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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베가스에서 묻힌다 - 〈라스베가스〉

사람들은 라스베가스에 단순히 돈을 따러 간다기보다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치부에 가까운 욕망을 배출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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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네바다 주의 라스베가스는 상주 인구가 약 48만 명에 지나지 않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전 미국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뜨내기 인구로 24시간 연중 내내 불이 꺼질 틈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지요. 물론 사막 위에 세워진 이 인공도시의 유명세는 카지노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략 한 건수 올려 보겠다는 희망을 품는 카지노만으로는 라스베가스가 풍기는 느낌이나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비행기로 네다섯 시간을 날아가지 않아도 동부 사람들에게는 뉴저지 주의 애틀랜틱 시티라는 꽤 큰 도박 도시가 있고, 기타 미국 어디에서건 중소 규모의 카지노 호텔은 차로 몇 시간 거리에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미국인에게 도박은 흔한 아웃도어 스포츠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종일관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 중의 하나로 라스베가스를 손꼽습니다.

사람들은 라스베가스에 단순히 돈을 따러 간다기보다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치부에 가까운 욕망을 배출하러 갑니다. 1년 내내 만월이 떠 있는 밤처럼 ‘좀 맛이 가서 돌아가는’ 그 도시에서, 사람들은 하고 싶었으나 내면에 묻어 두었던 행동을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짓을 여느 때보다 너그럽게 지켜보며 쾌감을 느낍니다. 라스베가스는 남녀노소를 총망라하는 그 모든 일탈에 대해 세계의 그 어떤 도시보다도 관대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 코스프레 정도로는 눈길조차 받을 수 없는 그곳은 사회나 종교, 철학의 규범 같은 것은 ‘모른다’ 하고, 최소한의 법만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기원전의 로마 같은 분위기가 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양심과 제도가 허용하는 최고조의 일탈을 저지른 후 ‘고향 앞으로!’를 하게 됩니다. 물론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났던 일은 라스베가스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묻어두는 것은 당연지사 불문율이겠지요.

짧은 역사에 어떻게든 전통이란 걸 꾸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미국에서, 라스베가스는 베끼는 것을 지독히도 좋아하는 곳입니다. 도시 전체가 ‘짝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라스베가스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개선문, 에펠탑, 대충 비슷하게 지은 건물에 꼭대기의 돔만 좀 신경 써서 얹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서구의 유명한 건축물은 웬만하면 다 갖춰 놓았습니다. 모든 게 가짜임을 능청맞게 과시하는 이 세트 같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만월의 늑대가 되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손등에 찍힌 입장 도장을 지우고 출구를 빠져나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진 것 다 털리고 울분만을 삼키며 떠나는 일도 있지만, 꿈과 희망, 제2의 출발을 위해서라면 라스베가스만 한 곳은 없는 것이지요.


그런 라스베가스에서 최대 규모의 카지노 호텔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확실히 공권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안 하던 짓을 하겠다고 작정하고 온 사람들과, 덤으로 카지노에서 한 몫 잡아 신세 한번 고쳐보겠다고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입니다. 구닥다리 철사줄을 들고 슬롯머신에 다가가는 사람부터, 정교한 위조지폐를 들고 오는 사람, 괴이한 요구를 일삼는 숙박객들이 바람 잘 날 없는 몬테시토 리조트 & 카지노의 보안팀과 호텔리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드라마가 바로 〈라스베가스〉입니다.

전직 CIA 출신에 몬테시토 호텔에 보안팀장으로 들어왔다가 후에 호텔 총 책임자가 되는 ‘빅 에드’ 에드 딜라인은 호텔 식솔을 챙기고, 호텔의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몬테시토라는 소왕국을 꾸려갑니다.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큰 카지노 호텔로 설정된 곳이니만큼 워낙 거금이 현찰로 오고 가는 이 카지노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고객들의 일상적인 도박 일정에서부터 폭탄을 몸에 두르고 현금 강탈을 도모하는 전문 털이범들까지 몬테시토의 보안팀이 감당해야 할 치안은 다종다양합니다. 카지노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해야 하고, 웬만한 사건 사고는 24시간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처리해야하므로 보안팀이 갖춘 설비와 수사방식은 경찰이 도움을 구할 정도로 최첨단을 지향합니다. 그런 보안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지상 최대 규모의 카지노답게 현란하고 소란스러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라스베가스〉라는 드라마랍니다.

