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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만화가 최규석 ①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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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젊은이였던 적이 없는’ 젊은 만화가 최규석

‘한 번도 젊은이였던 적이 없는’ 젊은 만화작가 최규석을 만났다.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만화단편집인 『아미띠에』에 실린 최규석의 작가소개를 보면 “최규석의 특징은 피부에 와 닿는 현실에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민감하며 이야기를 중시하고, 그곳에 낯선 판타지와 유머를 과감하게 개입시킨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게 그의 만화는 충분히 사회지향적이지만, 그는 더 노골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규석 작가에게 대한민국에서 만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규석은 1977년 창원 출생으로 2003년 상명대학교 만화학과를 졸업했고, 2002년 동아 LG 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부문 대상,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초청작가,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 대통령상 선정, 2004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C』 등이 있다.


최근에 작업하는 것의 분량이 120페이지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거의 장편이나 중편인데요,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중편이죠. 속도는 예상보다 좀 느리고, 꾸역꾸역 하고 있어요. 콘티가 다 나온 상태여서 고민할 것은 별로 없구요.

내용은 어떤 건가요? 아직 공개하기 어려운가요?(웃음)

아니, 대충 밝힐 수는 있어요.(웃음) 애매하게 가난한 차상위 계층 정도 되는 애들이 주인공인데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니는데, 거기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애매한 고통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들의 일 년을 다 보여주는 이야기죠.

젊은 작가치고 어두운 얘기를 많이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으셨을 텐데요. 만화를 통해 뭔가 즐겁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제 책 중에서 『습지생태보고서』(이하 『습지생태보고서』)같이 웃기는 책도 있잖아요.(웃음) 보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제가 작업을 할 때는 별로 희망차지 않은 소재를 채택한다고 해도 내용을 채우는 것은 최대한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을 계속 들이미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 것은 상당히 웃깁니다. 콘티를 본 분들이 한 페이지에 평균 두 번씩은 (웃음이) 터지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어린이를 위한 교양월간지인 『고래가 그랬어』(이하 『고래』)에 연재할 때 평생 자신에게 거짓희망을 준 천사를 죽이는 장면이 있는 「불행한 소년」이 논란이 됐었잖아요. 발행인인 김규항 씨는 『고래』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은 수용해야 한다고 해서 넘어갔지만, 학부모들로부터 항의전화도 좀 왔었고, 정기구독을 끊은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 잡지를 아이들에게 구독시키는 층이 한국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데요. 그런 반응이 좀 당황스럽진 않았나요?

그런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내고 나서도 얘기했구요.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싣지 말라고 했습니다. 편집하는 쪽에서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고, 월간지에서 4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이 빠진다고 해서 큰일 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그냥 그대로 실렸더라구요.

스스로의 위악과 위선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는 느낌도 받았는데요. 일부러 어린이잡지에 좀 세게 그려본 것은 아닌가요?

제가 조절을 잘 못한 거겠죠. 그런데 그렇게 심하다는 느낌은 별로 안 받았어요. 약간 세긴 한데, 우화라는 형식 자체가 단순화가 많이 되기도 하구요. 사실 그와 반대되는 얘기가 워낙 많잖아요. 그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해서 작업했는데, 피가 나와서 그런지 거부감을 느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만화 속의 천사라는 것이 가상이고, 천사조차도 사실 실재하지 않는 거잖아요. 가상을 없애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싶었어요. 한국에서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특성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현실의 끔찍함에는 별로 놀라지 않다가 대중문화에서의 끔찍함에는 굉장히 과도하게 반응한단 말이에요. 실제로 과도하다고 느껴서 그런 건지, 계속해서 그런 교육을 받아와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표현이 나오면 사회가 어두워진다고 굉장히 단순하게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창작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작품에서의 끔찍함을 더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반대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갈 데까지 가도록 놔두고, 사회를 다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문화에 대한 책임을 많이 묻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을 따라해서 사고쳤다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웃음) 그런데 무슨 일만 생기면 “이 사람이 이런 만화를 보고 사고를 쳤다든가, 이런 영화를 보고 사고를 쳤다” 같은 얘기들을 하면서 원인의 하나로 몰아가는데, 그런 게 어떤 검열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요. 장르만화나 장르문학 하시는 분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저는 검열이 있다는 것을 인식 못하고 사는 편입니다. 다만 만화잡지라든가, 판타지문학은 애들이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검열이 많은 것 같아요. 별 표현도 아닌데, 청소년관람가 영화에서도 다 하는 표현을 영상도 아니고 글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죠.

