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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하자 청중들이 달아났다?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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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방법에 깃든 고전적 정신. 작곡가로서 쇤베르크의 ‘출발점’은 사실상 선배 작곡가 말러의 ‘종착점’과 동일했다. 후기낭만주의의 세례를 충분히 받고서 작품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오늘의 클래식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
우리 시대에 태어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세기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40명을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에 대한 좌표를 스스로 세운 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독자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무조음악과 12음 기법으로 현대음악의 길을 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


아르놀트 쇤베르크

작곡가로서 쇤베르크의 ‘출발점’은 사실상 선배 작곡가 말러의 ‘종착점’과 동일했다. 후기낭만주의의 세례를 충분히 받고서 작품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현악 6중주 〈정화된 밤〉과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초기 쇤베르크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곡가 자신도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949년 그는 “말러와 슈트라우스가 음악계에 나타났을 때, 그들의 출현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모든 음악가들은 그들의 편이나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은 스물세 살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음악에 열광했고 단(單)악장의 교향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정점을 찍은 곡이 〈정화된 밤〉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였다”고 술회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출발부터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정화된 밤〉은 빈음악가협회로부터 수차례 연주를 거부당했고, 협회 위원은 작품을 듣고 “채 마르지 않은 바그너의 오페라〈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악보에 누군가 덕지덕지 새로 칠을 해놓은 것 같다”고 불평했다. 비록 혹평이지만, 돌아보면 바그너에서 말러와 슈트라우스를 거쳐 초기 쇤베르크로 이어지는 음악적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낸 평가이기도 하다.

1912년 런던에서는 ?베르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섯 개의 작품」이 연주됐지만, 당시 영국 언론은 “그것이 정말 음악이라면 아마도 미래의 음악일 것이다. 우리는 그 미래가 우리로부터 아주 먼 곳에 있기를 바란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쇤베르크는 청중의 반감에 대해 “아마도 이 악몽과 불협화음의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과 방법상의 광기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정한다. 이렇게 느낀 사람들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너그러웠다.

이처럼 그가 너그럽거나 관조적일 수 있었던 것은 “참된 작곡가가 곡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스스로 즐겁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그는 “참된 예술가”와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작곡을 단념해버리는, 단순한 장인”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에게는 오로지 작곡가의 내적 정합성이 중요했지만, 그만큼 청중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1913년 4월의 풍자만화. 쇤베르크가 지휘를 하고 있고 당황한 청중은 놀라서 달아나고 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람 중에는 작곡가 슈베르트도 보인다.

바그너부터 말러와 슈트라우스까지 19세기 후반 유럽의 고전음악을 뚜렷하게 특징짓는 현상은 ‘조성(調性)의 불안’이다. 문화사학자 칼 쇼르스케는 “음악에서의 조성은 초점의 집중이라는 점에서 미술의 원근법이나 바로크 시대의 신분질서, 정치에서의 절대주의와 동일한 사회?문화적 시스템에 속한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후세 작곡가들은 조성의 규칙들을 점점 번거로운 구속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바그너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반음계를 극한까지 자유롭게 사용하며, 모호하고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으로 곡을 전개해나갔다.

쇤베르크 역시 “이미 충분히 사용한 음의 관계는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더 이상 가치 있는 사고를 전달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든 작곡가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허물어지고 있던 낡은 건물을 받치던 마지막 기둥마저 해체한 작곡가가 바로 쇤베르크다. 반음계와 불협화음을 사용하는 단계를 지나 조성을 아예 무의미하게 만드는 ‘무조(無調)’라는 방법론을 채용한 것이다. 애당초 그가 혁명적이고 과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고민에 충실하고 정직했기 때문에 조성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점은 음악사의 아이러니다. 그는 “나는 내가 부딪히게 될 저항을 이미 느끼고 있다. 이 저항은 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쇤베르크가 그린 <풍자>. 그가 무조음악으로 나아간 시기는 빼어난 아마추어 화가였던 그가 표현주의의 깊은 영향 아래 추상적 경향으로 향했던 시점과 일치한다.

