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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실용적인 철학서 - 『손자병법』

오늘은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동서양에 걸쳐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래 읽히는 고전 한 편을 소개합니다. 사실상 비즈니스·처세·경영 분야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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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분야는 아마도 자기관리·처세·경영 등의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비단 21세기 한국 사회뿐 아니라, 대단히 실용적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해 보이는 책은 어느 시대에나 그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물론 그 뒷면에는 로맨스 소설이나 야한 소설과 같은 대중물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만.)

특히 중국 역사에서 사상의 꽃이 가장 활짝 피었다고 하는 춘추전국시대, 정말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채로운 사상이 피어났는데, 개인적인 삶의 자세를 다룬 사상가부터 치세와 패도를 이야기한 이까지 그 범위는 웅장했습니다. 당장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노자, 공자부터 최근 영화 <묵공>에 등장했던 평화주의자 묵자, 통일 진나라의 기초를 세웠던 법가의 한비자 등등이 모두 그 시대 인물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전략가 손자(孫子, ?~?)
오늘은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동서양에 걸쳐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래 읽히는 고전 한 편을 소개합니다. 사실상 비즈니스·처세·경영 분야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가 않다’ ‘최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등 지금까지도 모두에게 상식인 경구를 담은 이 책은 단순히 병법서라고 보기에는 그 깊이가 심대합니다.

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왈 병자 국지대사 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


위 문장은 『손자병법』의 첫 구절을 여는 말로,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손자가 이르기를, 전쟁(Warfare)은 나라의 큰일이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이며 존재하느냐 멸망하느냐를 다투는 길이므로, 잘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손자병법』의 사고는, 그래서 단순히 전쟁에서 치고받으며 이기는 길을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조직과 개인이 스스로 살아남고 존속하고자 생각해야 할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생존 철학으로서 읽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사용한 단어가 ‘爭(다툴 쟁)’ ‘戰(싸움 전)’ ‘鬪(싸움 투)’ 등의 싸운다는 의미를 담은 한자가 아닌, ‘兵(병사 병)’ 자를 썼다는 것입니다. 위에 보시면 해석 구절에서 전쟁을 제가 Warfare라고 영문으로 부연 설명하였는데, 이는 兵 자에 대한 가장 올바른 해석이라고 봅니다. 손자가 말하는 전쟁은 싸움이 아니라, 한 조직 혹은 개인이 자신의 존망을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을 대비하는 모든 과정입니다. 그래서 손자의 전쟁은 싸운다는 의미보다는 잘 조직된 병력 체계를 의미하는 兵 자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의 구성 또한 전투보다는 이른바 전쟁 철학적인 측면에 비중을 둡니다. 산에선 무슨 전법, 강에선 무슨 전법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 국가적 준비, 장수 선발과 훈련, 간첩 활용 등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국가 철학 이야기로 병법이 요약되는 것은 책이 쓰인 배경 덕분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지간으로 유명했습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를 탔다는 의미로, 원수지간이 같은 상황에 놓임을 의미)라는 한자성어가 말해주듯이 두 나라는 오랜 원수지간이었고, 이들의 끝없는 싸움은 경국지색(傾國之色), 일모도원(日暮途遠),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의 많은 한자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오랜 싸움 속에서 오왕 합려는 완전한 승리를 위해 제나라의 유명한 장군이자 전략가였던 손무(孫武)를 영입해 옵니다. 손무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오나라가 갖춰야 할 전쟁 준비의 개괄을 직접 왕 앞에서 프리젠테이션하기로 하는데, 그 PT자료로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읽는 『손자병법』입니다.

“일반적으로 군대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말이 끄는 천 대의 전차와 천 대의 수레, 갑옷 십만 벌에 천릿길에 이어지는 식량 수레와 같은 비용뿐 아니라, 오가는 손님들에 대한 비용, 아교와 옻칠비, 수레와 갑옷 제작 등이 합쳐서 하루에 천 금 이상을 소모해야만 한다. 이것이 된 이후에야 능히 십만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 (『손자병법』 작전편)

손자는 그 PT에서 전쟁이 얼마나 큰 비용과 자원을 소모하는지를 설명하며, 결국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엄청난 국가적 물자 손실 외에도, 장정 하나하나가 한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걸머진 가장이며 이들의 죽음이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한 가정의 피폐를 불러옴을 알기에, 손자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이런 고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책이 절대 아니며,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최상책인 것이다.” (『손자병법』 모공편)


어차피 전쟁이 불러올 피해는 막심하며, 전쟁의 목표는 스스로 살아남고 부강해지기 위함임을 생각할 때, 그 목적에 가장 걸맞은 전쟁 방식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손자의 결론은 각국이 스스로 국력을 키우고 위세를 올리되, 서로 그 손실을 만들며 싸우지 않고 승패를 가린다면 오히려 이러한 병법적 접근이 서로 Win-Win 게임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특히 경쟁이 장려되고 서로 경쟁하면 공공의 이윤이 증가한다는 논리하에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정신입니다. 내 기업, 내 직장, 내 가족이 살아남고 더 나은 삶을 누리려면 이 사회는 끝없이 경쟁해야 하며, 그 경쟁을 통해 이른바 성장률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지표를 누적해 나갑니다.

그렇기에 이미 많은 책이 『손자병법』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내놓습니다.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기업 경영’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자기 경영’과 같은 책이 상당수 서점에 나와 있으며, 실제로 『손자병법』 원문에 대한 관심도 거의 모두 이러한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어찌 보면 처세·경영 분야의 가장 오래된 고전으로 『손자병법』을 꼽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기물을 파손하는 범죄지만, 한편으로는 그 전쟁을 통해 인류는 상당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중세 천 년을 이어온 유럽의 도로 공법은 로마군의 진군을 돕고자 개발되었고, 요즘 어지간한 자동차에 모두 달린 내비게이션은 미국 군사위성 GPS 시스템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 인터넷서점에서 결제하실 때 사용하는 신용카드 암호 모듈은 1, 2차대전 중 연합군과 추축군 양 군 간의 암호 전문 체계에서 그 핵심 논리가 발전해 온 결과물입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일이기에 인류는 항상 전쟁에 온 힘을 다해 왔고, 그 거대한 무덤은 큰 슬픔에도 인류에게 귀중한 교훈과 자산을 남겨 줍니다.

『손자병법』은 그 전쟁에 대한 애환과 의지가 담긴 책입니다. 손자는 글 전체를 통해 전쟁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끊임없이 우려하며, 그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수천 년 전에 전쟁의 본질을 간파했던 대학자의 기록을 읽는 현대인 또한 자신의 삶 앞에 놓인 위험과 도전 앞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고자 분주히 책장을 넘깁니다.

누군가는 『손자병법』을 자기 계발서로 읽고, 누군가는 기업 경영서로 읽습니다. 실제 ?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는 Sun Tzu’s Manual이 공식 교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전장인 주식판에서도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주식투자』(프롬북스) 등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읽든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손자병법』을 대단히 실용적인 철학서로 읽었습니다. 내가 살아가고 남과 함께 살아가고 나와 함께 이리저리 얽힌 사회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으로, 그리고 방법론치고는 대단히 거시적이고 심도 있는 삶과 죽음, 존재와 멸망에 대한 형이상학이 담긴 책으로서 자리매김한 것이 제가 읽은 『손자병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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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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