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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소셜 맥거핀]음모론과 소셜 맥거핀

음모로 해석하는 신념체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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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맥거핀을 ‘세련된 음모론’ 또는 ‘진화한 음모론’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음모론은 글자그대로 어떤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음모’라는 틀로 해석하는 신념체계 또는 감수성의 다발이다.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하는 케네디 암살음모론, 달 착륙 조작설, 9.11 음모론들이 대표적인 음모이론들이다.

*소셜 맥거핀?

소셜 맥거핀(Social Macguffins)은 사회에 현존하는 적대들을 은폐?왜곡하는 사이비 적대를 의미한다. 사이비 적대는 무지한 대중을 향한 여론조작이나 이데올로기적 기만을 단순히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계몽된 대중’이 즉각적으로 체험하고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심지어 스스로 재구성하는 ‘과잉의 현실(hyper reality)’이다.

소셜 맥거핀을 ‘세련된 음모론’ 또는 ‘진화한 음모론’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음모론은 글자그대로 어떤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음모’라는 틀로 해석하는 신념체계 또는 감수성의 다발이다.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하는 케네디 암살음모론, 달 착륙 조작설, 9.11 음모론들이 대표적인 음모이론들이다. 미국의 TV 드라마 시리즈인 <엑스파일>,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다빈치코드』등이 음모론을 소재로 만든 대중문화상품이다. 프리메이슨과 성당기사단이라는 음모이론의 아이콘에 대해 탁월하게 다룬 작품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가 있다. 그럼 음모론의 특징은 뭘까?


첫 번째는 ‘거악(巨惡)’ 대 ‘양민(良民)’의 적대구도다. 전형적인 음모론은 더없이 용의주도한데다 강력한 힘까지 가진 개인이나 집단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개인이나 집단이 사악한 목적을 위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기만하는 거대한 음모를 꾸몄고, 그 음모의 결과 현재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음모론은 특정한 형태의 적대를 항상-이미 전제한다. 그 적대의 구도는 ‘강자 대 약자’ 또는 ‘엘리트 대 민중’으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민중주의 성향을 강하게 띤다. 절대다수의 음모론들이 부유층과 고위관료 같은 파워엘리트의 정보통제와 비밀주의를 비난하며 그들에게 맹렬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음모론의 두 번째 특징은 ‘사건 원인에 대한 극단적으로 단순한 설명’이다. 잘 만들어진 음모론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매혹되는 것은 그것이 매우 논리정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신봉자들은 몇 개 되지 않는 근거들을, 정해진 결론에 부합하는 것만 자의적으로 추려내 재배열한다. 그러니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설명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다.


세 번째 특징은 비밀주의다. 음모를 설계하고 실현하는 조직 또는 개인은 거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항상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 숨어 암약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공권력과 매스미디어도 그 실체를 밝히지 못한다(어쩌면 공권력과 매스미디어도 이미 그들의 손에 장악당한지 오래일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결정적 증거’를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지 소수의 예민한 사람들만이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의 낌새를 눈치챌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비밀주의는 음모론의 신봉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주는데, 이를테면 음모주체들의 엄격한 비밀주의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빙산의 일각’만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입증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음모론의 최대 매력은 복잡한 사건을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것이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 일어나는 복잡하고 두터운 존재론적 사태이다. 그래서 음모론에 대항하는 가장 흔한 반론은 ‘우발성의 논리’가 된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건이든 이유와 원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치면서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떤 거대한 배후세력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식의 설명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음모론은 이러한 현실주의에 의해 완전히 격파된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음모론은 횡행하고 있다. 특히 소셜 맥거핀에 초점을 두고 말한다면, 음모론은 오히려 더 교묘해지고 정교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소셜 맥거핀: 음모론의 ‘진화형’


일본의 TV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 15화에는 인공지능의 ‘진화’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일명 ‘타치코마’로 불리는 인공지능전차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주어진 명령만 수행하고 논리적 오류에 대해서만 지적하던 이 로봇들이 몇몇 계기를 통해 점차 각자의 개성을 획득하고 어느 순간 자기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타치코마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인간과 더 비슷해질 경우 인간의 공포를 불러 폐기처분될지 모른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급기야 인간들 앞에서 ‘평범한 로봇’ 흉내를 내기에 이른다. 타치코마의 지능이 ‘진화’했다는 의미는 논리연산능력이 올라갔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사고하는 유연성이 창발(創發)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전혀 다른 영역이긴 하지만 음모론의 ‘진화’도 형식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다. 음모론이 몇 개의 팩트(fact)들을 얼기설기 꿰어 만든 하나의 완결적 논리로 제시되더라도, 단지 논리적 인과관계에만 의존한다면 보편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하지만 만일 우연적 요소와 상황, 맥락에 대한 고려가 적재적소에 양념처럼 첨가된다면? 그럴 경우 음모론은 더 이상 몇몇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망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는 거대한 사기극이 될 수 있다. 아니, 그쯤 되면 그것을 사기극이라 부르기도 좀 모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음모론은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 실재의 차원에 올라섰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셜 맥거핀은 바로 그런 음모론을 가리킨다. 여러 우발적 요소가 덧붙여짐으로써 단순한 음모론만으로는 지니기 어려운 리얼리티를 획득했거나 아니면 여론조작에 성공해서 담론의 사회적 검증기제 자체를 아예 마취시켜버리는 경우, 소셜 맥거핀은 일반적인 검증과 계몽만으로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진화한 음모론’이 되며 일종의 사회적 신드롬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 말했다면, 어떤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소셜 맥거핀이란 것이, 좌파들이 오래 전부터 애용해오던 어떤 유명한 개념과 유사하다는 걸 말이다. 바로 ‘지배이데올로기’다.

지배이데올로기란 한 마디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공교육 등의 매커니즘을 통해 재생산되고 강화된다. 확실히 지배이데올로기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분석하는데 여전히 강력하고 유용한 틀이다. 그러나 실재와 가상의 이분법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너무 정태적이어서 인터넷과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21세기의 역동적이고 돌출적인 대중현상에 대해 적실한 설명을 제공해주기 어렵다. 더구나 다양한 사회적 적대가 드러나거나 은폐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엔 지배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적대의 담론체계는 ‘적’과 ‘우리편’을 이분법적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음모론의 특징과도 관련이 있을 법 하다. 소셜 맥거핀을 ‘진화한 음모론’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면, 최근 한국사회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음모론적 주체’의 출현에 대해 해석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모론적 주체란 과연 무엇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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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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