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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안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 〈위기의 주부들〉

제작자 마크 체리는 이 드라마의 기획안을 들고 HBO, NBC, CBS, FOX, 쇼타임을 돌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 뭐가 잘되려고 해도 단단히 잘되려고 했던 건지, 결국 ABC에 안착한 이 드라마가 시즌 3에서는 어떤 새로운 전개를 펼쳐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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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2004년은 미국의 전미 네트워크 ABC 부활의 해였습니다. 〈로스트〉와 〈그레이스 아나토미〉 〈보스턴 리갈〉과 〈위기의 주부들〉로 오랜 시간의 부진을 털고 드라마 왕국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로스트〉 〈그레이스 아나토미〉와 〈위기의 주부들〉은 리얼리티 쇼와 스타 뽑기 프로그램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시즌 1에서 시즌 2가 끝날 때까지 전미 프로그램 시청률 톱20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했으며, 그중에서도 〈위기의 주부들〉은 〈CSI〉와 더불어 리얼리티 쇼를 제외한 순수 드라마 순위로는 1, 2위를 놓치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주부들〉이 불러일으킨 화제는 시청률뿐이 아니었습니다. 주연배우들은 마침 막을 내린 〈섹스 & 더 시티〉의 대를 이어 패션 아이콘이 되었고, 일종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프라가 권하는 책을 읽고, 〈위기의 주부들〉을 시청하는 미국의 주부들
미국에서는 드라마로 벼락 스타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캐릭터도 물론 매력적으로 보여야겠지요. 하지만 보통 장거리 주행을 하는 미국 드라마는 스토리와 짜임새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작정하고 특정 배우를 스타로 만들어주려고 애쓰거나, 혹은 우연하게라도 그렇게 되는 일은 많이 나오기가 힘듭니다. 물론 애초부터 대스타를 쓰는 경우도 드물지요. 제작비 문제상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대스타들이 몇 년씩이나 계속되는 시리즈를 하려 드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거물들이 TV 드라마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그것도 미니시리즈 정도입니다. 그 드문 “행운”을 〈위기의 주부들〉의 출연진이 잡았습니다. 잡지마다 그들이 입었던 옷을 연구 분석하고, 그들의 사생활이 연일 타블로이드를 장식합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나 〈Dr. 필 쇼〉 등 토크쇼도 앞 다투어 이 드라마와 관련한 내용을 다루거나, 현실의 “desperate"한 주부들을 출연시키기도 했습니다.

소프 오페라에 미스터리와 스릴러, 코미디를 적절하게 섞은 극의 형식도 많은 찬사를 받으며 시청률 면에서는 현실의 “desperate" 주부들에게 거의 보증수표를 받고, 시상식 등 평단의 지지도 넉넉하게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들이 시즌 2에는 한층 더 화려해져서 돌아옵니다. 주연을 맡은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섭식장애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비쩍 마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시즌 2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이 그들이 연기하는 주부 역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배우들 자신도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구나 하는 것이었답니다.

그 배우들이 어느 평화로운 마을의 중산층 주부를 연기합니다. 마을이라고 할 것도 없고, 우편물 주소에 “위스테리아 레인”이라는 한 거리 이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 작은 무대에서 어느 순간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더없이 평화롭습니다. 〈위즈〉에 등장하는 마을처럼 남편들이나 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도 때도 없이 마리화나를 피워 무는 것도 아니고, 총과 칼이 난무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비규환도 그런 아비규환이 따로 없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윈프리가 부푼 기대를 품고 위스테리아 레인에 이사를 갔다가 밤이 되어 이 말썽 많은 거리에 진저리를 치고 야반도주하는 패러디를 선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위기의 주부들〉의 헤어스타일도 따라 하고...
이 드라마의 태그라인은 “Everybody Has a Little Dirty Laundry"입니다. 누구도 때 묻은 자신의 빨랫감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빨랫감에는 하루 흘린 땀으로 묻은 때뿐 아니라 약간 더 더럽고 은밀한 때, 피가 묻어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윤택하지만 무료한 중산층 마을의 생활에서 구멍 난 욕구를 채워보려고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인물들이 법적으로 중범죄를 짓고, 위기를 무마하고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며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려고 더 큰 죄를 지어,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쳇바퀴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작은 마을 특유의 풍습, 즉 남의 집 닫힌 문 안쪽의 이야기에는 귀를 쫑긋 세우지만, 자기의 피 묻은 빨래는 문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뺑소니가 미궁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입을 막기 위해 살인을 하고 방화를 하고 살인자를 숨겨주고 정원사와 바람을 피우고 횡령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어떤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주 시청자 층이 “desperate"한 주부라고는 해도 감정이입을 위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오죽하면 오프라가 야반도주까지 했겠습니까?(물론 코믹스러운 패러디였다고는 해도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따라 입고 싶을지는 몰라도, 내 인생이 저들의 것과 다름이 없구나 하며 한숨 어린 공감이 되거나, 또는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판타지를 펼쳐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길게는 십수 년을 한 거리에서 살아왔다는 친구들의 우정은 각자 저마다의 비밀을 절박하리만큼 애를 쓰며 막느라 겉돌고 파편적입니다. 사건, 사고에 얽힌 미스터리가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해주는 흥미 있는 요소로 여전히 건재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엄청난 상복에 행복에 겨워하기도 했더랬죠
주는 것 없이 예뻐야 할 테리 해처의 캐릭터 수잔 마이어가 일각에서는 어쩐지 주는 것 없이 미움을 사기도 하고요. 덜렁이에 착하지만, 자기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남자친구에게서 유혹을 받으며 희생자 역할을 하는 인물은 적어도 현실의 “desperate wives"에게는 동정표조차 받기가 힘들 것도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다른 네 여자배우의 연기에 비해 태리 해처의 연기가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고요. TV 드라마이고 코믹 요소가 있어서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겠지만, 극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캐릭터는 “완벽 엄마” 브리인 듯합니다. 브리 역을 맡은 마샤 크로스의 연기도 워낙 출중하고요. 남을 엄청나게 의식하고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 완벽주의자 브리의 삶은 어찌된 셈인지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꼬이고 무너져갑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처절하게 불행해지는 브리의 모습은 연기처럼만은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지요.

제작자 마크 체리는 이 드라마의 기획안을 들고 HBO, NBC, CBS, FOX, 쇼타임을 돌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 뭐가 잘되려고 해도 단단히 잘되려고 했던 건지, 결국 ABC에 안착한 이 드라마가 시즌 3에서는 어떤 새로운 전개를 펼쳐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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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위기의 주부들 (TV) 시즌1 박스세트 (6disc)
톰 행크스 감독/마이클 그로스맨 감독/조 앤더슨 주연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07월
<위기의 주부들> 시즌 1은 미국 abc 방송에서 2004년 10월 3일 첫 방송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시즌 1이 끝날 때까지 전미 시청률 1, 2위를 기록했던 최고의 히트작이다. 이 작품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로 수출돼 동시 방영 중이며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폴 등 가는 곳마다 화재를 일으키고 있다. 노르웨이에선 42%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 했으며, 독일에선 함부르크에 '위기의 주부들'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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