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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은 시작에 불과하다? -〈프리즌 브레이크〉

2003년부터 이미 기획이 시작된 〈프리즌 브레이크〉에 대해, FOX TV는 장편 연속극으로 가기에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탈옥이라는 소재를 장편 시리즈로 이어갈 때 충분한 긴장감과 밀도로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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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스타일에는 거의 시종일관 150킬로미터 이상의 구속을 찍으며 무수한 삼진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파워 피처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찌르며 칼날 같은 제구력으로 알차게 타자를 요리하는 스타일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지저분한 공 끝으로 땅볼을 많이 유도하며 경제적인 투구를 선보이는 투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도 갖가지고 각각의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나름대로 다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간혹 구속 160킬로미터 이상까지 찍으며 시원스럽게 뿌려대는 파워 피처가 제일이 아닐까 합니다. 투수로서 얼마나 훌륭한 성적을 냈느냐를 떠나, 스타성으로 따져도 그런 투수가 더 주목을 받기도 하고요.

위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요소를 완벽하게 버무려 공을 던졌던 전성기의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서 요즘 가장 아쉽게도 사라져버린 것이 그 시원한 구속입니다. 외적인 조건은 다윗이지만, 공룡 같은 괴력을 발휘하던 시절의 마르티네스는 정말 압도적이었지요. 사실 스타일을 그런 식으로 딱 나누기는 뭣한 일이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큼 훌륭한 투수라면 그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편의상 다들 그렇게 나누어 부르고 있는 만큼, 그 구분을 미국 드라마에도 갖다 붙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강속구와 지저분한 볼 끝을 첨가하든 안 하든, 대부분은 그렉 매덕스 같은 제구력, 즉 탄탄한 짜임새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미국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그럴듯하지 않고서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기본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지요.

하지만 제구력도 어지간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스케일과 힘을 한층 더 밀어붙이는 드라마들이 있으니, 이를테면 〈24〉 같은 드라마입니다. 절체절명의 주인공이 쉬지 않고 휘말리는 화력에 매료되는 것이지요. 이 〈24〉가 시즌 후반부를 대비하느라 마운드에 설 수 없게 된 사이, 마이너리그에서 급파되어 올라온 것이 〈프리즌 브레이크〉입니다. FOX TV는 늦가을에 열리는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나 겨울의 슈퍼 볼 중계권을 거의 독식하고 있어서, 보통 가을에 시즌을 시작하는 메인 드라마를 겨울로 연기하여 방영하는 전략도 종종 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프리즌 브레이크〉는 원 포인트 릴리프보다는 약간 더한 기대를 받고 나타난 루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 이닝 정도 소화해 주고, 기대 이상으로 롱 릴리프까지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땡큐’지만, 성적이 여의치 않으면 어차피 중간 계투인 만큼 큰 기대를 더하진 않는 유형입니다.

헌데 이 루키가 방영 첫 주부터 전미 시청률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신인왕급 활약을 펼치더니, 급기야는 플레이오프에서 제1선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된 것입니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짜릿한 경우가 드물겠지요. 2003년부터 이미 기획이 시작된 〈프리즌 브레이크〉에 대해, FOX TV는 장편 연속극으로 가기에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탈옥이라는 소재를 장편 시리즈로 이어갈 때 충분한 긴장감과 밀도로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미니 시리즈로 재기획되었는데, 이때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브루스 윌리스 등의 영화계 거물인사들이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획도 무산되는 바람에 세상의 빛을 끝내 보지 못하는가 싶더니, FOX TV가 드라마의 기획을 재고하면서 제작에 들어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3부작 미니 시리즈로 방영할 것으로 결정이 났지요.

제목 그대로 탈옥에 관한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긴장감이
〈24〉를 뛰어넘는다는 벅찬 찬사까지 이끌어냈지요. 천재 건축가인 마이클 스코필드가 부통령의 동생을 죽였다는 무고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형을 탈옥시키기 위해, 은행을 털고 형이 수감된 감옥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다시피 합니다. 드라마상 ‘폭스 리버’라는 이름의 그 감옥은 마침(!) 스코필드가 일하는 회사가 설계에 참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한편 감옥 내부 촬영은 일리노이 주 시카고 인근에 있는 졸리엣 형무소에서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졸리엣 형무소는 지은 지 150년 가까이 된 곳으로, 3년 전부터 죄수들이 방을 모두 비우면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답니다.

최고로 극성스러운 우범지대보다도 더 살벌한 감옥 안에서,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되기 위한 극심한 두뇌 게임이 벌어집니다. 악랄한 범죄자들과 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악랄한 일부 교도관들, 도망가려는 자들과 어떤 수상한 냄새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들의 긴박한 실랑이가 한순간도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것이지요. 겉으로만 보기에는 지독스럽지만, 다양한 사연으로 죄를 저지르게 된 동료 수감자들의 캐릭터도 갈등과 긴장을 높여주며 톡톡한 역할을 해냅니다. 남자들만이 수감된 형무소의 세계에서 일하는 여의사 새라와 스코필드의 관계, 감옥 밖에서 스코필드의 형인 링컨 버로우스의 혐의를 벗기려는 변호사 베로니카의 활약도 극의 긴장감을 보태는 데 한몫을 하고요.


미니 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는 13부까지 방영된 후 장편 시리즈로 연장하기로 결정되었고, 몇 달간의 공백 후에 다시 아홉 편을 추가 방영하면서 총 22편으로 성공리에 시즌 1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신인왕급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2년차 징크스에서 확실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의 여지로 남습니다. 탈옥이라는 것이 도망가려는 자가 걸릴 것인가, 안 걸릴 것인가의 위기를 주요 긴장 요소로 삼는다면, 그 위기를 어떻게 흥미롭게 풀어낼지가 관건이 될 터이지요.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안 잡힐 것임은 당연한 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밋밋한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는 시청자가 이미 나오고 있는 이상, 시즌 2가 탈옥이 됐든, 탈옥 성공 후의 도망 생활이 됐든, 그럴듯함과 예측 불허의 상황을 어떻게 버무려서 긴장감을 유지할지가 성공의 열쇠가 될 듯합니다.

더불어 공백 후 다시 시작된 에피소드 14부터 마냥 가지를 치며 덩치를 불려가고 있는 음모를 짜임새 있게 해결해 가는 과정도 볼거리가 되겠습니다.
〈24〉를 재미있게 본 시청자라면 〈프리즌 브레이크〉를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 드라마는 다양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각종 드라마를 줄기차게 섭렵해서 이미 내성(?)이 생긴 드라마 마니아보다는, 미국 드라마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추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 드라마의 풍부한 상상력과 완성도를 한번 경험해 볼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보면 공연히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숨 돌릴 틈 없이 푹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프리즌 브레이크〉를 보면서 놀라운 미국 드라마의 상상력과 완성도를 접한 후, 다른 특급 드라마를 또다시 접하다 보면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의 세계가 가능하구나!’라는 황당한 놀라움에 사로잡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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