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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돈 들여 동남아시아 갈 바에야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특별한 호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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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관광단지의 전체를 걸어서 천천히 돌아볼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중문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하얏트호텔에서 시작해서 롯데호텔까지, 반대로 롯데호텔에서 하얏트호텔까지 천천히 걷는 것이 가장 좋다. 하얏트호텔에 차를 댔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호텔을 산책할 일이 있을까? 아니 산책할 만한 호텔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

“참, 저 관광단지라는 타이틀 별로지 않아?”

관광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워싱턴 야자 가로수길’을 달릴 때 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왠지 오래된 바이킹이랑 오리 보트가 있을 것 같아.”

그녀도 공감했다. 몇 번쯤 와본 곳이지만 들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그래도 우리는 또다시 이곳에 숙소를 정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람들하고 만나기 싫을 때마다 우리는 이곳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최대한 외국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우리는 함께 생각했었다.

***


‘관광단지’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아주 크게 “국가명승지”라고 쓰여 있다. ‘관광단지’의 느낌은 그와 다름없어 보인다. 이는 제주 중문관광단지를 찾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입구에서 중문관광단지라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진입할까 말까를 망설이게 한다. 이 촌스러운 지명은 수십 번을 넘게 제주를 찾은 나에게도 ‘이곳에서 무언가 특별한 추억이 남을까’라는 의문을 항상 남긴다. 하지만 제주도 중문관광단지는 세계 어느 휴양지역 못지않다.

***

중문관광단지의 전체를 걸어서 천천히 돌아볼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중문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하얏트호텔에서 시작해서 롯데호텔까지, 반대로 롯데호텔에서 하얏트호텔까지 천천히 걷는 것이 가장 좋다. 하얏트호텔에 차를 댔다.

팔각형의 제주 하얏트호텔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깨끗한 편이다. 특이한 겉모양만큼이나 내부 구조도 제법 볼 만하다. 원형에 가까운 팔각형의 내부가 로비에서 천정까지 뻥 뚫려 있는 구조다. 우리는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날씨가 따뜻한 5월이었기에 바깥 테라스에서 아침을 먹었었다. 호텔의 전형적인 아침 뷔페였지만, 진한 커피 향과 찬 바다 공기가 아주 로맨틱했었다.

오늘은 그때처럼 아침은 아니었지만, 그때처럼 습도는 충분했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콧속이 촉촉했다.

하얏트호텔의 왼편으로 내려가면 중문해수욕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우리는 그 통로를 자주 이용한다. 신라호텔에서 내려가는 통로보다 조금 더 가깝고 약간 더 로맨틱하며 덜 인공적인 느낌이다.

***

날씨 탓인지 바다의 파도는 높았다. 이런 날씨에 바다를 찾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사실 중문의 바다는 다른 제주의 바다보다 ‘차갑다’. 물의 온도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다. 절벽과 같은 바닷가의 뒷면과 유난히 센 파도가 그런 느낌을 더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호텔을 통해 내려와야 하는 특성 때문인지 바다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때는 큰 샤워 타월을 깔고 한참을 누워 있었었지.’

서로 여행 패턴을 아직 알지 못했던 터라 약간의 긴장감과 어색함이 이 중문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도 존재했다. 그래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둘 다 조금 어색해 보인다.

손을 잡고 모래 위를 걸었다. 반복되는 파도 소리가 좋았다. 그녀도 그때를 기억할까.

“어때? 기억나. 우리 여기서 꽤 오래 누워 있었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색했던 것 같은데.”

그녀가 웃었다. 그때처럼 꽤 어색하게. 키스하고 싶었다. 중문의 바다는 오래된 우리도 어색하게 만드는 듯했다.

***


오랜만에 오르는 계단은 역시나 힘들었다. 바닷가에서 신라호텔로 올라가는 계단은 길었고 지루했다. 하지만 거의 다 왔을 때쯤에는 오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계단의 끝에는 넓고 경관 좋은 정원이 있다. 멋진 리조트형 호텔과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대한민국에서 가장 로맨틱한 계단이다), <쉬리>라는 꽤 유명한 한국 영화를 찍었던 신라호텔의 정원은 내로라하는 휴양지에 지어진 세계의 특급 호텔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다. 비싼 돈 들여 동남아시아나 태평양 정도에나 가야 있을 리조트형 호텔의 정원을 제주에 오면 공짜로 쓸 수 있다니. 제주는 정말 매력 있는 곳이다. 낮에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고 <쉬리>의 벤치에서 기념사진만 찍더라도 충분히 기억에 남겠지만, 저녁 무렵 함께 걸으면 더 좋다.

그녀와 난 그때의 여행에서 두 번째 날 저녁에 이곳으로 와서 함께 뛰었다. 달이 뜬 바다의 바로 옆에 지어진 호텔의 산책로를 연인과 함께 뛰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좋았다. 저녁을 그득하게 먹고 방에 들어가서 쉬어야 할 타이밍에 그녀는 신라호텔로 나를 이끌었는데, 난 쿨하고 평소에 운동을 즐기는 남자처럼 함께 행동했다. 운동을 심하게 좋아하는 그녀는 나한테 약간만 뛰고 가자고 해놓고 건전지 광고의 토끼처럼 열심히 앞서서 뛰어갔다. 결국 난 지쳐서 조깅트랙에 누워버렸다. 그랬더니 그녀도 못 이기듯이 옆에 누웠고 쏟아질 것 같은 제주 하늘의 별을 감상했다.

<쉬리>의 벤치에서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이런 추억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 함께 뛴 그녀가 여전히 내 옆에서 같은 곳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녀도 생각하고 있을까 싶어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해변에서도 묻지 않았던가. 감 떨어지는 남자 같아 보일 것 같았다.

좋았던 기억은 오래 남는다.

***


신라호텔은 다시 롯데호텔과 연결된다. 두 호텔보다 늦게 지어진 롯데호텔은 아직도 ‘새것’ 냄새가 난다. 롯데호텔은 웅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규모다. 항상 ‘저 많은 방이 다 찰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이번에 와보니 꽤 많은 사람이 보였다.

서울 롯데월드의 한 귀퉁이를 떼어다 놓은 것처럼 인공적인 풍차와 연못, 인조 돌산이었지만 관광객들은 그런 것들 때문에 온 사람들 같았다. 하기야 이곳도 입장료를 받는 곳은 아니니 제주에 왔다면 놓치기 아까운 기념사진 코스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였다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찾은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인조 돌산을 가리키며 “저녁에 오면 저기서 용도 나온다더라. 보고 갈래?”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싫다고 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관광단지’ 산책은 롯데호텔의 로비에서 끝이 났다.

호텔 속만 걸어다닌 특별한 산책이었다. 산책할 만한, 산책할 수 있는 호텔이 제주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중문관광단지
- 주차는 신라호텔이 유리하다.
- 밤 8시에 롯데호텔에서 화산쇼를 한다. 볼 만하다.
- 호텔 쪽에서 나와 컨벤션센터로 걸어가면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온다.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다.
- 중문읍에 있는 나성만두의 만두를 맛보자. 중문관광단지에서 나와 중문읍내로 들어가 우체국을 지나면 있다.
- 어머니회센터와 오리고기전문점 입안의 행복. 중문관광단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낭만제주>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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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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