현재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작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만화가 중 한 명인데요.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할 수도 있잖아요. 아직 최규석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홍보성 만화도 청탁한다고 들었는데요. 지금 상황을 보면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해나가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서 작품성향 때문에 작품의뢰가 끊기지 않을까 두렵지는 않으신가요?

제 직업적 특성일 텐데요. 제 밥그릇을 누군가가 쥐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똘끼 있는 출판사가 한 군데만 남아 있어도 가능할 거 아닙니까? 판매는 막지 못할 거잖아요. 출판사가 워낙 많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안 해요. 제가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거나, 누가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서웠겠죠. 그리고 돈을 굉장히 많이 버는 사람이라면, 세무감사 같은 걸 조심해야 될 텐데, 저는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잖아요.(웃음)


캐릭터를 잡을 때 주위 사람들의 캐릭터를 자세히 관찰해서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 유심히 관찰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오래 보다보면 어느 순간 딱 느껴지는 게 있나요?

자세히 관찰하는 편은 아닌데요. 캐릭터를 설정하려고 하다보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이나 말을 할 때 그 핵심이 뭔가를 추상해요. 볼 때는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하다가 저 사람 캐릭터가 괜찮다 싶으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는 걸까?’를 나중에 다시 생각합니다.

친구인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씨를 『습지』에서 녹용이 캐릭터로 녹여낸 것은 정말 절묘했는데요.(웃음)

그런 부분은 핵심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습관이라고 할까요?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대부분 피상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많이 느끼거든요. 저 사람들이 저 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저는 ‘껍데기만 가지고 대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 때문에, 껍데기를 걷어낸 상태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도 그 말을 하는 이유를 먼저 찾는 거죠.

본인 캐릭터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자꾸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꼬여서 자세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은 사람으로 설정했잖아요.(웃음)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지식인 캐릭터하고도 비슷한데,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동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쪼잔하다”는 말을 들으면 발끈하기도 하는데요. 자기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잖아요. 보기 싫은 것도 들춰내야 하니까.

자기를 관찰하는 것이 더 쉽죠. 『습지』 같은 경우는 괴로운 단계를 넘어가서 나온 거죠. 20대 중반까지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마음에 안 드는 것 천지였죠.(웃음) 그런 것을 고쳐서 살아도 보고, 행동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봐도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짜로 고쳐진 것이 아닌 데서 오는 괴로움도 있구요.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구요. 사는 게 괴롭기도 하고, 누구나 조금씩은 약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시트콤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거죠. 모두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단순하지만도 않고 복잡하지만, 다들 귀엽잖아요. 웃기고.(웃음)

『대한민국 원주민』(이하 『원주민』)을 보면 경상도 남자로 자라면서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많이 드러나는데요. 자기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자기가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잖아요. 그게 괴로울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웃음) 엄마나 누이에 대해서는, 어릴 때 모르고 살았던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들이 있죠. 페미니스트들이 얘기하는 것을 글로만 읽고, 그냥 피상적으로 ‘우리 집안도 똑같았구나’ 이런 생각, 가짜 미안함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가 제가 좀 변하고 나서 내가 나의 싫어하는 모습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나니까 사람이 유들유들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김혜리 기자는 “가족 인터뷰가 인터뷰의 정수”라고 했는데요. 다른 사람과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얘기할 수 있는데, 가족끼리는 자기 것을 다 끄집어내서 얘기하다보니 서로 상처를 받을 수 있잖아요. 『원주민』을 작업할 때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그런 점이 어려웠을 것도 같은데요.

그때는 가족 간의 대화가 편해진 뒤였어요. 20대 후반까지도 집에 가면 정말 말 없는 아들이었거든요. 지금도 물론 그렇기는 한데, 『습지』 하면서 부모님하고 다시 이 년을 같이 살았죠. 처음에는 되게 무서웠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습지』를 작업하고 나서 나 자신에 대해 시선이 부드러워졌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부드러워지더라구요. 시트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대화가 편해지죠. 그전까지는 옳음과 그름에 대한 대화, 이런 게 아니면 대화할 욕구를 못 느꼈다면 『습지』 이후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대한 대화들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습지』를 하면서 자기한테 관대해지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시선도 좀 바뀌었다는 얘기네요. 여유로워진 건데요.

일단 웃겨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죠.(웃음) 4페이지짜리 콩트만화고, 독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건데, 웃기면서 의미가 있어야 될 것 같더라구요. 사실은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긴 한데, 내 고민은 고민대로 하고, 그 고민을 가지고 그걸로 웃겨야 되니까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더라구요.

