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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소셜맥거핀]‘표준시민’의 탄생

‘역동적 중립주의’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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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시민의 탄생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조망할 때 중간계급이라는 측면을 결코 놓쳐선 안되지만 경제적 차원에만 논의를 한정시켜서는 한국의 시민들이 보여준 독특한 실천양태를 적절히 분석하기 어렵다.

*소셜 맥거핀?

소셜 맥거핀(Social Macguffins)은 사회에 현존하는 적대들을 은폐?왜곡하는 사이비 적대를 의미한다. 사이비 적대는 무지한 대중을 향한 여론조작이나 이데올로기적 기만을 단순히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계몽된 대중’이 즉각적으로 체험하고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심지어 스스로 재구성하는 ‘과잉의 현실(hyper reality)’이다.


“기층민중”과 “애국시민-민주시민”

과거 운동권 대학생들이 차도로 뛰쳐나가며 ‘동’을 뜰 때, 그들이 호소하고 호출했던 대상은 “애국시민-민주시민”이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그 거리에서 걷고 있던 보통의 시민들은 정작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 거다. “애국시민-민주시민”은 운동권들의 욕망이 투사된 이름이고 안개처럼 모호한 아이덴티티이다. 1987년 “독재타도”를 외치며 종로를 행진하던 양복 입은 그 사내에게 누군가 ‘민주시민’의 자격증이라도 발급해 줬단 말인가? 그러면 “애국시민-민주시민”이라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 순전한 허구일 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들은 개념적으로(conceptually) 정의되기 어려웠지만 실천적으로(practically) 자신의 실체를 증명해왔다. 가장 가시적이고 극적으로 드러난 시공간이 바로 1987년 6월의 거리였다. 언론으로부터 ‘넥타이부대’라는 우스꽝스런 별칭을 얻은 일군의 시민들 말이다.

사회진보의 잠재적 서포터이면서 계몽의 대상이기도 한 소위 “기층민중”과 “애국시민-민주시민”은 다른 개념이다(여기서 ‘다르다’는 것이 전혀 겹치지 않는 별개의 대상이라는 뜻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기층민중”은 주로 블루컬러 노동자, 영세농민, 도시빈민이다. 여기서 도시빈민은 행정적으로는 기초생활보호대상과 차상위계층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착취당할 노동력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애국시민-민주시민”의 주류는 이와 달리 화이트컬러 노동자, 비(非)전문 중간관리자, 대도시 자영업자이다. “기층민중”과 “애국시민-민주시민”은 사회적으로, 또 계급으로 구별되지만 동시에 시간으로(역사적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시간으로 구별된다는 말은 곧 블루컬러 노동자, 영세농민들이 점차 화이트컬러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로 옮겨왔다는 의미다. 1990년대 초반 이후로 넘어가면, “애국시민-민주시민”은 확연히 기층과 멀어져서 중간층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중간계급이 엄청나게 커지고 고성장 이후의 자산거품이 본격적으로 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는 중산층」(1991년)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등장했을 정도로, 중간계급 의식 또한 가장 팽배했던 시기였다.

이것은 운동권이 염두에 두어야하는 대상이 온전히 착취당하기만 하는 존재에서 “착취자이면서 동시에 착취당하는 자”(에릭 올린 라이트, 2005, 『계급론』, 354쪽, 한울욾카데미)로 이동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간계급 또는 중간계급의식을 지닌 시민의 출현과 확장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전략전술에 단지 영향을 미친 정도가 아니라, 1990년대 시민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담론지배 현상처럼, 사회운동의 지형 자체를 통째로 바꾸는 몇 가지 원인들의 하나였다. 요컨대 ‘넥타이부대’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또한 단 한번 나타났다 흔적 없이 역사의 피안으로 사라져버리는 예외사태도 아니었다. 그것은 민주화운동과 사회경제적 구조변동이 빚어낸 산물이면서 동시에 훗날 등장할 표준시민의 원형이 됐다.

