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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 신화는 그리스가 전부가 아니다? - 『마하 바라타』

‘거대한 왕조’쯤으로 번역이 가능한 이 제목으로 엮인 책은 인도의 한 왕조에서 일어난 분란과 전쟁, 그리고 그 결말을 힌두교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낸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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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 문명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신화들은 역사 이전 시대의 인간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수천 년 간의 문명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오랜 세월의 전승을 이어 왔다는 것은 신화가 품은 지혜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신화인 그리스 신화는 이미 다양한 판본으로 나와 초등학생 필독서로까지 등재되고 있고, 중동 지방의 주요 신화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이른바 ‘메이저 신화’외에도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화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발키리’ ‘오딘’ ‘토르’와 같이 최근 영화나 게임, 소설 등에 자주 차용되는 북유럽 바이킹 신화 외에도 사실 우리 일상에 상상 외로 가깝게 다가와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이 인도 신화입니다. 힌두교의 발상지이자 정신의 대륙이라 불리는 인도의 신화는 다신교인 힌두교답게 방대한 신과 영웅들이 등장하고, 그 체계와 전승 또한 다채로운지라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방대한 영역을 그나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신화 책이라면, 아마도 『마하바라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하바라타’는 산스크리트어로 ‘크다’는 뜻을 가지는 ‘마하’(‘수리수리 마하수리’나 ‘마하반야 바라밀’의 그 ‘마하’입니다.)와 땅, 영토, 왕조 등을 의미하는 ‘바라타’의 합성어입니다. ‘거대한 왕조’쯤으로 번역이 가능한 이 제목으로 엮인 책은 인도의 한 왕조에서 일어난 분란과 전쟁, 그리고 그 결말을 힌두교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낸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종교적 배경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마하바라타』는 단순 서사시에 머무르지 않고 힌두교의 경전에 가까운 위치까지 차지하는 종교 서적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실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다수는 힌두교 신들과 연관이 있거나 때로는 각 신들의 아바타라(avatara, 化身)인 경우가 많고,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과 철학에 대한 접근 방식 등이 힌두교 교리를 고스란히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하바라타』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전쟁 장면에서 비슈누의 화신이자 주인공들의 친구인 족장 크리슈나가 주인공 중 한 명인 아르주나의 전의를 북돋우기 위해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면은 인도의 철학과 힌두교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 내용으로, 이 부분만 따로 편집하여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마하바라타에는 늘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도 없다’는 방대함에 대한 찬사가 따라다니곤 합니다.

대략 인도의 철기시대쯤으로 추정되는 (BC 4세기경, 정확한 연대는 추정불가) 한 시기에 인도 왕국 전체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한 왕조가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후손을 이을 판두라는 훌륭한 왕세자가 있었는데, 그는 종교나 철학, 무예나 도덕 면에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사냥에서의 실수로 저주를 받아 후계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판두는 산속으로 은둔하여 명상에 잠기고, 그의 부인은 남편인 판두 대신 다섯 명의 위대한 신들로부터 아들을 점지 받아 5명의 영웅을 낳게 되는데, 이들이 『마하바라타』 의 주인공, 판두의 아들이라 불리는 ‘판다바’ 5형제입니다.

애초에 판두에게 갈 왕위가 판두 스스로 떠나버림으로서 판두의 동생 드리타라스트라에게 전해지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드리타라스트라는 위대했던 왕세자 판두가 본래 왕좌에 있을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판두의 아들들인 판다바 5형제를 따뜻하게 맞이하지만, 당장 드리타라스트라가 낳은 100명의 아들들은 판다바 5형제와 크게 대립합니다.

판다바 5형제는 앞서 말했듯이 판두의 아들이자 다섯 신의 아들입니다. 그렇기에 오형제는 각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위대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첫째인 유디스티라는 도덕과 철학에 있어 가장 지고지순한 인물이자 운명의 굴레인 다르마 신의 화신이었고, 둘째 비마는 세상을 뒤엎을 만한 힘으로 라크샤샤나 간다르바 같은 신, 또는 인간 이외의 존재와도 맞설 수 있는 인물입니다. 셋째 아르주나는 천상의 무기를 받아 사용하는 전쟁과 궁술의 달인이기도 하여 이들 오형제의 힘은 세상을 진동시켰습니다.

그랬기에 드리타라스트라 왕의 아들들, 두리요다나를 중심으로 한 1백 명의 아들들은 ‘카우라바’라 불리며 ‘판다바’들과 적대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노쇠한 왕 드리타라스트라가 죽게 될 경우 그 후임 왕에 대한 싸움이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판다바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였고, 이에 두리요다나는 판다바를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대립은 판다바가 카우라바들의 계략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십삼 년 간 산속에서 고행을 통한 수행을 한 뒤 돌아와 대결전을 벌이는 형국까지 치닫습니다. 도덕과 종교의 수호자로 등장하는 판다바 일족과 그 동맹들, 그리고 그에 맞선 두리요다나 형제들과 그 동맹들이 벌이는 18일 간의 치열한 전투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최후의 승리자인 판다바들도 파괴의 결말에 실망하고 속세를 떠나 신들의 세계로 떠나게 됩니다.