나이에 비해 더 과거의 풍경을 그리는 것 같다는 평들도 있잖아요. 『씨네21』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젊은이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표현도 했던데요.

동세대 젊은이들과 공유하는 문화들이 없었죠.

학교 다닐 때도 애어른처럼 ‘쟤들은 왜 저러지?’ 그러고 다녔겠네요.(웃음)

좀 그런 편이었죠. 애들이 괜히 패싸움하러 다니면 지랄하고 그랬죠.(웃음)

아무리 애가 어른스럽다고 해도 아이들만의 고민이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털어놓을 친구가 없으면 외롭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부모님한테는 얘기할 수 없는 게 있고, 주변의 친구들은 너무 유치해 보이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외로움을 잘 안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림을 그리면서 외로움을 해소했던 건가요?(웃음)

그림도 그렸지만, 친구도 있긴 했어요. 다른 친구들을 보면 그들끼리 정말 친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같이 있으면 친한데, 떨어져 있으면 기억이 안 나는 그런 친구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고, 우리 집에서 만날 놀고, 나도 그 친구 집에서 자고 하는 친구도 밖에 놀러 갈 땐 저랑 같이 안 간단 말이에요.(웃음) 물론 제가 잘 못 놀고, 돈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같이 어울려서 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던 거겠죠. 그런 데서 오는 우울함은 있었어요. 그래서 성격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하기도 했구요.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고 싶어서요. 친구들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타고나는 것 같은데, ‘이것도 교육인 것 같다. 뭔가 어릴 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친구랑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방식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과도해지면 왕따가 되는 거죠. 그냥 왕따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왕따 당했다고 일컬어지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부자연스럽더라구요.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겠죠.

자기는 친하고 싶어서 다가서는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모르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보석 같은 캐릭터인 거죠.(웃음) 고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대학에 가서는 많이 좋아졌던 것 같구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원주민』에 보면 「죽는 짐승」편이 3개, 「죽는 아이」편이 2개가 있는데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일찍 느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죽은 짐승을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거부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어릴 때 생긴 감수성이라기보다는 도시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받아들이는 게 너무 달라지니까 그 괴리에서 오는 생각들이었죠. 어릴 때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나중에는 그것이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었나요?

딱 결심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만화를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고, 실천을 했죠. 그리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먹고살 길이 안 열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일거리가 들어왔으면 다른 것을 했을 것 같아요. 대학졸업 이후에도.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도 몇 번 받고 하니까 만화가로 각인이 되다시피 해서……. 『습지』를 작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리까리했어요. 돈을 못 벌었으니까요. 『습지』 작업하면서 고료도 들어오고, 만화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화가로 자리를 잡았죠. 다른 것을 했으면 아주 가끔 단편을 발표한다거나 요즘 유행하는 웹툰식으로 직장인 만화 같은 것을 그렸겠죠.

만화방(대본소) 시장도 무너지고, 만화가 고급화되면서 서점 단행본 시장으로 변하는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시장이 안 생겼잖아요. 사실, 몇몇 작가들 빼고는 그 시장이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웹툰으로 넘어갔는데요. 제안도 들어왔을 것 같은데, 왜 안 했나요?

기회를 놓쳤죠. 시기를 놓친 셈인데요. 『습지』를 한참 연재할 때가 웹만화, 포털만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한창 연재하고 있을 때라서 “『습지』 끝나면 봅시다” 했다가 어떻게 하다보니 『한겨레21』에 『원주민』을 연재하게 됐죠. 계속했던 작업이 포털하고 안 어울리는 작업들이다보니까 시기가 늦어져버렸는데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할 생각이에요. 장편을 연재하든가. 포털에 게재하면 많이 보니까요. 많이 봤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이 있잖아요. 많이 안 봐도 크게 상관없는 작품이 있구요. 다음에 할 장편은 작가적 욕심보다는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하고 싶은 정치적인 내용이 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은 포털에 연재해야겠죠.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신 건가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저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애가 있었는데요. 늦게 학교에 온 친구죠. 『원주민』에 비닐하우스에 아빠랑 둘이 사는 친구가 잠깐 나왔었는데요. 그 친구가 나이가 많기도 하고, 그림도 잘 그렸어요. 그 친구 그림을 보면서 놀랐었죠. 그 친구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다보니까 재미를 붙였구요. 그 뒤로 쭉 이어졌던 것 같아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시골의 부모님들 같은 경우, 자식은 공부를 많이 시키려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만화 한다고 하면 반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교수가 되기 쉽다는 한마디 때문이었죠.(웃음) 아버지가 그때 경비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 아파트에 창원대학교 미대교수가 한 명 있었어요. 그분한테 상담을 했는데, “만화과 가려고 한다”고 하니까 “힘드시더라도 일단 보내라. 1기라서 교수 되기가 굉장히 쉽다”고 했대요. 그것에 혹하신 거죠. 자식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꿈을 위해서.(웃음)

요즘 만화 관련 학과도 많이 생겼는데, 교수 제안은 없었나요?