표준시민의 탄생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조망할 때 중간계급이라는 측면을 결코 놓쳐선 안되지만 경제적 차원에만 논의를 한정시켜서는 한국의 시민들이 보여준 독특한 실천양태를 적절히 분석하기 어렵다. 경제자본 뿐 아니라 학력자본과 사회자본(인적 네트워크)까지 포함한 총체적 자본, 이를테면 상징자본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소위 ‘넥타이부대’의 등장은 상징자본을 가진 시민들의 등장을 알린 사건이었다. 그들은 “잃은 게 사슬뿐인” 사람들이 아니다(프롤레타리아의 어원이 “재산이라곤 먹여살려야할 자식들뿐인 사람들”이란 점을 상기하라). ‘넥타이부대’는 잃을 게 꽤 있는(혹은 그렇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였다. 먹을 게 없어서 나무뿌리를 캐먹던, 그런 시기를 통과해온 사람들이 아니다. 사실상 그들은 아사(餓死)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였다. 라디오와 TV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대중문화의 세례를 본격적으로 받았고, 무엇보다 학력수준이 눈부시게 높아졌다. 입시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의무교육이 강제하는 표준적 지식들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익혀야 했다. 어쨌든 근대시민의식의 토대인 ‘교양(Bildungs)’이 축적될 기반이 마련되었던 셈이다. ‘중간계급 상징자본의 시원적 축적’이라 할 만한 이런 사회적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훈육과 동원의 대상인 ‘국민’, 그리고 계몽의 대상이던 ‘기층민중’은 차츰 분화되고 변모하기 시작한다. 근대시민의 특성들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 사회운동의 급격한 몰락, 표준시민의 탄생

표준시민이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기존 사회운동의 급격한 몰락이다. 특히 학생운동의 몰락이 핵심이다. 국내에서 형식적 민주화가 쟁취되고 국외에서 동구와 소련이 무너지면서 학생운동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은 여전히 전국적 대학조직으로서 작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학생운동이 완전히 붕괴한 결정적 순간은 1996년 여름이다. 그해 봄 연세대 학생 노수석이 등록금 투쟁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사망한다. 정부당국과 학생들 사이의 긴장도 유독 고조된 상태에서 8월에 범민족대회가 연세대에서 열렸고 “도시게릴라” 운운하는 극우언론의 여론몰이, 진보진영의 방관, 정부의 유례없이 강경한 탄압이라는 세 가지 악재 속에서 한총련 지도부는 판단력을 상실했다. 캠퍼스 점거농성을 벌였고 장기간의 농성으로 저항의지가 꺾이자 끝내 경찰폭력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평가를 여러 층위에서 할 수 있겠지만, 학생운동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더구나 1996년부터 확대 실시된 학부제로 기존 학과 중심의 학생운동 재생산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1990년대 후반에는 학생회 조직을 꾸릴 인원을 걱정하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시대는 학생운동의 종언을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학생운동 붕괴 이후 10년여 동안 근대시민적 주체의 형성이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점이다.

학생운동의 쇠퇴가 생각보다 사회운동의 치명적 공백이 되지 않았던 것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학생운동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연이어 당선되는 등 소위 범개혁진영의 ‘아름다운 시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자생적 시민운동, ‘안티조선운동’이 그것이다. 안티조선운동은 한국사회의 공익을 해치는 대표적 집단으로 언론권력을 지목하고,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재벌형 극우언론들의 사회적 해악을 고발하는 일종의 매체비판 운동이었다. 몇몇 진보적 지식인이 열성적으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운동은 평범한 시민들이 상식에 기반해 벌인 운동이었다. 참여한 시민들의 성향은 각양각색이었다. “사실상 최초의 좌우합작 시민운동”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참가자의 면면이 다양했다. 민족주의자에서부터 아나키스트까지, 광범위한 이념 스펙트럼을 보였다. 기존 운동권 출신은 소수였고, 평범한 생활인들이 압도적 다수였다. 이 새로운 시민주체들은 진보, 해방, 평등, 자주, 반자본주의 등의 ‘운동권스러운’ 가치들에 익숙하지 않았고 심지어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그저 ‘상식’이었다.

도대체 상식은 무엇인가

상식은 참 모호한 대상이다. 교양을 정의하기만큼이나 어렵다. 안티조선운동에서 지칭한 상식을 교양이란 개념과 굳이 견주자면, ‘교양의 최소치’가 될 것이다. 또한 ‘상식의 최대치’는 교양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그런 교양, 시민적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믿었던 것은 사실이다. 반면 『조선일보』 같은 극우언론들을 몰상식이라 확신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기에 평범한 생활인인 그들이 안티조선운동을 위해 기꺼이 하루 월차를 내고, 심지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일인시위에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상식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운동에 동참시킬 수 있는 최대공약수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상식은 신념이면서 동시에 운동의 전략이었다. ‘우리 최소한 이 정도는 합의하고 넘어가자’는 것. 그것이 이른바 시민적 상식이었다. 이 단어는 실제로 강력했다. 2000년대 대한민국을 지배한 키워드라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키워드 중 하나도 상식이었고, 2002년 촛불에서 2008년 촛불에 이르는 촛불들의 키워드 역시 상식이었다. 상식 대 몰상식의 대결, 2000년대 시민주체들의 전선은 그렇게 그어졌다.

다음 편에 “‘표준시민’의 탄생, 그리고 ‘역동적 중립주의’-3”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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