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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 세상 속의 위대함이란 -『위대한 개츠비』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공허가 겹쳐 있던 1920년대 미국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책이 오늘 이야기할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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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유독 영문학계에 축복이었던 시대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집필한 해가 1922년이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같은 해에 탄생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1924년,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가 1929년을 빛냈습니다.

20년대라고 유독 신이 문장력 있는 작가들을 영미권에 내려보낼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문학은 늘 시대의 반영이었고, 20년대의 이러한 문학적 전성기는 동시대의 정서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인류사 최초로 문명권 전체가 살육에 뛰어들었던 1차대전의 여파는 지식인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엄청난 군수품의 생산과 소모 뒤에 이어진 경제적 부흥, 특히 군수산업만을 담당하고 실제 전장에서 벗어나 있었던 미국의 성장은 눈부신 수준이었습니다.

대량 학살에 의한 휴머니즘의 처참한 현실과 전후 복구에 따른 대규모 경제의 등장과 엄청난 부의 출현은 묘하게도 중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음울함을 낳습니다. 1920년대 미국은 그렇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공허가 겹쳐 있던 시대였고, 음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재즈가 이 시대를 대변했습니다. 이러한 기묘한 공존이 앞서 말한 수많은 걸작을 문학계에 남겼고, 그중 특히 그 시대를 가장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걸작으로 손꼽히는 책이 오늘 이야기할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굳이 길게 서론을 늘려가면서 1920년대 미국 이야기를 하는 것은 특히 이 소설이 바로 그 시대의 미국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전후 경기에 의한 엄청난 물질적 부 속에서 서서히 타락해 가는 미국 상류사회의 부도덕 한가운데에 선 소설 속 화자 '닉'의 입으로 전해지는 주인공 개츠비의 이야기는 정신적 공황과 물질적 풍요 사이의 간극,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에 선 인간의 갈등과 같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교과서다운 갈등을 가장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어 영문학의 금자탑으로 불립니다.

제이 개츠비, 주인공 개츠비는 뉴욕 근처의 부촌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저택을 가진 베일에 싸인 인물입니다. 그의 집은 밤이면 밤마다 열리는 화려한 파티로 늘 북적이지만, 정작 개츠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습니다. 유명인사로 넘쳐나는 그의 저택 파티에서도 언제나 개츠비라는 인물의 배경에 대해서는 뜬소문만 가득합니다.

그러나 소설 속 화자 닉 캐러웨이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개츠비의 이야기를 매우 가까이서 듣게 됩니다. 닉이 친구 톰의 아내인 데이지와 잘 아는 사이라는 점을 알게 된 개츠비가 닉을 통해 데이지와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접근해 온 것입니다.

개츠비와 데이지,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고 그 속에서 닉은 개츠비의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오직 하루하루 연명하고자 살아가던 개츠비는 미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상류층 여인 데이지를 만나 처음으로 인생의 새로운 희망을 얻습니다. 꿈도 희망도 막막했던 젊은 날을 한 여인을 향한 열정으로 불태웠던 그는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 앞에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데이지는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합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데이지의 배신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도전으로 개츠비를 인도합니다. 그는 데이지의 결혼이 남자의 막대한 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가진 것 없는 자신을 부자로 만들고자 밀주업(당시 미국은 금주령으로 술의 제조와 유통이 불법이었습니다)과 부정 증권 판매 등 법을 넘나드는 일을 서슴지 않으며 막대한 재력가가 됩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사는 뉴욕 근처로 들어가 자신의 엄청난 부를 자랑하며 유명 인사가 되어 다시 데이지와의 만남을 시도합니다.

물질적 욕망에 충실한 데이지의 눈에 충분히 들 만큼 수준이 된 개츠비는 결국 유부녀와의 사랑이라는, 불륜으로 통칭하는 또 다른 도덕의 선을 넘어서지만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있던 데이지의 선택은 단호했고, 불륜과 불륜이 오가는 복잡한 치정관계 속에 결국 개츠비는 또 다른 치정에 의한 오해로 삶을 마감합니다. 그토록 부유했고 유명인사들로 북적이던 그의 집이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단지 그의 생부와 닉 정도만 참여하여 쓸쓸함만 가득합니다.

