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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호모 콰이렌스]행복은 행복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할 때 따라 나오는 마음의 상태

김선욱 선생님께 드리는 질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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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름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것도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몹시 사랑하고 있는 순간에조차 내 사랑에 눈멀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러셀의 행복론은 건강하고 먹고 살 수입 정도는 있는 사람들, 현재 치명적인 불행을 겪지는 않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론입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 주로 다루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노력으로도 많은 부분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러셀의 행복론은 김선욱 선생님의 『행복의 철학』과 많은 부분 의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지만 추구하는 것은 대개 옳지 않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행복엔 다차원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물론 이 말은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반대로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고 그것이 결국 자기를 만드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른 모든 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단 말이 될 것 같습니다.

러셀은 자아와 (자아가 아닌) 세계 사이의 대립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진정한 관심이 생기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고 선생님은 공적 행복에 대해 말했습니다.

러셀은 ‘아주 잠깐이라도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라도 위대한 정신을 느껴본 사람은 비열한 행동이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거나 사소한 불운에 안달하거나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두려워하는 데서는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위대한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우주의 구석구석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인간적 한계가 허용하는 것만큼 올바르게 자신과 인생과 세계를 바라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짧고 하잘 것 없지만 인간 개개인의 정신에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세계를 반영하는 정신을 가진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만큼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게 늘 따라다니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강렬한 기쁨을 느낄 것이며 표면적인 생활이 갖은 곡절을 겪는다고 해도 깊은 본질에 있어서는 늘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한 개인에 불과할지라도 인류의 마음과 같은 추상적인 존재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명 유지라는 동물적 차원의 삶에 몰두할 때 삶은 자연 질서를 나타내는 순환적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적인 활동에 몰두함으로써 즉 세계 속에서 한 개인이 타인의 현존 가운데 말하고 행위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의 출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찾게 되고 자기의 삶은 반복되는 순환 구조 가운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러한 시간 인식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기초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러셀도 선생님도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잘못은 인간 삶의 경제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은 경제적이고 생물학적 본능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생각을 하고 자유를 추구하고 의미를 물을 줄 아는 존재, 타인과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돌아볼 때 돈과 가치가 한판 싸움을 벌인다면 략이 이길 것이라던 옛 학자들의 예언은 맞아떨어져 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행복론들이 유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행복론들은 사실 우리가 행복을 위해 크게 바뀔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행복론은 우리를 노력하게 하기보다는 게으르게 합니다. 그러니 다른 행복론, 도덕적으로 더 엄격해지길 요구하는 행복론,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합리적이길 요구하는 행복론, 타인을 질투와 경쟁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 행복론은 이미 살면서 우리가 치른 쓰라린 대가들이 많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선생님 책 행복의 철학은 사랑에 관한 책과도 형식이 같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최고로 사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그녀와 여행 한 번 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장소. 장소 주변 먹을거리, 잠잘 곳, 주변에 같이 가볼 곳, 각각의 곳들에 가는 방법들. 각각의 장소에서 먹을 것. 그곳들에 숨겨진 이야기. 숨겨진 이야기 속에 또 숨겨진 이야기.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쁨 속에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도 행복을 말하다 보니 인간의 존엄성도 자유도 평화도 실천도 타인과 함께하기도 할 수 있는 한 다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행복을 사랑하는, 행복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행복은 어떤 기분이 아니라, 어떤 것을 추구할 때 수반되는 심리적 현상, 어떤 일을 할 때 따라나오는 감정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행복감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할 때 따라나오는 마음의 상태’ 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행복한 감정 상태에 있고 싶어한다’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행복감을 가능하게 하는 완성된 삶의 모습을 갖추기를 원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에 대한 이런 정의가 새롭진 않아도 인생의 많은 질문 앞에서, 선택 앞에서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일희일비하는 마음의 상태나 성공과 착각하곤 하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행복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그다음엔 생각과 자유와 진리와 인간 존엄성으로 넘어갑니다. 행복 이야기를 하는데 왜 생각과 자유라는 장이 필요했던 걸까요?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본 매트릭스를 들어서 인간의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주인공 네오는 인간의 생체 에너지로 움직이는 매트릭스를 고안한 아키텍트를 만나기 위해 그에게로 가는 방문의 열쇠를 가진 열쇠공을 찾아갑니다. 열쇠공을 붙잡고 있는 메로비지언은 네오와 그의 일행에게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과율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설파합니다.

“당신은 오직 하나의 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나의 우주. 그것이 유일한 현실이지. 인과율말이야. 작용 반작용. 원인과 결과. 선택은 권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환상이지”

