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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 신파, 지독한 사랑(1/2)
‘우울증 환자’를 읽다 _ 조안 윈 Joanna Wynne
조안에게는 집 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너무나 큰 두려움인데 우리들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우리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우울증 환자’를 읽다 _ 조안 윈 Joanna Wynne
“혹시 우리는 결혼이란 걸 너무 빨리하는 건 아닐까요? 도대체 왜 이삼십 대 철부지 시절을 결혼 적령기라고 부르는 걸까요? 겪어보니 진짜 사랑은 오십 대는 돼야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 오십 대에 첫사랑에 빠졌다는 게 어떻게 들릴지 알아요. 나도 어렸을 땐 늙은이들이 사랑한다, 어쩐다, 그러면 우습고 징그러웠으니까. 솔직히 저는 연애를 꽤 여러 번 해봤고 결혼도 해봤지만, 오십 대 중반에 만난 이 남자가 진짜 첫사랑이에요.”
“나도 가끔 이게 꾀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이렇게 살아가기는 나도 정말 싫으니까. 산다는 것 자체가 빡빡하고 어렵고 힘드니까.” 그러고 보니, 조안을 만나기까지 쉽지 않았다.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처음 만난 조안과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따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는데, 약속을 잡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끊임없이 전화를 해도 안 받기 일쑤였고, 이메일은 서너 번을 보내야 겨우 회신이 왔다. 게다가 조안은 그렇게 겨우 잡은 약속을 세 번이나 취소했다. 비싸도 너무 비싸게 군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도 바람을 맞으면 아예 만남을 포기할 각오까지 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우울증이라는 병이었다니.
말을 마친 조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우울증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인데. 그러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어봤다. “혹시 집 현관문을 여는데 어려움을 느껴본 적 있어요?” 그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관문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는 걸까? 왜 문을 못 연다는 걸까? 멍하니 있는 나에게 그녀가 다시 말을 건넨다.
“현관문을 여는 행위 자체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세요?” 옷을 잘 차려입고 화장을 하고 외출을 준비를 다 했는데, 막상 그 현관문을 열지 못해서, 문지방을 넘지 못해서 한 시간 이상을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는 그녀. 그렇게 서성이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숨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거나 너무 변덕스럽다고 생각하거나, 꾀병이라고 비웃었다. 조안에게는 집 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너무나 큰 두려움인데 우리들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우리들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유독 내 눈에 자주 띄었던 것 중 하나가 정신병원이었다. 영국에는 종합병원에도 정신 질환 병동이 꼭 딸려 있을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정신병원이 많다는 것. 참 신기했다. 거기에다 특수한 심리치료와 상담 치료를 담당하는 사설 기관이나 자선단체까지 합하면 과장을 보태어 영국은 방방곡곡 정신 질환 환자를 위한 시설로 가득했다. 영국에만 정신병이 돌림병처럼 돌았을 리도 없고 다른 나라에 비해 유별나게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가득한 나라도 아닌데 왜 이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은지 정말 궁금했다. 궁금증 덕분이었을까. 영국에 사는 몇 년 동안 나는 ‘치료’나 ‘상담’이란 걸 받으러 정신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친구로서, 이웃으로서, 취재원으로서 만났다. 그러면서 영국에 정신병원이 많은 이유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영국에 정신병원이나 시설이 흔한 이유는 그곳에 드나드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정신 질환이 창피하고 숨겨야 할 큰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에겐 정신이상인 막내 삼촌을 가진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삼촌을 부끄러워했다. 부모나 형제도 아니고, 삼촌인데도 그 이야기를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했으며, 그 어린 나이에도 삼촌 병원비 때문에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쓴다고 걱정했다. ‘집안에 정신병자가 있으면 3대가 망한다.’라는 엄마의 한숨 섞인 걱정을 나에게만 살짝 털어놓기도 했었다. 그에 비해 영국에서의 정신 질환은 크게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치부가 아니다. 오히려 기관과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정신적으로 문제를 못 느끼는 사람들조차 혹시 모르니 정기검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고민이나 문제에 부딪히면 도와줄 카운슬러를 찾아가고, 실제로 정신 질환이나 우울증, 공황 장애가 생기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정신병원을 찾는다.
물론 ‘왜 영국에 정신병동이 많은지’에 대한 유머와 낭설도 많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가득한 날씨 때문이라는 탓을 하기도 하고, 영국 신사로 대변되는 억압적인 교육제도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중세에 근친상간이 많아서 유전인자가 어떻다느니, 계급사회, 지역감정, 심지어 종교나 축구, 펍으로 대변되는 선술집 문화 때문이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이렇게 누가 어떤 이론을 내놓든 간에, 실제로 영국의 정신 질환 환자는 유럽의 이웃 국가들에 비해서도 다소 높은 게 사실이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영국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살면서 정신병에 관련된 질환을 경험한다는 것과 스트레스를 비롯한 정신적 문제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이 심각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통계 몇 개만 보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건 옳지 않다. 신체에 나타나는 이상과 달리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증세는 얼마나 자신이 엄살을 떠는지,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티를 내고 야단법석을 떠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환자 자신이 스스로의 질환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강도로 호소하느냐에 따라 다른 수치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상대적으로 복지가 잘 갖춰지지 않은 나라일수록 정신 질환자가 적은 이유는 먹고살기도 힘들고 팍팍한데 환자들이 자신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일일이 체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따라서 삐딱하게 보면 영국과 같이 사회복지 제도가 잘 돼 있는 나라의 경우, 정신 질환은 일을 때려치우고 먹고 놀기에 가장 편리한 핑계일 수 있으며,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을 갖고 백수로 살기에 가장 적당한 ‘훈장’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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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저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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