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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관객에 맥주 투척해도 환호하는 축제?

불혹에 일어서다 : 어느 40대 음악팬의 유럽 록페스티벌 정복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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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유럽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주말마다 각종 록페스티벌을 점령하겠다는, 한국의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세계적으로도 별로 사례가 없을 거다. 아마도 분명히. 유럽은 록페스티벌의 본산이다. 비록 세계 최초의 현대적 대형 록페스티벌은 1969년 미국에서 열렸던 우드스톡이지만 현재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하며 가장 아름다운 페스티벌은 1970년부터 시작,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다.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실현하긴 어렵다. 평탄한 인생의 길에서 벗어나 자신이 꿈꾸던 길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건, 실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생의 매뉴얼’이란 게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10대 때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20대 때는 취업을 목표로 스펙을, 30대 때는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재테크를, 40대 때는 은퇴 이후를 목표로……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매뉴얼이 죽을 때까지 펼쳐지는 상황에서 다른 삶이란 대부분 이룰 수 없는 꿈인 게 어쩌면 당연하다. 삶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사회의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는 인생. 슬프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40대 중반에 그런 매뉴얼을 집어던지고 다른 삶을 택한 사람이 있다. 잘 알려진 이는 아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과장으로 살아가던 사람이다. 단, 그에게는 특별한 여가가 있었다. 록을 좋아했다. 음반 감상만으로 그친 게 아니었다. 주말이면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나이대의 관객을 라이브 클럽에서 보는 게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단, 그는 다른 또래 관객들처럼 멀리서 팔짱끼고 ‘애들 노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지 않았다. 격렬한 슬램판으로 뛰어들어 ‘애들’과 함께 놀았다. 남들이 룸살롱에 돈을 쓸 때, 그는 일본을 오갔다. 일본을 찾은, 좋아하는 밴드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번잡한 일상의 틈에 음악을 끼워놓곤 하며 몇 년을 살았다. 아무도 그를 꼰대라 여기지 않았던 건 그런 연유에서였다. 20대 초반의 청춘들과 함께 밴드 티셔츠를 입고 공연을 본 후 술자리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는 이를 누가 꼰대라 생각하겠나. 심지어 아저씨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대학생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형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혹은 백동선이라는 이름 대신 ‘사막늑대’라는 아이디로 불리는 40대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일과 취미를 언제까지 병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취미가 일에 지장을 준 건 아니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생기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쌓였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가 보이지. 50 넘어서 회사 관두면 그다음에 하는 게 뻔하더라고. 그렇게 되기 전에 관둬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 타이밍이 딱 마흔다섯 살, 그전에는 사표를 내겠다 마음을 먹었었지.” 그 이후의 계획은 창업이나 재취업 같은 게 아니었다. 여행이었다.

“예전에 이스라엘에서 키부츠(이스라엘식 워킹홀리데이)에 있었어. 원래 그걸 마치고 유럽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룸메이트와 사이가 너무 틀어지는 바람에 갑자기 귀국을 하게 됐지. 그때 유럽에 못 간 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 그때의 미련, 그리고 일본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쌓인 본토에 대한 동경, 거기에 그의 출퇴근 수단이자 장거리 이동수단이었던 자전거. 이렇게 세 가지가 맞물려서 그에게 남다른 여행계획을 세우게 했다.

여름철 유럽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주말마다 각종 록페스티벌을 점령하겠다는, 한국의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세계적으로도 별로 사례가 없을 거다. 아마도 분명히. 유럽은 록페스티벌의 본산이다. 비록 세계 최초의 현대적 대형 록페스티벌은 1969년 미국에서 열렸던 우드스톡이지만 현재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하며 가장 아름다운 페스티벌은 1970년부터 시작,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다.