그러나 메로비지언의 이 이야기는 바로 뒷 장면에서 부정됩니다. 인간은 필연성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 영역에서도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자유의 크기는 너무나 작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내 삶에서 겨우 0.1퍼센트에 불과하나 그러나 그 작은 자유의 가능성이 내게 열린 이상 나는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나는 내가 될 수 있고 나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유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존엄성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 행복의 기초인 것입니다. 누구도 기계나 동물이나 배신자나 흡혈귀로서 행복해지고 싶진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절대적 선택의 자유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인간성을 실현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누구도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 때문에 슬퍼해서도 안 되고 그뿐만 아니라 누구도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러 나서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책의 부제는 ‘공적 행복을 찾아서’입니다. 그리고 ‘공적 행복은 공적 영역에서 정치적 행위를 통해 얻게 되는 행복’ 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적 행복이 이런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할 것입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긴 해도 정치엔 관심이 없는 걸요. 나는 행복해지고 싶긴 해도 사회에 관심이 없는 걸요. 선생님은 그런 질문을 미리 짐작한 듯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는 공적 공간과 세계가 필요하다.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존재라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인간은 정치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 때만 비로소 인간적인 삶, 즉 행복이 가능하다란 것이겠지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생각만큼 우리 행위에 의미를 주는 것도 우리를 용기 있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선생님의 이 말도 행복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는 누구나 자기를 표현할 어떤 곳, 자기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세상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오로지 묵묵히 일만 하는 삶은 그토록 슬픈 겁니다. 조용히 일만 하고 살라는 주문을 받을 때 오히려 더욱 더 공적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공적 행복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경험이 공적 행복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야 할까요? 저는 얼마 전에 선생님에게 왜 우리는 공적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적인 공동체로 대표적인 것은 가정입니다. 이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토대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가족 구성원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사랑의 이름으로 자녀의 삶에 개입해도 그게 실제로 자녀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타나느냐 아니냐의 결정적인 차이는 부모가 자녀의 자율성(자유)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입니다. 자녀의 자율성을 인정하면 부모와 자녀 간에는 대화의 공간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공간은 사적인 공동체지만 정치적입니다. 그렇지만 이 공동체는 심지어 가정 폭력이 있어도 지속됩니다. 이처럼 사랑을 통한 연대는 사적 공동체에서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작용될 수 있습니다.

사적 공동체와는 다른 사회적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이지 않은 공동 목적을 위해서 형성된 공동체입니다. 사회적이란 말은 공적 영역으로 들어가 공적 관심을 획득하게 된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적 특성을 지닌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다양성의 주장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적 특성을 공적 영역에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기업체같은 경제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분명한 존재 목표가 있기에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수단은 목적을 통해 정당화됩니다.

그렇지만 정치 공동체는 개인의 다양성과 인간의 복수성이 중심을 차지합니다. 공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관심을 표명하고 나눈 것이 바로 정치 공간입니다. 여기에 분명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의 관심사가 존재합니다. 정치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궁극적인 관심사입니다. 사회적 공동체의 경우 이윤 추구와 수입 극대화같은 것을 추구하지만 정치 공동체의 목적은 추상적으로 구성됩니다. 목적과 목표에 따른 다양한 수단이 설정됩니다.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 요구하는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궁극적인 목적을 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은 묻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한다는 생각뫀 이 사회가 경제적 이익 추구에 마음을 뺏긴 결과입니다. 탐욕과 질투가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와는 다른 삶의 원리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경제적 이익 추구도 중요하지만 삶에는 더 높은 목적이 있고 경제적 부는 목적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목표일 뿐입니다.”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 사랑의 이름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것도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몹시 사랑하고 있는 순간에조차 내 사랑에 눈멀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행복을 원한다고 해도요. 그럼으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적게나마 어디서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그 곳이 어디든지요.

제 이야기를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린 타인들이 자신을 이해 관계 속에서만 볼 때 고통을 당합니다. 세상이 나를 쓸모없는 사람,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볼 때 불행합니다. 결함은 있지만 또 가능성도 있는 한 인간으로 봐주길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 불행 때문에 냉소주의자도 되고 우울한 사람도 되고 테러범도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특히 좋아하며 즐겨 인용하는 이야기는 현자 나탄입니다. 이 이야기는 팔레스타인이 배경입니다. 유대인인 현자 나탄이 여행을 떠난 사이에 집에 불이 나고 위험한 처한 딸을 기독교인 청년이 구해줍니다. 하지만 그 기독교인은 유대인 처녀를 구하긴 했어도 나탄의 딸과 가족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화조차 하지 않습니다. 나탄은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친구가 되어야 하네. 내 민족을 마음껏 경멸해도 좋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우리 민족을 선택했었던가? 우리가 곧 우리의 민족이란 말인가?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인간이기 이전에 유대인이고 기독교인이란 말인가? 내가 자네 안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선생님이 현자 나탄같은 이야기를 행복을 말하는 책에 넣은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현자 나탄은 종교적 경계 뛰어 넘기에 관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겐 현자 타나탄 이야기가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우리 모두가 인간이란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도 들립니다. 우리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이해 관계와 자신의 욕망의 테두리 안에서 보곤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볼 때 고통 받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고립되고 치열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겠죠. 그래서 이해 관계를 초월한 공적 행복의 경험이란 말은 매력적입니다. 행동의 결과로 인한 이득 때문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면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 이것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그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태어나 먹고 삶을 꾸려 나가는 것 자체가 누구의 이해 관계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선생님을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몇 가지가 더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적으로 비교적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공적인 행복을 생각해야 합니까? 사적 행복과 공적 행복을 구별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개인의 삶은 공사가 얽혀 있지 않습니까?

-행복에 관한 한 개인의 내면에 크게 비중을 둔 심리학적 접근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적 접근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겐 행복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노예처럼 끌려가며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노예나 일꾼처럼 하루하루 산다고 생각될 때도 행복이 가능합니까?

-러셀은 행복은 행복을 위한 투쟁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속)
* 호모 콰이렌스는 한국의 인문학자들에게 보낼 편지글 더하기 답장 혹은 편지글 더하기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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