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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00만원 미만의 일자리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上)

최저임금 4,110원의 불편한 진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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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8월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취업한 십대 청소년 10명 가운데 6명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십대 청소년 329만 4천 명 가운데 취업자가 21만 3천 명이고 임금 노동자는 19만 5천 명인데,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58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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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00만원 미만의 일자리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下)


만약 월급 200만원 미만의 일자리를 모두 없애버린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될까? 갑자기 늘어난 인건비 부담 때문에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 공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설비를 뜯어내 중국이나 베트남같이 인건비가 낮은 나라로 옮겨갈 것이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거의 대부분의 일을 맡기는 커피숍이나 편의점, 주유소 등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제품 가격과 서비스 비용이 오르면서 물가도 뛰어오를 것이다.

당신이 신생 벤처기업의 사장이라고 생각해보자. 월급 120만 원 정도만 주면 커피도 타주고 복사도 해주는 비서 직원을 둘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200만 원을 줘야 한다면 잔심부름만 하는 직원을 두기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커피도 직접 타 먹고 복사도 직접 하게 된다. 화분에 물도 직접 주게 된다. 그리고 이왕 뽑을 거라면 좀 더 숙련도 높은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이왕 일을 할 거면 뭔가 좀 더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까. 사실 커피 정도는 직접 타서 마셔도 된다. 사장이나 상무나 전무나 부장이라도 자기 컵은 자기가 직접 씻어야 한다. 복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는 건 정서적으로도 좋다. 누구든 남의 잔심부름만 하면서 젊음을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임금이 올라가면서 기업들의 생산원가 부담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노동강도가 세지고 자연스럽게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단순노동에서 고부가가치 노동으로 옮겨가면서,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건 경제 전체로 볼 때도 좋은 일이다. 언제까지나 중국이나 베트남 등과 낮은 인건비로 경쟁할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월급 200만 원을 못 주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망하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옮겨가거나 그게 안 된다면 인건비가 낮은 해외로 넘겨주면 된다. 최저임금제도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넘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충분한 소비가 일어나고 그게 경제 전체로 볼 때도 좋은 일이다.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에서는 1938년 노사대표가 모여 찰츠요바덴 협약을 체결하고 산별노조를 제도화했다. 단체협상을 개별 기업단위가 아니라 산업단위로 끌어올리면서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고, 이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연대임금제였다. 스웨덴 노사는 대기업의 임금을 깎는 대신 중소기업의 임금을 올리자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고, 여기서 스웨덴 복지시스템이 출발했다.

연대임금제는 대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중소기업들은 반발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이 늘어난 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했고 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스웨덴은 1951년 이른바 랜-마이드너 모델을 도입하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시작하게 된다. 높은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퇴출시키되, 정부가 실업대책과 고용창출 전략을 마련하기로 했다.


만약 정부에서 모든 실업자에게 월 200만 원씩의 실업급여를 준다면 월급 200만 원 이하의 일자리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200만 원씩의 실업급여는 무슨 돈으로 줄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하고 그러려면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서, 더 많은 국민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실업급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제공해야 하고 끊임없이 고용창출을 고민해야 한다.

회사가 문을 닫아도 실업급여가 충분히 나오고 새로운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면, 공장이 문을 닫을 때 빨간 머리띠를 묶고 격렬한 시위를 벌일 이유가 없다. 만약 정부가 월급 100만 원짜리 일자리를 지키려고 하면 이 열악한 일자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들은 계속해서 낮은 인건비로 경쟁하려 할 것이고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그 수렁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한 시간에 4,110원이다. 최저임금은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임금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986년에 최저임금법을 제정해서 198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한 시간에 4,110원이면 주 40시간 노동 기준으로 85만 8,990원이다. 이 정도 월급을 받아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월 279만 5,053원인데 최저임금은 그 3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의 최저임금을 살펴보면 미국은 한 시간에 1만 648원, 영국은 1만 1,775원, 호주는 1만 3,685원, 네덜란드는 1만 5,011원으로 우리나라의 두세 배에 이른다. 일본도 1만 936원으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구매력 지수를 감안해도 우리나라가 턱없이 낮다. 한 시간 최저임금이 1만 4,581원인 프랑스에서는 6,676원짜리 맥도널드 빅맥버거 두 개를 사먹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300원짜리 하나를 사먹을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된다.

문제는 이렇게 열악한 최저임금조차도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데 있다. 올해 4월 민주노총이 전국의 임금노동자 2,97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당 4천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659명으로 22.2%나 됐다. 이 비율은 특히 20대 미만과 50대 이상에서 높게 나타났다. 정규직에서도 11.7%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하는데 비정규직은 이 비율이 29.7%나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30.8%로 더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8월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취업한 십대 청소년 10명 가운데 6명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십대 청소년 329만 4천 명 가운데 취업자가 21만 3천 명이고 임금 노동자는 19만 5천 명인데, 이들의 월평균 임금은 58만 원이었다. 시간당 평균임금은 4,111원이었는데, 지난해 최저임금인 4천 원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한 청소년이 63.7%로 12만 3천 명이나 됐다.

민주노총이 지난 3월, 지하철 청소용역 등 저임금 노동자 14명의 가계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한 달에 평균 129만 원을 벌어 163만 원을 지출, 34만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마다 20만 원 가량을 차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이른바 ‘워킹 푸어’의 근본적인 원인이 “고용을 늘린답시고 싸구려 일자리를 대량 창출한 지난 13년간의 고용정책이 주범”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가계지출의 대부분을 의식주에 소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식주와 의료비가 전체 지출의 68.4%에 이르고, 주거비도 일반 가구의 3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먹고살기도 힘드니 문화생활은 엄두를 못 내는 것이 당연하다. 전체 지출에서 문화생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 가구는 3.7%인 반면, 이들 저임금 가구는 0.8%밖에 안 됐다. 교통비 역시 일반 가구는 11%, 저임금 가구는 4%에 그쳤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다음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가 열린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와 사용자대표가 각각 9명, 공익위원 9명을 더해 27명으로 구성된다. 이 회의에서 최저임금안을 6월 29일까지 심의 및 재심의, 의결해서 제출하면 노동부장관이 이를 8월 5일까지 확정하고 9월 1일 부터 적용한다. 노동자대표는 당연히 최저임금을 올리려고 할 것이고, 사용자대표는 깎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합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노동자대표로 참여하는 민주노총은 내년 최저임금을 5,18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보다 26% 인상한 금액이다. 사용자대표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같은 요구에 펄쩍 뛴다. 가당치도 않다는 반응이다. 경총은 4,110원으로 동결하자며 맞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심지어 금융위기를 핑계로 최저임금을 6% 삭감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언뜻 보면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계는 절박하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깎으면 깎을수록 좋겠지만 노동자들은 당장 생존이 걸린 문제다. 5,180원으로 인상한다고 해도 월급 기준으로는 108만 2,620원밖에 안 된다.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최저생계비는 올해 4인 가족 기준 133만 원이다. 최저임금을 26% 인상해도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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