거의 없어요. 가끔 있는데, 제안받고 보면 거리가 너무 멀구요.

부모님 희망사항인데, 받아들이시지 그러셨어요?(웃음)

그래봐야 시간강사구요. 전문대는 진짜 기름 값밖에는 안 주던데요. 최호철 선생이 오라고 해서 청강대학에 가려고 했었어요. 가면 좋잖아요. 최호철 선생에게 그림도 좀 배우고. 그런데 돈을 너무 적게 주더라구요. 그 돈 받고 해도 상관은 없어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서 최호철 선생도 만나고 하면 좋은데요. 이게 자원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일종의 회사인데, 사장이 그 돈 주고 사람한테 일 시킨다고 생각하니까 짜증나는 거예요. 내가 그 돈을 받아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돈 주고 일 시키는 상황이 짜증나서 못 가겠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간다고 얘기했다가 나중에 못 간다고 했죠.

2남 4녀 중 막내인데요. 가난한 집에서 그림공부가 만만치 않았? 텐데요.

미술학원을 딱 10개월 다녔어요.

나머지는 독학을 한 건가요?

미술학원 다니기 전에는 독학을 한 거죠.

요즘엔 미술학원 다니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 것 같네요. 만화과도 실기를 많이 봤을 것 같은데요.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림솜씨가 있었던 건가요?(웃음)

10개월 다니면 재능이 좀 있는 친구들은 잘 따라가죠. 안 되는 친구들은 3년 다녀도 안 되구요. 그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그렸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그려서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라 실물을 보면서 많이 가져오는 스타일이라서 관찰력이 많이 늘었죠. 미술학원 가기 전부터.

상명대학교 만화과에 입학하셨는데요. 학교교육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게재되지 않은 학보 인터뷰를 보니까 상당히 비판적으로 말씀하셨던데요. 대학 미술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이기도 했던 것 같구요.

그렇죠. 특히나 신생학과들, 옛날에 디자인대학이 처음 생겼을 때도 그랬을 거예요. 국가에서 통제를 못 하니까 여기저기 막 생긴 거죠. 돈이 된다 싶으면 일단 만들고 보는 건데,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여건도 안 되는데 애들만 불러들이는 거죠. 등록금만 빨아먹고, 애들의 미래는 신경 안 쓰겠다는 거였어요.

영화판하고 비교해보면, 영화과 출신 감독들보다 사회에서 다른 경험을 하다가 또는 국문학과나 사회학과를 나와서 나중에 영화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감독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

만화가도 그렇죠. 만화가도 잘나가는 사람들만 보면 만화 안 하던 사람들이거든요. 젊은 작가들만 보더라도 강풀도 국문학과였죠. 메가쇼킹 그리는 만화가도 요리사였고, 원래 만화를 하지 않던 사람들이 더 잘하죠.

그렇다면 영화나 만화 교육에 문제가 있거나 교육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점이 있다는 말 아닌가요?

일단은 만화과를 가는 친구들이 대부분 스토리텔링보다는 그림에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에요.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죠. 분업화가 잘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으면서 스토리텔링에도 재능이 있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러면 분업이 잘 되어야 하는데, 분업을 해서 둘이 갈라먹기에는 시장이 안 좋죠.

허영만 작가 정도 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래야 김세영 선생을 쓸 만큼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만화라는 것이 스토리텔링이 강한 쪽이 일단 인기를 얻게 마련이죠. 그러니까 지금은 그림은 좀 못 그리더라도 스토리텔링이 좋은 작가들이 뜨는 분위기인데요. 강도영(강풀) 씨나 주호민 씨 같이 그림에는 신경을 좀 덜 쓰더라도 스토리텔링이 좋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게 되죠.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들은 마니아밖에 안 생기구요. 그런데 두 개가 합쳐졌을 때 대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둘 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때 대작이 나오는 건데, 지금은 그런 작품 나오기가 참 어려운 구조죠.

(계속)

☞최규석 작가의 작품 『대한민국 원주민』 책 속 내용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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