글래스톤베리를 전후해서 유럽에서는 매주 수많은 페스티벌이 열린다. 주말마다 텐트를 짊어지고 페스티벌을 즐기러 가는 이들이 우글우글거린다. 아직 초창기인 한국의 페스티벌과는 달리, 각각의 페스티벌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관객을 부른다. 10만여 명이 모이는 초대형 페스티벌부터 수백 명 정도가 모이는 작은 페스티벌까지. 현존하는 모든 장르의 슈퍼스타들이 무대에 서는 화려한 페스티벌부터 특정 장르의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소박한 페스티벌까지. 그야말로 음악이 여름을 가득 메운다. 음반만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단독 콘서트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야외와 인파가 만나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은 말 그대로 축제다.퇴직 후 첫 여름을, ?는 축제의 나날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한두 달 계획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일 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일찌감치, 그러니까 전년도 가을부터 여름에 오픈하는 페스티벌 티켓을 하나둘씩 구매했다. 배수의 진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스케줄이 없으면 사표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중교통이 아닌 자전거가 주된 이동수단이었다. 거기에 안락한 숙소가 아닌 캠핑이 주된 숙박수단이었다. 더욱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동안 타던 미니벨로 대신 여행용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장만했다.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온갖 자전거 용품들과 캠핑 장비도 하나둘씩 사 모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가을과 겨울과 봄을 보냈다. 그러나 회사란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나오기도 어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나오기가 어렵다. 10여 년간 고락을 같이한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이별을 고하는 게 쉬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타이밍을 기다렸다.

회사 측이 인사와 관련해서 그에게 실수를 했다. 남들은 섭섭해했겠지만 그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의 원대한 계획을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드디어 때가 왔노라”, 외치고 다녔다. 마침내 사표를 냈다. 여행을 떠나기 두 달 전이었다. 느긋하게, 천천히 평일 오후의 자유를 만끽하며 못다한 준비를 차곡차곡 마쳤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출발하기도 전에 우여곡절이 시작됐다. 장거리 여행에 사전적응코자 하던 라이딩 도중, 손목을 다친 것이다. 깁스를 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시간은 배려를 모르는 법. 출발이 임박했지만 손목의 깁스는 압박붕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손이 자유롭지 않은 건 변함이 없었다. 허나, 이삼 주면 완치될 부상 때문에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 미련 없이 비행기를 탔다. 자전거를 분해해서 상자에 포장하고, 배낭에 텐트와 자전거용 가방들을 바리바리 넣고.


5월 말, 그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에서 날아올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가 사방에서 귀로 날아드는 이질감을 느끼며 자전거를 조립했다. 몸을 싣고 페달을 밟았다. 그의 첫 여행지는 락암링(Rock Am Ring)이었다. 매년 6월 초 뉘른부르크 자동차 경주장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유럽의 여름 페스티벌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올해의 경우 키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람슈타인, 슬레이어 같은 밴드들이 무대에 섰다. 전 세계의 헤비록 팬들을 열광시키고도 남는 라인업이었다. 생전 처음 간 유럽 록페스티벌, 생전 처음 간 독일. 여기에 ‘생전 처음’이라는 수식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수식어가 가져다주는 낯설음도 필요 없었다. 그 역시 락암링에서는 낯선 존재였으니까.

최근 유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한국 음악팬들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은 영국 페스티벌에 국한된다. 독일, 그것도 헤비록이 주가 되는 페스티벌은 아직 한국인에게는 미개척지에 불과하다. 이 낯선 동양인 중년남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독일인들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계획, 그러니까 자전거로 유럽을 일주하며 록페스티벌을 순례한다고 밝히자 그들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했다. 그리고 이 여행자에게 맛있디맛있는 독일 맥주를 건네며 축원을 빌어주곤 했다. 원산지의 맥주를, 그것도 이방인을 반겨주는 독일인들의 환대 속에서 마시는 동안 공항에서 뉘른베르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며 했던 고생들은 깡그리 잊혀졌다. 그러니까, 지도를 잘못 봐서 평지에 있는 줄 알았던 페스티벌 개최지가 알고 보니 산꼭대기여서 페달을 낑낑거리며 밟아야 했다던가 하는.

거칠디거친 음악들이 연주되는 락암링이다보니 관객들의 분위기 또한 그랬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객석 뒤편의 관객들이 쉴새없이 앞으로 투척하는 맥주였다. 주된 타깃은 남자친구의 목말을 타고 객석 위로 솟아오른 여자들. 허나, 맥주를 맞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환호를 지르고 당사자들 또퇇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쨌든 페스티벌, 즉 축제인 것이다.

그의 축제가 록페스티벌에서만 있던 건 아니었다. 람슈타인의 공연이 끝난 후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까지 자전거로 향했다. 캠핑 문화가 발달한 유럽이니만큼 곳곳에 유료 캠핑장이 있었다. 하루 종일 달리다가 몸이 고되면 그 캠핑장에 텐트를 치는 일정이었다. 혼자만의 캠핑이고 어딜 가나 초행이었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거다. 자연스럽게 튺안감이 밀려온다. 핸드폰 및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화장실의 전원에 플러그를 꽂고 서성이는 그를 보며 다른 유럽인 캠핑족이 말을 걸어왔다. “불안해할 건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는 아무도 당신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을 테니까.” 캠핑족끼리의 불문율이었다. 그후로 많은 캠핑장을 거쳤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는 어떤 사소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텔만큼 안전했다. 호텔에서는 누릴 수 없는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다. 폐쇄적 환경의 안전함과 개방적 환경의 교류가 모두 있는 곳, 캠핑장이었다.

