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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신간] 셋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스톱 말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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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그녀와 같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가사 도우미로 일한다. 2등국민임을 자부하던 식민지 조선,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백인이 아닌 그녀/그들을 대했는가? 소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화두다.

 
헬프
캐스린 스토킷 저/정연희 역 | 문학동네
1960년대 초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의 잭슨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개성의 세 여자가 자신들 앞에 놓인 한계를 넘어서고자 용기를 내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스토리의 데뷔작이다. 자신의 아이들은 남에게 맡기거나 집에 버려둔 채, 생계를 위해 백인 가정에 들어가 그 집을 위해 일하고 백인 아이를 돌보아야 했던 사람들. 작가 캐스린 스토킷은 자기에게 어머니와 같았던 흑인 가정부 디메트리를 떠올리며,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그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를 자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 민감하고 어려운 소재를 소설로 탄생시킨다.

최근 KBS에서 방영중인 「로맨스 타운」은 가사 도우미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성유리가 가사 도우미로 나온다.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설정이다. 성유리 급이면 가사 도우미가 아니라, 길거리 캐스팅 당해서 연예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편견으로는, 가사 도우미는 젊고 예쁜 사람이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60년대 미국 미시시피, 셋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헬프』에 나오는 가사 도우미 역시 우리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빌린은 50대 초반, 미니는 30대 중반으로 버스 좌석 다툼에서 절대 물러날 것 같지 않는 아줌마다. 이들은 백인의 자녀를 돌보고, 백인이 먹을 요리를 만들며, 백인의 침실을 청소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아이빌린과 미니의 인종을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 둘은 흑인이다.

196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이 백인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공공장소에서 유색인종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인 ‘남부 짐 크로 법’은 1965년까지 유효했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은 무효이고, 병원에서라도 흑인은 백인 간호사에게 간호를 요구할 수 없다. 유색인 이발사가 백인 여성의 머리에 손대는 것은 불법이었다. 백인은 인간이었지만, 흑인은 아니었다.

억압과 차별로 가득한 현실을 변화시키자!

어느 날, 아이빌린은 안주인인 리폴트로부터 굴욕적인 말을 듣는다. 집 밖에 화장실을 만들어 줄 테니 그곳에서만 용변을 보라는 지시다. 마을 전체가 유색인 전용 화장실 만들기에 열을 올낸다. 흑인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바이러스도 백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나름 과학적인 설명이 흑백차별을 정당화한다. 푸코가 지적했듯, 근대에서 병원으로 상징되는 의학 담론은 학교(교육)와 교도소(사법체계)와 더불어 사회를 통제하는 중요한 한 축이었다.

요리실력은 최고이나 백인에게 자주 말대답을 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기 일쑤인 미나.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마을의 실세인 힐리의 집에서 쫓겨난다. 재취업뫀 힘들기만 하다. 유색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아이빌린과 미니. 그런 그녀들에게 스키터라는 백인 여성이 접근한다. 스키터는 아이빌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조건 맞는 남자와 만나 유색인 가정부를 부리며 허세 떠는 것은 질색! 작가의 꿈을 안고 대학을 졸업한 스키터는 유색인 가사 도우미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려 한다. 흑백 통합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 집단 린치를 당하던 그 시기, 그녀의 결정은 위험하다. 아이빌린과 미니를 설득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다. 스키터는 거듭 말한다. 현실의 모순을 바꾸어 보자고. 흑인 가사도우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백인 아이가 커서는 자신의 부모처럼 흑인을 무시하게 되는 현실을 변화시키자!

셋은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헬프』

3명의 여성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800쪽에 달하는 장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존 116주 베스트셀러, 미국에서만 300만 부 판매되었다는 사실이 입증하듯 저자인 캐스린 스토킷은 자신의 이야기로 독자를 잡아두는 데 탁월하다. 등장인물 한 명에게 집중하지 않고 3명의 시선으로 서사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마치 3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풍만함마저 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헬프』는 수작이지만 작품이 담는 내용도 훌륭하다. 여성학자이자 후기식민주의자로 유명한 가야트리 스피박이 이 작품을 봤다면 최고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하위주체로서, 주류역사에서 은폐된 유색인 여성의 삶을 소설로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1세기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두에서 다룬 드라마 「로맨스 타운」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드라마에는 뚜 자르린이라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그녀와 같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가사 도우미로 일한다. 2등국민임을 자부하던 식민지 조선,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백인이 아닌 그녀/그들을 대했는가? 소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화두다.

글 : 드미트리 (//blog.yes24.com/lug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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