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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애플의 존재는 ‘공공의 적’?

아이폰 유행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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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은 60만 대가 팔렸다. 국내 유통망이 뚫린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올해 100만 대 판매가 목표라고 한다. 발매 초기만 하더라도 운이 좋으면 최고 20만 대 정도의 판매량이 예상됐었다. 아이패드는 더 유난스럽다. 업계에선 국내 유통 중인 아이패드가 4천 대 가량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이폰은 60만 대가 팔렸다. 국내 유통망이 뚫린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올해 100만 대 판매가 목표라고 한다. 발매 초기만 하더라도 운이 좋으면 최고 20만 대 정도의 판매량이 예상됐었다. 아이패드는 더 유난스럽다. 업계에선 국내 유통 중인 아이패드가 4천 대 가량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직 팔지도 않는 제품이 말이다. 최근 출시된 맥북 프로의 신제품 라인도 불티나듯 팔린다. 아무튼 애플이 만들면 뭐든 잘나간다. 맥주가 ‘MAC酒’라면 더 많이 팔릴 거다.


애플을 좋아하는 마니아 그룹은 세계 어디든 있다. 그럴만하다. 애플의 제품은 경쟁사에 비해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체계 자체가 바이러스 감염이나 해킹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폐쇄적이라도 광범위한, 이를테면 아이튠스 같은 인프라를 동원해 단순한 기기가 아닌 플랫폼으로서 기능한다. 무엇보다, 예쁘다. 호환성이고 나발이고 예쁘면 됐지. 그래서 나도 애플이 좋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애플이라는 이름은 몇 가지 색다른 층위의 인상과 영향력을 추가로 점유한다. 한국에서 애플은 민족주의자의 공공연한 적이다. 혹은 삼성의 독점과 횡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해방군이다. 삼성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언론매체 및 정치세력의 억압을 받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잘 팔린다. 민중의 힘! 그러므로 착한 기업이다.

불행한 일이다. 음모론에 가까운 이런 식의 인상을 뒷받침하는 한국적인 전제들이 대부분 실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산재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트위터에 ‘가족이 떠났습니다’ 따위 글을 남기는 공룡기업의 사람답지 않은 행보는 잠시 제쳐두자. 우리는 모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삼성의 아이폰 대항마 언론플레이를 기억한다. 삼성 특정 휴대폰의 하루 판매량이 아이폰을 앞질렀다는 기사는 범람하고, 삼성 휴대폰이 해외에서 폭발했다는 뉴스는 유튜브나 해외언론을 통해서나 겨우 접할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수는 차이가 나지만 하드웨어 성능은 오히려 앞선다”는 판에 박힌 멘트가 귀에 익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실상 퍼포먼스 자체는 애플의 제품이 한참 앞선다.

사용자를 베타테스터로 활용하는 기업들에 길들여진 우리는 쓰임새만으로 일상을 변화시키는 제품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애플의 제품은 그것을 실현한다. 나아가 그간 충성해온 고객들을 배려하지 않았던 거대기업에 저항할 수 있는 계기까지 만들어준다. SK텔레콤에 해지를 통보하던 순간의 짜릿함이란.

생활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정치권의 퇴행도 이를 거든다. “야 신발 찍지 마”로 시작해 과일촌을 거쳐 문익촌에 다다른 유인촌 장관의 해프닝은 애플의 제품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개인의 욕망과 자신이 속해 있는 단위의 욕망이 충돌한 극적 사례다. 해외언론에도 보도됐던데 요즘 국위는 이런 식으로 선양된다. 이 모든 유머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걸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애플에 관련된 우리의 모든 환상과 집착은 매우 한국적인 상황 아래서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착한 기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쁜 기업도 없다. 기업은 그냥 기업이다. 여기에 선량함이란 적용되거나 기대할 수 없는 주관적인 기준이다. 애플은 결코 해방군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이후 미군정이 시작된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애플의 AS를 받기 위해 전화통을 붙들어본 일이 있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접지도 안 되는 어댑터를 제공하면서 국내법을 운운하는 애플의 정책 앞에 무력해본 일이 있나. SK텔레콤을 시원하게 떠났다고 KTF에서 만족해본 일이 있나. 결국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기업일 뿐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데 신화는 없다. 당신이 애플에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개별적이고 충동적이며 자의적인 인상에 불과하다.

오늘은 애플이, 내일은 구글이, 모레는 어도비가 같은 지위를 얻을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한국적인 특수성 아래 사랑받거나 공격받는 대상은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척점에 있을 사람들은, 특히 삼성은 그걸 막는 데 비용을 허비하는 대신 그 원인을 정직하게 고심해보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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