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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한테 차인 기억을 지울 수 없나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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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기억은 사리지기 위해 존재한다. 언젠가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아픈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후엔 아무것도 없다”
최근 논란이 된 양자 우주론의 대가 스티븐 호킹 박사의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는 망가진 컴퓨터와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물리적 근본은 뇌에 존재하는 전기적 에너지가 사라지면 제로의 세계, 땅으로 사라진다는 의미다. 물리적으로 땅은 제로 상태의 역학적, 전기적 에너지를 갖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은 지우기 어렵다
뇌의 기억은 사리지기 위해 존재한다. 언젠가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아픈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없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 대해 정보를 뇌에 전기적 신호로 남겨놓았다 다시 잠시 끄집어내는 기능을 말한다. 물론 장기적인 기억과 단기적인 기억이 있다. 아픈 추억이나 즐거웠던 추억은 장기적인 기억이다. 이런 기억은 뇌 속 시놉시스에 확고한 흔적으로 남기 때문에 지우기 어렵다.

격렬하게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인 한일 월드컵을 어느 누가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 이런 기억은 뇌 속 시놉시스에 흥분과 함께 각인된 신호로 절대 지워질 수 없다. 또 다른 기억으로 자신이 심하게 무시당했다든지, 애인에게 처절히 채였다든지, 심하게 쪽팔린 일이라든지, 너무 슬퍼서 다른 사람에게 말도 꺼내고 싶지도 않은 기억은 심장에 박힌 못처럼 절대 잊혀질 수 없다.

인간의 성장은 기억의 축적이다. 매일 매일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고 필요 없는 기억은 버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입력하고, 저장하고, 꺼내는 이 세 단계 중 하나에 이상이 생기면 뇌로서의 기능이 사라진다. 치매에 걸리면 정보를 입출력하는 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겨 기억을 못하게 되는 이치다.


지울 수도 있고 복구할 수도 있는 컴퓨터 기억이 부럽다
컴퓨터 저장장치 역시 단기적인 저장장치와 장기적인 저장장치가 있다. 램 메모리는 단기적으로 컴퓨터를 끄면 정보가 사라진다. 장기적인 정보는 하드디스크에 저장한다. 하드디스크에 자기적인 디지털 신호로 기록하고, 읽을 때는 하드디스크의 헤드가 정보를 읽는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지울 때는 파일 전체를 지우지 않고 데이터는 남겨놓고 파일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헤드 부분만을 지운다. 이를 복원할 때 해더만 붙여주면 파일은 다시 살아나게 된다. 지워졌다고 생각한 데이터를 살려내는 복구의 원리가 여기 있다. 이런 기능은 상황에 따라 희비를 가린다. 범죄자에게는 지운다고 지웠는데 하면서 땅을 칠일지만, 실수로 지운 사람은 빨리 복구를 한다면 많은 데이터를 살릴 수 있다.

완전히 지우려면 하드디스크를 포멧을 하면 된다. 인간의 경우는 작은 전기적 충격이나 노화로 뇌로서의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의 하나는 컴퓨터는 기계적으로 재생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아주 작은 뇌 속의 결함으로도 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좋은 기억으로 나쁜 기억을 덮어씌워라
그렇다면 부분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우울한 기억을 대체할 만한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지울 수 없으면 만들면 된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경우는 지운파일 위에 새로운 정보를 덮어쓰게 되면 지워진다. 살아 있는 인간의 뇌는 컴퓨터 하드 디스크처럼 2차원적이지 않다. 무한한 정보공간 속에 추억이 얼기설기 뇌 속에 기억되는 기억은 창의적인 기억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슬픔은 슬픔, 실수는 실수, 과거는 과거, 기억은 새로운 기억으로 버리고 새롭게 기억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 같지만 쉽게 생각하면 무지 쉬운 일이다.


에필로그
작년 연구를 마치고 시연을 앞둔 하루 전날이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지금까지 개발한 장비가 잘 작동되는지 보여줘야 했다.

“컴퓨터 바탕 화면을 깨끗이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연구원에게 한 마디를 하고 잠시 밖에 나갔다 와서 확인해보니 시연할 프로그램까지 모두 지워져 있었다.

“야! 인마 그걸 지우면 어떻게 해!”

그날 밤 지워진 데이터를 복구하느라 밤을 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하나다. 하지만 그 기억을 가끔 이야기하면서 웃는다. 기억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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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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