『마하바라타』의 줄거리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 담고 있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수긍할 만한 상황을 넘는 문화적 차이로 매번 충격과 새로움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일례로 주인공인 판다바 5형제는 세계 최고의 미녀로 등장하는 드라우파디라는 아내를 공동으로 맞아들이는데, 일반적인 도덕률 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이런 상황이 『마하바라타』에서는 오히려 도덕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계율 덕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인으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마하바라타』에서는 자주 연출됩니다. 앞서 5명의 집단 결혼이 어머니 쿤티가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한 아들들의 행동이었다면, 그냥 지나가던 어느 수행자가 툭 던진 저주 한마디에 불사의 영웅이 쓰러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판다바 오형제의 맏형인 유디스티라는 자신들의 거대한 왕국을 이뤄 놓고도 질 게 뻔한 주사위 도박을 100% 질 것을 알고도 눈물을 흘리며 참여해 아내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다분히 미래에 있어 결정론적인 이러한 행동과 사고는 힌두교 특유의 카르마, 다르마 개념에 기인합니다. 개인의 삶과 운명이 이미 결정지어져 있고, 그 가는 길에 대한 최선을 삶의 목표로 삼는 힌두교의 개념에 기반한 『마하바라타』에는 이렇게 이미 결정지어진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개인들의 모습들이 자주 그려집니다.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

애초에 드라마의 핵심이 되는 대전투 또한 아예 서두에 예견되어 있습니다. 판다바들이 주사위 놀음에서 지고 모든 것을 빼앗긴 뒤 떠날 때, 현자들은 ‘13년 뒤 판다바들이 돌아와서 카우라바를 모두 멸망시키고, 판다바의 아내 드라우파디가 엎어져 운 것만큼 카우라바의 아내들 또한 땅에 눈물을 쏟을 것이다’라고 예언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언된 결과는 예언 하나가 아니라 다채로운 예언들이 섞이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불사의 아르주나를 죽일 수 있는 또 다른 신의 작은 저주, 신을 아버지로 둔 아들을 보호하는 아버지 신과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결국 드라마는 ‘어느 신의 힘이 더 센가’, ‘어느 저주가 더 강한가’의 흐름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하바라타』는 그러한 신과 힌두교의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돕는 책은 아니기에, 『마하바라타』만을 읽고 힌두교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마하바라타』를 읽고자 하는 이들은 신학경전으로서 접근하기보다는, 다신교 문학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내용들에 중점을 두고 그리스 산화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당장 그리스 신화와 인도 신화는 여러 면에서 비슷합니다. 인도 신화에서 만신중의 신인 인드라는 주력 무기로 번개를 쓰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동일한 무기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인도 북부에 아리안 인종이 들어오며 이루어 낸 간다라 문화는 그리스 지방의 아리아인들이 인도 북부에 정착하면서 만들어낸 문화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며 『마하바라타』를 아리아인의 인도 이동과 정착에 관한 역사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하바라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화와는 또 다른 독특한 미스터리를 갖는데, 신화 곳곳에서 다분히 현대 과학이나 그 이상으로 추측되는 무기들과 도구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신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모든 싸움과 분쟁에 있어 ‘신들의 무기’로 통칭되는 막강한 무기들을 사용하는데, 한번에 수천 발을 쏘아내는 원거리 무기, 폭발하는 화살, 적을 쫓아가는 무기 등은 기본이고, 날아다니는 마차와 말 없이 바퀴만으로 달리는 전차 등도 등장합니다. 게다가 심지어는 핵무기를 연상케 하는 묘사도 있습니다. 아르주나는 신으로부터 신의 무기를 하사 받으며 ‘인간에게는 절대 사용하지 말 것’을 맹세하였고, 대전쟁 와중에 발사된 또 다른 신의 무기는 모든 생명체를 태우고 거대한 열폭풍을 일으키는 핵무기의 그것과 유사한 묘사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미스터리에 대한 추적은 여러 학자들, 그리고 초과학 관련 모임들에 의해 진행된 바 있으며, 확실한 근거는 아니지만 마하바라타의 배경이 되는 인도 북부에서 유사한 폭발의 흔적을 발견한 적도 있다는 리포트도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마하바라타』는 아직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가 아닌 만큼, 더욱 궁금한 부분과 신비로운 부분이 넘쳐나는 신화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신교 신화가 보여주었던 인격신의 다채로운 모습들은 『마하바라타』에서 보다 신비롭고 철학적인 주제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신화의 영역은 원시 시대,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 태어난 내러티브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익숙하게 알려진 그리스 신화로 우리는 현대 사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유럽의 근원을 알 수 있었지만, 그 밖의 문명이 잉태했던 신화까지를 섭렵한다면 특정 환경에 국한된 인간 본성을 벗어나 보편적인 인간이 욕망하는 주제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하바라타』는 인도 신화 그 자체가 가진 방대한 서사에 기초한 재미뿐 아니라, 이러한 인문학적 영역에서도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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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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