쇤베르크가 작곡가로 입문할 당시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는 고전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였던 브람스와 낭만주의의 대담한 혁명가였던 바그너였다. 이는 쇤베르크가 전통의 ‘계승자’인 동시에 ‘혁명가’로 발전할 잠재력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적인 바그너가 그의 ‘작풍(作風)’을 규정했다면, 고전적인 브람스는 그의 ‘성품’을 규정했다. 역사학자 도널드 그라우트가 훗날 쇤베르크의 음렬(音列)음악인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듣고서 “브람스 작품에서 모든 음므 틀리게 연주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무너진 건물을 재건축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설계도가 필요한 법이다. 기존 조성의 법칙을 포기한 뒤 쇤베르크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기나긴 침묵에 들어갔다. 고심 끝에 그가 내놓은 방법론이 바로 ‘12음 기법’(한 옥타브를 구성하는 12개의 음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작곡가가 스스로 밝힌 정식 명칭은 ‘상호 관계에 의존하는 12개의 음에 의한 작곡법’이다. 이제 음표라는 ‘행성’은 으뜸음이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개별적인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음을 중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기가 됐다. ‘강조된 음은 다시 으뜸음으로 의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음 반복이 하나도 없을 경우, 1,200개의 음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면 12개의 음이 100번씩 나오게 될 것이다. 작곡은 점점 본능이나 영감이 아니라 수학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쇤베르크는 첫 아내가 타계한 이듬해인 1924년 제자 루돌프 콜리슈의 누이 게르트루트와 결혼했고, 그 이듬해에는 작곡가 페루초 부소니의 뒤를 이어 베를린 예술학교의 교수로 임용됐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안정을 찾는 듯 보였지만,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집권과 함께 1933년 학교에서 해임됐고 그해 뉴욕으로 향했다. 작곡가는 생전에 다시 유럽을 밟지 못했다.

193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쇤베르크는 UCLA 교수로 부임하고, 〈현악 합주를 위한 모음곡〉을 시작으로 작곡 활동을 재개했다. 전후에는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반면 「야곱의 사다리」와 〈모세와 아론〉을 완성하기 위해 신청했던 1945년 구겐하임 재단의 기금 심사에서는 탈락하기도 했다. 이렇듯 찬사와 오해는 말년까지 작곡가를 줄기차게 쫓아다녔다. 1947년 뉴욕의 예술문학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내가 어느 정도의 공헌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상은 내 반대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진정 나를 도운 것은 그들이었다”고 말했다.

쇤베르크는 다른 작곡가와는 달리, 29편의 강연록과 622편의 논문과 평론을 남긴 음악 이론가이기도 하다. ‘12음 기법’을 창안한 뒤인 1921년에는 제자 요세프 루퍼에게 “앞으로 100년 동안 독일 음악의 절대적 우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12음 기법을 통해 주제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 언젠가 작곡과에 입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의 바람은 현재 한국 음대 작곡과의 커리큘럼에서도 대체로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1927년 엄격한 음렬 법칙으로 쓴 현악 4중주 3번을 발표한 뒤, 쇤베르크는 제자이자 처남이 된 콜리슈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창작 과정이 아니라 ‘어떤 작품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자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 음악은 ‘12음’ 작품이 아니라 12음 ‘작품’일세”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를테면 방법론은 ‘혁명적’이되, 정신은 ‘고전적’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실제 쇤베르크는 “나는 혁명가가 아니므로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한 일은 혁명도 아니고, 무질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곡 기법만이 아니라 그 밑에 숨어 있는 고뇌까지 함께 읽어주기를 기대했지만, 후배 작곡가들은 ‘12음 기법’을 음정뿐만 아니라 음의 길이와 강약, 음색에까지 확대 적용시키며 거침없이 질주해갔다. 그 끝에는 막다른 골목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새로운 돌파구가 있었을까. 20세기 음악사는 쇤베르크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양분되기에 이르렀다. 쇤베르크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적대감에 시달렸지만, 여전히 현대음악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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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훈

오늘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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