자전거 도로가 무척 잘 갖춰진 독일, 자전거 도로가 부실한 데다가 업힐과 다운힐이 끝없이 펼쳐진 프랑스를 거쳐 벨기에로 넘어갔다. 영국으로 향하는 유로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기차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 내렸다. 런던 근처의 치체스터까지 또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오픈 후 20분 만에 15만 장의 표가 동나버리는 글래스톤베리 티켓예매 전쟁에서의 패배로 대신 택한, 글래스톤베리와 같은 날에 런던에서 열리는 하드록콜링까지 남는 한 번의 주말을 위해 치체스터에서 열리는 작은 블루스 페스티벌이 영국에서의 첫 행선지였다.

블루스 그 자체는 현재 영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는 장르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 록 음악의 뿌리가 블루스고, 당연하게도 블루스 팬들이 있다. 이 페스티벌은 그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다. 참가하는 관객은 500여 명 선.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매년 이 페스티벌을 찾는다. 몇 년 단위가 아니라 몇십 년째 6월 둘째 주가 되면 고향에 오듯 치체스터로 향한다. 이런 블루스 토박이들의 잔치에, 그는 아마도 처음으로 나타난 동양인이었을 것이다. 다른 어느 페스티벌에서보다 시선을 끄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대부분 중노년인 낯선 시선들은 그가 왜, 어떻게 여기 있는지를 들었을 때 다른 어느 페스티벌에서보다 따뜻하게 환대를 했다.

3일 내내 맥주와 사이더(사과를 주원료로 만든 영국술. 시큼한 맛이 난다)를 대접하는 건 물론이고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서의 가식 없는 대화를 나눴다. 국제적으로 이름 있는 뮤지션은 단 한 팀도 안 나왔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원래 참된 페스티벌이란 그렇다.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전에는 누구나 라인업에 목숨을 건다. 하지만 정작 페스티벌이 시작되면 공연은 심하게 말해서 배경일 뿐이다. 그 분위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핵심이다. 그건 지난해 여름, 내가 글래스톤베리에 갔을 때 깨달았던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에 세계 최고의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공식적인 스테이지만 해도 10개가 넘고, 비공식 스테이지까지 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대가 있다. 그러니 사전에 시간표를 짜야만 했다. 대학교 때 강의 시간표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짰을 만큼, 헤아리고 또 헤아려서 무슨무슨 공연을 볼지 계획을 짰다. 하지만 막상 페스티벌이 시작됐을 때, 공들여 짰던 시간표는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그저 그곳에 있는 15만 명의 인파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각양각색으로 꾸미고 각자 자신들만의 페스티벌을 즐기는 그 모습은 나도 모르게 R. E. M.의 을 흥얼거리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공연이야 언제든지 돈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볼 수 있는 거지만, 살아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런 장관은 돈과 시간이 있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여 ‘할 일 없고 심심하면 공연이나 보자’라는 사치스러운 생각마저 하게 됐다. 이 사치스러운 생각을 즉시 실행에 옮겼던 건 물론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찾은 블루스 페스티벌이었지만 평생 토트넘 핫스퍼(다른 프리미어리그팀이라도 상관없다)의 시즌 티켓을 사온 축구팬들과 같은, 기묘한 공동체적 분위기에 누가 공연을 하느냐는 안중에도 없었다.

3일 내내 그와 함께 어울렸던 영국의 노인들은 페스티벌이 끝나고 말했다. 반드시 내년에 이곳에 다시 오라고. 그래서 또 만나자고. 여행은 많은 친구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대부분 한 시간, 길어야 하루 이상을 가지 않는 친구다. 이방인과 정착민, 또는 이방인과 이방인끼리 스쳐 지나가며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운명, 그게 여행의 친구다. 하지만 그가 블루스 페스티벌에서 만난 노인들은 달랐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기약을, 그에게 건넸다. 이름 없는 블루스 페스티벌이 그에게 선물한 건 사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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