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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산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만날 때면 ‘사귄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산다.” 그 말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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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다. 나에게 불어오는 시기적절한 바람처럼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게 되면 나는 그곳에 가야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운명론자의 여행을 위한 궁색한 변명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의 의지가 운명을 목격해야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다. 나에게 불어오는 시기적절한 바람처럼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게 되면 나는 그곳에 가야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운명론자의 여행을 위한 궁색한 변명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의 의지가 운명을 목격해야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지가 운명을 목격하는 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어떤 이유를 달거나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도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면 어느 틈엔가 그곳에 닿을 수 있는 항공권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도가 쥐어지게 된다. 촘촘한 밤이면 지도 위로 기어들어와 그곳의 골목을 자주 기웃거린 까닭에 낯선 지명을 발음하는 일은 수월해진다. “안녕”이라는 최소한의 인사말과 생에 한번 찾아올지도 모르는 로맨스를 위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그곳의 언어로 한번쯤 내뱉어 본다. 방 한 구석에 놓인 여행 가방이 꾸역꾸역 채워진다. 공항에 두 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그제서야 여행을 실감한다. 여행을 통해 생의 또 다른 운명을 목격한다는 설렘을 안고 하늘을 날고 있다면 당신의 의지는 목격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운명처럼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여행이 삶의 새로운 테마가 된 이후 나는 여러 나라를 여러 방식으로 여행했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때로는 여럿이서 여행을 하기도 했고,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거나 부지런히 카메라에 풍경을 채집하거나 사람들과 깔깔거리기를 무던히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딘지 모르게 여행이란 꼭 이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여행이란 또 다른 일상에 다름아니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압박 없이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빠져들고 싶었다. 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고 간사이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 날아가면 그곳에 도착한다는 사실도 나를 설득시키는 요소가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소담스러운 일상이 어울리는 간사이 지방의 풍경이 나를 이끌었다.


“오하이오”라고 아침인사를 건네며 산책을 하거나 연두빛 바람이 스미는 고요한 방에서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는 일이 잘 어울리는 교토와 해질녘 재래시장을 어슬렁거리다 다코야키를 군것질 할 수 있는 오사카, 이유 없이 바다가 그리워지는 날 아무 준비 없이 훌쩍 떠나 바다를 볼 수 있는 고베.

그곳에 가면 여행이 또 다른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만날 때면 ‘사귄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산다.” 그 말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그 어떤 표현보다 진하게 들리는 ‘너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아닌 그곳을 사는 여행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낯선 도시에 가서 사는 것. 긴 호흡으로 사는 여행이 불가능하다면 짧은 여행이더라도 일상적인 여행으로 여행의 방식을 바꾸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살았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가만히 거닐다>는 북노마드와 함께하며, 매주 목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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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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