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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발견은 나를 알아내는 것이다

나도 때때로 기나긴 인생에서 몇 년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볼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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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몇 년만 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을 발견하라!

삶에서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탄생에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와 마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소중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친구나 연인도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서로를 알 수 있다. 무작정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라고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나’와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파스칼은 ‘세계의 모든 문제는 사람이 방 안에 홀로 있는 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의 상실이 곧 문제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 그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인적 없는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들어가 자발적인 은둔자로서의 삶을 택했다. 그는 왜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소로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자신이 얼마나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기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엎어 버리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아,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리도 용기가 있는지. 그는 철저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부와 명성을 좇는 생활을 버리고 2년간이나 고요한 통나무집으로 자신을 들이밀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의 경험을 기록한 이 책 『월든』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책들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나도 때때로 기나긴 인생에서 몇 년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 볼까,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몇 년만 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숨겨진 나의 또 다른 과정을 발견할 수도 있는 일 아닐까?

톨스토이 역시 그의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진정한 삶을 꽃피우게 되는 것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라기보다 홀로 자신의 생각과 마주 섰을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호랑이와 마주하는 것만큼의 용기, 다시 말해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음, 어쨌든 그 고요한 호숫가에 정착한 헨리 데이빗 소로는 월든 호수만큼이나 잔잔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을 건넨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 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세상에서 가장 드넓은 신대륙은 당신의 내면에 있다

소로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드넓은 신대륙, 그러나 지도에도 없는 신대륙, 즉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를 발견하라고 외친다. 소로의 말처럼 우리가 만약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된다면 삶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소로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이 모든 나라의 말을 하고 모든 나라의 습관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어떤 여행가보다 더 멀리 여행하고 모든 풍토에 익숙해지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죽게 만들려고 한다면 옛 철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당신 자신을 탐험하라. 여기에는 맑은 눈과 굳건한 용기가 필요하다.

소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탐험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맑은 눈과 굳건한 용기라고 말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대학 졸업장이나 현찰 1억, 강남의 서른두 평 아파트가 아닌 바로 ‘용기’다. 소로의 책을 읽으며 공지영의 에세이 『상처 없는 영혼』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그 구절을 읽으며 코끝이 매웠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바로 게으름 때문이라고요……. 진실과 마주 서지 않으려는 회피, 정직하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이마와 자신의 코와 자신의 입술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 게으름이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고 말입니다.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과연 ‘너’라는 사람과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정직해 본 적이 있느냐고.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비겁함은 우리를 더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을 당당히 마주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준비 중이거나 토익 시험을 치르기 전에, 즉 목표를 세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아는 것이다. 내 몸무게가 지금 정확히 몇 킬로그램인지, 내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정확한 목표를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장 중요한 ‘나’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꿈과 소망도 찾지 못할 것이다. 삶은 어쩌면 점점 더 자기 자신에게 근접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갖고, 여행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희뿌연 내 속내를 밝히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소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천성에 맞는 여러 여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대신 끌어다 댈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애를 써서 머리 위에 청색 유리로 된 하늘을 만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그 훨씬 너머로 정기에 가득 찬 진짜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명심하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서 두려움 없이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야 한다. 다른 고수의 북소리는 듣지 않아도 된다. 그 북소리의 음률 따위가 어떻든 귀를 닫아 두자. 소나무인 내가 반드시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나만의 계절을 살아가면 된다.

한동안 언제 어떤 장소에서 수없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나를 눈물짓게 만든 소로의 구절이 있었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언제나 옳다고.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 나가라고.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할 필요는 없다고.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고, 그는 말한다.

당신이 공중에 성을 지어 놓았다 할지라도, 당신의 작업이 헛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거기가 그것이 있어야 할 장소이다. 이제 그 밑에 기반을 세워라.

당신은 언제나 옳다. 그것을 믿어라. 당신이 공중에 성을 지어 놓았다 할지라도, 당신이 넘어져 오랫동안 비틀댄다 할지라도 당신은 옳다. 당신 자신을 발견하고, 그 길을 의심 없이 걸어라.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당신 자신을 잃게 되는 것, 그뿐이다.

당신 자신으로 살아라, 언제 어디서든

전혜린처럼 오랫동안 나를 매료시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니, 생각해 보니 있기는 있다. 10대 후반에 나는 신경숙의 글들에 매혹되어 거의 정신줄을 놓고 지낸 적이 있다. 밤낮없이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지낸 시절이었다. 그녀의 소설 『깊은 슬픔』은 세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내 열아홉 여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추억이 바로 신경숙의 소설이다.

스무 살 무렵 처음 전혜린을 ?났는데 그때도 거의 광적으로 그녀에게 몰두했다. 심지어 전혜린의 사진을 오려서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이 유명한 가수나 영화배우에 빠지듯 그렇게 나는 그녀의 글에 깊이 빠져 있었다.

