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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으로 그려낸 혁명의 이면 - 『카탈로니아 찬가』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세계 3대 르포르타주라는 영예와 스페인 내전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고민 가득한 이야기라는 찬사, 그리고 실제 전쟁이라는 현실 한가운데에 뛰어든 작가가 몸과 머리로 함께 싸워가며 써낸 르포 문학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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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라는 새로운 대입 전형의 장르가 붐을 일으키면서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은 언뜻 보기엔 대단히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학교 학생들의 논술에 비트겐슈타인이 인용되고, 프랑스 대입 철학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우수 답안을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신문에 다뤄집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 학생들의 그러한 인용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습니다. 대개 그 인용이라는 것이 잘 알려지고 유명세를 탄 몇몇 책과 문구에 한정되어 있고, 용례 또한 다채롭지 못한 현실은 학생들의 이해가 단지 논술학원 강사에게 전수받은 ‘이해의 기술’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논술의 본래 의미가 그런 기술적 차원의 함양은 아닐 테지요.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 또한 그러한 기술적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구나 조지 오웰의 『1984』를 이야기하며 미래 사회의 빅 브라더(대규모 통제조직에서의 감시자)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동물농장』을 언급하며 공산주의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자, 어찌 보면 아나키스트에 가까웠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졌을까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세계 3대 르포르타주라는 영예와 스페인 내전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고민 가득한 이야기라는 찬사, 그리고 실제 전쟁이라는 현실 한가운데에 뛰어든 작가가 몸과 머리로 함께 싸워가며 써낸 르포 문학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고 나서 조지 오웰의 다른 책을 본다면 적어도 지금 한국에서 쉽사리 인용되는 『동물농장』이나 『1984』에 대한 언급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의 현장을 다룬 조지 오웰의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가 오늘 소개할 책입니다.

소설가이자 신문기자인 조지 오웰(필명입니다)은 영국인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납니다. 유럽 열강의 대외 식민정책 속에서 성장한 그는 인도에서 영국 식민정책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자라나고 이후 버마(지금의 미얀마) 주재 영국 경찰이 되지만,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권력기구로 행세하는 일에 죄악을 느끼고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산업사회 이후 확대되어 가는 빈부 격차, 제국주의 국가와 피식민지 국가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 이러한 주제가 오웰의 언저리를 늘 맴돌았고, 그는 직접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에 뛰어들어 실제 부랑자 생활을 겪으며 느꼈던 점을 모아 첫 르포문학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출간합니다.

인간 불평등, 조직사회가 좀먹는 인간 자유의 현실과 같은 주제에 집착하던 그는 1930년대 후반 발발한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뛰어들었다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는 스페인 현지에서 총을 집어들고 내전에 가담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늘의 책,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르포가 탄생합니다.

1930년대, 나치의 등장과 각국에서 불어 닥친 군국주의 열풍에 유럽 좌파 진영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세계 공산주의 연합인 인터내셔널의 정책을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를 포괄하는 범전선으로 엮어 파시즘에 대항하는 이른바 ‘인민전선’ 정책으로 전환합니다. 이를 통해 스페인에서도 총선에서 인민전선파가 바람을 일으키며 공화파 연립정부 수립이 시작됩니다.

왕당 정치의 기반이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공화파는 기존의 봉건질서를 철폐하고 토지개혁, 정교분리 등의 정책을 시행하는데, 이는 곧바로 교회와 군부, 자본가 및 대지주의 반발을 불러옵니다. 이에 이른바 군부와 왕당파를 중심으로 하고 교회가 함께한 우익 세력은 식민지 모로코의 장군 프랑코를 중심으로 하여 반공화국의 기?를 드는데, 이로써 스페인 내전이 시작됩니다.

스페인 내전은 초기에는 단순히 공화파와 왕당파의 내전이었으나, 점차 외세의 개입으로 색다른 양상을 띠어 갑니다. 공화파의 개혁이 지나치게 사회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위협을 느낀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는 프랑코 군사정권을 지지하며 막대한 양의 군사 원조를 합니다. (특히 독일은 1차대전 이후 새롭게 재편한 독일 군사 편제의 시험이라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 또한 스페인 공화국이 사회주의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불간섭이라는 정책을 천명하며 공화국 원조를 저지했고, 소련은 사회주의 개혁을 지지하며 역시 일군의 물자 원조에 들어갔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외세가 개입하면서 전쟁은 그 물리력과 파장이 확대되었습니다. 이제 스페인 내전은 단순 내전이 아니라 파시즘과 민주주의가 격돌하는 장으로,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세력과 이를 진압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충돌로 각국의 정파마다 그 선전이 달라졌으며, 특히 공화국을 지원하는 국제단체(코민테른을 포함한)들의 기치 아래에 선 의용군에는 헤밍웨이와 같은 지식인들의 대거 참전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이 속에 조지 오웰도 있었습니다.

조지 오웰은 처음 종군기자로 스페인에 들어갔으나, 실제 전쟁의 모습을 겪어 보고는 자신을 의용군 속으로 내던집니다. 그가 본 것이 그가 평생 꿈꾸던 이상향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화파의 노동자 의용군은 장교와 사병의 월급 차이나 대우 차이가 없었고, 서로 함부로 하지 않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상대에게 체벌을 하거나 모욕을 주지 않는 군대였습니다. 상명하달의 규율이 아닌 자발적으로 만들고 지켜나가는 군율과, 그러면서도 체계를 잃지 않는 의용군의 모습에서 오웰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인간 평등의 새 세상을 본 듯합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의용군에 입대했습니다.

