘생겼다고 했지. 순하긴 또 왜 그렇게 순했나 몰라.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무남이.
쓸쓸한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깨끼옷 입은 불쌍한 무남이가 추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다.


가여운 내 새끼야, 이 어미를 용서해다오.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어미 때문에, 어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서 써볼까,
빌어본들 무엇하리, 울어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돌멩이)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어려서 죽은 무남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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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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