언뜻 보면 대단히 통속적인 주제와 이야기뿐입니다. 실제로 작가 피츠제럴드는 다른 작가에 비해 무척 통속적인 주제 - 사랑과 돈 - 만을 다룬다는 비평에 자주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제가 통속적인 것이 사실이더라도, 세밀하게 묘사된 통속적인 삶 속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진리는 소설을 통속적인 시대물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개츠비라는 인물이 의미가 있는 것은 우선 그가 살아온 모습이 사실 미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성공하겠다는 야망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는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겪었고, 그 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는 안타깝고 허망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러한 개츠비의 삶은 실상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 신대륙에 대한 환상과 희망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유럽인이 황금과 부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식민지를 개척하러 떠나던 대항해시대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정착의 발을 디딘 것은 메이플라워호로 대변되는 영국 청교도 집단이었음을 기억해 봅니다.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물질적 풍요가 아닌, 종교의 자유를 위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온 그들은 청교도 특유의 도덕적 정신무장과 청빈함으로 새 대륙에 새로운 정신적 낙원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유럽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프론티어 정신이라 불리는 미지에 대한 도전으로 그 영역을 서부로 뻗어나갑니다. 『초원의 집』과 같은 서부 개척시대 청교도 농민들의 삶을 묘사한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소망은 소박하고 순수했으며 (물론 서부 골드러시와 뒤이은 인디언 학살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만, 일반 농민은 아니었습니다) 먹고살 몇 에이커의 땅과 가족, 신에 대한 헌신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1차대전 이후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합니다. 전후 복구경제의 흥청망청한 모습으로 서서히 미국 사회는 청교도 정신을 잃고 물질만능주의로 함몰해 들어갑니다. 세상은 넘치는 부에 어쩔 줄 몰랐고, 젊은이들은 오직 그 급성장하는 경제 흐름을 타고 더 큰 소유를 만들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건국 초기의 순수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실종되었고, 이는 결국 (소설 속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습니다.

개츠비는 바로 이러한 미국 역사의 상징입니다. 순수했던 청년의 야망은 데이지로 상징되는 세속적 욕망을 맞이하면서 부도덕과 부패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그 향락 속에서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끝까지 쫓던 개츠비는 결국 허망하게 주저앉고 맙니다. 아메리칸 드림 스스로 자멸해 가는 미국 본연의 모습이 개츠비라는 인물에 신랄하게 투영된 것입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1896-1940)
특히 작중 화자로 등장하는 닉의 도덕성에 대한 강조는 제3자다운 도덕성을 보여주며 개츠비를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돋보기로 작용합니다. ‘전 미국인이 도덕적으로 차렷 자세를 하기를 원하는’ 닉은 오직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온 생을 던져버린 개츠비를 감히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개츠비의 타락과 다른 이들의 타락을 구분합니다. 개츠비는 타락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이상,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단지 그 물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이 곧 이 책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의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개츠비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는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개츠비의 베아트리체였던 데이지는 ‘목소리에서 짤랑짤랑 돈 소리가 날’ 정도로 속물근성이 가득한 여자였고, 그녀의 남편 톰 뷰캐넌은 대단한 갑부지만 이미 다른 유부녀와 바람이 난 상태입니다. 그들은 단지 욕망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닉의 눈에 개츠비만은 위대했습니다. 모두가 무너진 세상에 오직 개츠비만이 ‘아직 파랑새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설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소설이었다면 분명히 고결하고 이상적이어야 할 주인공 개츠비가 삶의 방식 면에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부도덕의 결정체라는 점은 인물을 더 입체감 있게 만들어 동질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스스로 몰락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꿈이 있는 자, 이상을 잃은 자 모두에게 미래는 없었고, 그것이 화려한 성장 밑에서 음울하게 자라나는 독버섯으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이 보여준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진단과 선언은 10여 년 후 정신적, 경제적 거품이 꺼지며 발생한 미국발 경제 대공황으로 다시 한 번 증명됩니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현대사에 대해 딱히 공식적인 교육 루트가 없는 한국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키기는 어려운 책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나오는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츠비 번역과 찬사, 최근 거세지는 뉴욕 문화에 대한 동경 등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없지 않으며, 저는 그러한 맥락으로 개츠비를 읽는 것은 조금은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1920년대의 암울함을 묘사한 『위대한 개츠비』의 분위기가 오히려 20년대 미국 문화에 대한 멋스러움과 동경으로 여기는 일련의 태도는 감히 오독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에 얼마나 가까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말하는 정신적이고도 고결한 이상을 포함하는 단어는 아닐 것입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생계형 미국 이민부터 21세기 들어 트렌드가 된 조기유학과 원정출산에 ‘청교도 정신을 배우기 위한’ 가치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물질에 대한 동경으로 정리된 한국이라는 나라의 ‘아메리칸 드림’을 피츠제럴드가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위대한 개츠비』의 속편쯤은 나오지 않았을까요? 단, ‘위대한’이란 단어에 조소를 가득 섞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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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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