오웰의 기록에 의하면 공화파 의용군은 그리 전쟁에 익숙한 조직은 아니었습니다. ‘군인이 총도 없이 전쟁 나가냐’는 농담이 있지만, 의용군은 300명에 소총 네 자루가 전부였고, 지급받은 수류탄은 핀을 뽑다가 폭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 전선에 배치되어도 양 군의 대치 거리는 총알이 닿기도 어려운 거리였고, 가끔 발생하는 부상자는 모두 자기 총이 터지면서 발생했습니다. 한편의 희극과도 같은 대치 상황 속에서 오웰은 꾸준하게 기록을 남겨 나갑니다.

‘파시스트를 단 한 명이라도 죽이고자’ 의용군에 입대했던 오웰은 그러나 이렇게 이상한 전장의 상황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의심은 그가 잠시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상황을 파악한 뒤 조금씩 명백해집니다. 바르셀로나는 처음 보여주었던 혁명의 느낌을 지운 채 다시 빈부격차와 계급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 뒤에는 공화국 정파의 내부 분열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내전 와중에 분열이 일어난 것은 사회주의 혁명과 반파시즘 전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에 대한 정파별 이견 때문이었습니다. 전쟁과 혁명을 동시에 수행하자는 일파와 전쟁 중에는 혁명을 잠시 미뤄두자는 파, 그리고 혁명 자체를 자제하고 파시즘과의 전쟁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파가 의견 분열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전선은 파시즘/반파시즘의 날카로운 대립점을 잃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공산당의 태도였습니다. 공화국에 사실상 유일한 외부 지원이었던 소련의 힘을 업은 공산당은 놀랍게도 스페인 공화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반대하고, 부르주아 체제 유지를 옹호했습니다. 공산당이 혁명을 반대하는 이 특이한 상황은 오웰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코민테른(공산주의세계동맹)의 모든 정책은 이제 소련의 방어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것은 군사동맹 체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소련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인 프랑스와 동맹 관계인데, 프랑스의 자본주의가 강하지 않으면 이 동맹은 소련에 쓸모가 없다. 따라서 코민테른 산하 프랑스 공산당은 반혁명적 색채를 띠게 되며….(중략)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노선은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가 이웃에 혁명적 국가(스페인)가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사실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 『카탈로니아 찬가』, 제5장 78~79p 중

외부 지원을 통한 공화국 혁명세력 내 가장 유력한 집단이었던 공산당의 이러한 입장은 실제 공화국 혁명의 주역인 사회노동자당과 같은 일반 정당 및 아나키스트들과 갈등을 유발했습니다. 혁명을 원하는 이들은 있었지뢸 이들에게는 공산당의 무기와 장비가 지원되지 않았고, 공산당의 무기는 단지 후방에서 아나키스트들을 감시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면서 전선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웰은 이러한 상황을 생생하게 서술합니다. 그는 아나키스트 집단이 장악하고 있던 전화 교환국이 공산당에 의해 공격당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전선에 나가있는 병사는 오히려 꿈도 꾸지 못했던 기관총과 수류탄이 후방에서 ‘혁명 동지’를 겨누는 현장을 참담한 기분으로 서술합니다. 최초 의용군의 평등한 이상을 보고 뛰어들었던 전쟁은 끝내 이념 분쟁으로 오웰에게 환멸을 주었고, 그는 결국 그가 몸담았던 정당이 공산당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스페인을 탈출해 귀국하며 르포 또한 이렇게 종결됩니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찬가Homage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던 것은 르포 작가인 오웰이 최초 카탈로니아 전선의 의용군들에게서 받았던 감상이 르포 전체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늘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던 오웰에게 전쟁터에서도 자발적 규율로 개개인의 인권이 모두 존중되는 현장을 목격한 경험은 큰 충격이었고, 그러한 공화국 의용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이상향이라고 오웰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비록 전쟁의 후반부에 개입한 공산당에 의해 내분이 발생하고 결국 혁명은 주저앉고 내전은 파시즘에 패했지만, 오웰은 그 현장에서 인간의 가치를 위해 자발적이고 즐겁게 싸워나간 카탈로니아의 의용군들을 위한 찬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라는 직후의 역사 속에 스페인 내전은 묻혀 갔지만, 당대 수많은 지식인이 매료되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참 인류를 위한 이상향의 싸움은 그렇게 기록이라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같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문학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는 달리 르포라는 형식을 채택하여 현장감이 더욱 살아있고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돋보입니다. 이른바 ‘세계 3대 르포르타주’로 불리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존 리드, 러시아혁명), 『중국의 붉은 별』(에드가 스노우, 모택동 대장정)과는 달리 『카탈로니아 찬가』는 혁명이라는 열광적 상황에 무작정 찬사를 보내지 않고, 그 이면에서 벌어진 이른바 혁명가들 사이의 이전투구와 내분까지도 그려내어 셋 중에서도 가장 비판적인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들은 그가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하면서 겪은 경험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동물농장이라는 우화적 비유를 통해 스탈린과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비판한 『동물농장』은 액면 그대로 읽듯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주의를 망쳐놓는 소련 공산당을 풍자하는 아나키스트의 목소리라고 봐야 합니다. 관료화된 고도 조직사회의 병폐를 예견한 『1984』 또한 스페인 카탈로니아의 허허벌판에서 인간 보편 평등을 위해 총을 잡고 경계를 서던 어느 아나키스트가 인간 사회 전체에 던지는 경고장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밑바닥 경험과 그 경험에 자신의 통찰력을 덧붙여 사회 구조의 모순을 밝혀내는 데 평생을 던진 조지 오웰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아나키스트로 불릴 만한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의 정점에는 비록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카탈로니아 찬가』가 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이 수많은 작품이 스페인 내전을 전하고 있을 만큼 스페인 내전은 현대사 이해에도 중요한 대목이고,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카탈로니아 찬가』는 독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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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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