빅 에드의 구박 받는 수제자 대니 클로이가 보안팀에서 빅 에드를 보좌하고, 공학석사 출신인 마크 캐넌이 발레 파킹 책임자로 내근직보다 더 짭짤한 수입을 올리며 호텔 안에 컴퓨터 범죄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날 때 어김없이 출동한다면, 이 남자 배역들을 둘러싼 네 명의 여자 호텔리어는 참으로 즐겁기 그지없는 세련된 미모를 보여 줍니다. 대니와는 거의 태어났을 때부터 아삼륙으로 지내며 사랑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반복하는 메리는 호텔의 의전을 담당하고 있고, 카지노 최고 경력의 호스트 중 하나인 샘은 하룻밤에 100만 달러도 우습게 탕진하는 최우수 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시즌 파일럿에서 대니를 유혹해서 아빠 몰래 잠자리를 가졌던 델린다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발군의 끼를 인정받으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 갑니다. 수준급의 도박 실력을 지니고 있는 딜러 네사는 아이스 퀸이라는 별명답게 차가우면서도 매혹적인 미모를 자랑합니다. 약간 백치미에 차분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메리나 〈위기의 주부들〉에서 가브리엘 역으로 나온 에바 롱고리아와 조막만 한 생김새가 무척이나 닮은 샘, 전형적인 서구 미인의 외모를 보여주는 델린다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미모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스 퀸 네사의 미모가 가장 출중하고 정직하게 느껴집니다.

〈라스베가스〉는 처음부터 탄탄하게 짜여진 캐릭터에,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분위기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드라마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에피소드와 시즌이 거듭될수록 뒷심을 발휘하는 드라마 중의 하나이지요. 처음에는 진도가 좀 더디고 현란한 구경거리에 오히려 산만해지기도 하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라스베가스의 기운을 잘 살려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남들은 며칠 와서 판도라의 상자 같은 속을 다 게워내고 가는 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말뚝 박고 살아가는 호텔리어들의 희로애락을 보고 있자면, 이 드라마도 모르긴 몰라도 꽤나 많은 ‘워너-비’를 양산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라스베가스〉는 카메오 출연진이 화려한 것으로도 이름 나 있습니다. 폴 앵카, 패리스 힐튼, 장 끌로드 반담, 슈거 레이, 본 조비, 심지어는 추억의 듀란 듀란까지 거의 에피소드 하나 건너 한 명씩 최고의 스타들이 몬테시토 카지노를 방문합니다. 시즌 대비 카메오 출연회수로만 치면 NBC의 최고 히트작 중의 하나인 〈프렌즈〉를 넘어설 정도의 이벤트입니다.

라스베가스에 실존하는 최고의 호텔 중 하나인 맨델레이 베이 호텔의 이미지를 빌려 만들었다는 몬테시토 카지노는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불을 밝히며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인 〈올인〉이나 〈호텔리어〉, 혹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등에서 간간이 라스베가스의 장관이 소개되곤 했지만, 본격적인 라스베가스의 진면목을 구경하려면 드라마 〈라스베가스〉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을 이토록 흥미롭게 조율한 드라마도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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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유니버셜 | 원제 Leaving Las vegas | 2004년 09월
벤은 LA에서 활동하던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다. 이제 그는 영화사에서 실직했고 알코올 중독상태이며 가족과도 헤어진 상태이다. 퇴직금을 받아든 그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차를 몰고 간다. 물론 그의 한 손에는 술병이 쥐어져 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벤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것은 그곳에서 술에 만취되어 한달 정도를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라스베이거스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단한 긍지를 가진 세라가 밤거리의 여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의 뒤에는 유리라는 포주가 있고, 벤과 세라는 우연히 마주쳤으나 벤은 그 후 세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것은 여자를 돈주고 사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벤에게 필요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연민의 정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유리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라와 벤은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겠다는 조건 즉, 세라는 벤의 알콜 중독에 대해 치료를 받으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또한 벤은 세라의 직업활동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동거를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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