전혜린은 1934년 1월 1일, 부유한 법률가의 집안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먹을 식량도 없이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도 그녀는 마치 소공녀가 입을 것 같은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책을 다니며 공주처럼 자랐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우며 자신을 무제한으로 사랑했던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했다고 밝힌다. 3~4살 때부터 한글과 일본어를 모두 읽을 정도의 교육을 받았으며, 여자가 중학교에 가기도 힘들었던 1952년, 전혜린은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아버지의 뒤를 잇는 법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1955년, 법학은 자신의 본질과 맞지 않다는 판단을 한 전혜린은 혈혈단신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 내부에 있던 자유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결국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뮌헨대학에서 전혜린은 독일 문학을 공부한다. 몇몇 독일 작품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에 독일 문학의 입김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녀는 유학 시절 결혼도 하고 딸도 낳는다. 4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모교인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많은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저술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1965년, 그녀는 불현듯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짧고 강렬한 삶이었다. 전혜린은 전설, 혹은 신화처럼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다.

전혜린이 죽고 그녀의 일기들과 에세이를 모은 유작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 하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들, 물질, 사치스러운 생활, 남자에게 의존 또는 기계와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면하는 의식, 이러한 것들 속에서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은 허위 위에 서있는 것이다.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신경력을 요한다. (…) 그러나 그것 없이는 전생의 의의가 무로 화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우리 삶에의 죄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 더 응시할 수 있는 것, 자기를 견딜 수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을 긴박하고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간혹 전혜린이 살았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감내해야 했을 수많은 제약들과 시선들.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자유로운 영혼. 그녀는 실제로 그 시선들로부터 최대한 자유롭고자 했으며 당시로는 파격이라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했다. 과년한 나이의 여성이 홀로 독일 유학을 감행한 것부터가 대단한 파격이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학생과의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혼을 쉬쉬하고 치욕으로 여기던 시절에 이혼을 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기도 했다. 전혜린은 20세기 중엽에 살던 21세기의 여인이었다. 시대를 앞지른 그녀의 진보적인 사상과 자유분방한 행동이 결국은 불행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 어떤 여성보다도 용감하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는 전 세계를 알아도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녀는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정에 넘쳐서 완전히 태울 듯 살았다. 생을 미친 듯이 살고 싶다던 전혜린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의 일회성을 명심하고 일순간을 아끼자. 미친 듯이 살자. (…) 나를 찾자. 나에게로 돌아가자!

안이하게 살고 싶다면 군중 속에 머물러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크기의 구슬들처럼 다채롭고 다양한 존재들이다. 다만 세상이 우리를 하나의 색깔과 모양, 크기로 재단하려 하는 것일 뿐이다. 이 사회가 정해 놓은 가치관에 부합하지 못할까 봐 겁을 먹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 물론 내가 정한 기준을 믿고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이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상과 타인으로 인해 내 마음이 가리키지 않는 방향으로 걷는 잔인한 짓을 나 자신에게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알고 보니 기어올라갈 수도 없을 만큼 좁고 깊은 천 길 나락이라면 어쩌겠느냐고? 또 다시 오랜 시간을 주저앉아 울거나 생채기가 온몸으로 방황하며 울부짖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을까?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가 다치는 것보다 남들에게 그럴 듯한 인간으로 비치기 위해 내 삶을 내가 연기하는 것이 더욱더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가!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군중에 섞여 나를 잃지 않고 진짜 내 모습으로 사는 일은 이번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내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진대, 하물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도 때론 너무나 무서운 일로 느껴진다. 자신이 언제까지나 푸른 초원이 있는 한 폭의 풍경화나 따뜻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으니까. 얼룩덜룩하고 냄새나고 거친 뒷골목의 풍경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아프니까.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하자. 언제나 어디서나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모습이라도 좋다. 혹시나 당신의 모습이 모래를 씹은 듯 일그러져 있다 해도, 날개를 빼앗긴 천사처럼 추락하고 있다 해도 말이다. 당신은 그냥 당신으로서 행복하고 불행해지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누군가 ‘진짜 자기에 이르는 길’을 생의 어느 시점에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 일생의 가장 커다란 업적일 것이라고. 나를 연기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실종된 내 삶을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무 같은 꼴이 아닐까? 그것을 진정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먼 훗날 되돌아 봤을 때 삶은 마치 글자가 없는 책과 같은 모양일 것이다. 그 삶이 아무리 화려하고 빛났다 해도 말이다.
전혜린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우리가 전 심장으로 사랑하는 그 무엇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공허하고 불만족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들로만 우리 삶을 채우자. 우리 심장의 가장 깊은 곳, 심장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로만 삶을 채우자. 타인이나 세상의 잣대로 당신의 심장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세상 어느 곳에 놓이게 되어도 그냥 지금의 당신으로 놓이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긴급한 테마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내가 깊이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가 아직 젊었을 때는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카사블랑카에 바를 열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친구가 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나의 자아에 어울리는 더 유익한 삶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매번 마치 방향키가 부러진 보트처럼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또 다시 ‘나’였다. 나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면서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절망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절망인지도 모른다. 투르게네프라면 환멸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지옥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서머싯 모옴이라면 현실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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