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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ER〉 시대의 메디컬 드라마 - 〈그레이 아나토미〉

한국이건 미국이건,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의 소재로서 끊임없이 반김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의사들의 삶”입니다.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의사들의 삶”을 극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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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건 미국이건,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의 소재로서 끊임없이 반김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의사들의 삶”입니다.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의사들의 삶”을 극화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란 직업은 가장 돈을 잘 버는 전문직 종사자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가장 풍부한 직업군의 하나입니다.

일반인들이 병원에서 의사를 대하는 심리는 전적인 기대감과 일방적인 신뢰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현대의 직업군 중에서 가장 신에 가까운 직업을 찾으라 하면 의사가 그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하는 추측은 아주 온당한 편견입니다. 게다가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표현하기에도 의사라는 직업만큼이나 수월한 구조를 지닌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생과 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사명은 치정극의 윤리의식의 수위를 넘어서는 대단한 재미를 안겨주며, 실낱같은 삶에 대한 희망을 현실에서 실현시켜 주는 전문기술은 오히려 법정 드라마의 유려한 설레발보다 때로 더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미국 메디컬 드라마의 수준을 전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단연코 1994년에 시작된 〈ER〉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손을 잡고 만든 이 출중한 드라마는 메디컬 드라마의 체계와 골격을 완성했다는 평뿐 아니라, 드라마의 완성도에 필요한 눈높이 자체를 몇 단계 더 승격시켰다는 총평을 받고 있습니다. 응급실의 긴박한 숨소리와 땀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는 생생한 현장감에,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의 철저한 직업의식, 거기에 시즌 초반부터 두드러졌던 효과적인 캐릭터 창출이 융합되어, 메디컬 드라마 〈ER〉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롱런을 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ER〉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조지 클루니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빠진 시점에서부터 〈ER〉 또한 예의 그 폭풍 같은 환호를 뒤로 한 채 조금씩 누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포스트 〈ER〉 시대’의 메디컬 드라마의 판도는 예상보다 빠르고 탄탄하게, 게다가 아주 만족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FOX의 〈하우스〉와 ABC의 〈그레이 아나토미〉가 그 선두주자들인데, 그 둘 중에서도 ‘포스트 〈ER〉 시대’의 적자를 자처할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입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이제 막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인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사회 초년병들, 그 중에서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에 대한 의사들의 해결책이 “인턴 시키면 된다”라는 말이 있듯, 의사로서의 생애에서 가장 얄궂고 지난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의 인턴 다섯 명의 생활을 그린 작품이지요. 메디컬 드라마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를 인턴, 즉 전문의가 아닌 수련의로 설정한 〈그레이 아나토미〉는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보다 좀 더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그 기반을 효과적으로 풀어내듯 〈그레이 아나토미〉는 오프닝 인트로에서부터 아주 감각적인 영상과 매혹적인 음악이 사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극중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 최신 팝음악은 감각적인 영상미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캐릭터 라인은 다섯 명의 인턴과 그들의 선배 의사들입니다. 의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외과의로 추앙받는 엄마를 둔 메레디스 그레이는 전체 에피소드에서 대부분의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거기에 네 명의 주연이자 조연인 햇병아리 인턴 1년차 캐릭터가 있습니다. 약간 어수룩해 보여서 쉽게 농담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힘들고 외로울 때면 신생아실에서 아기들을 보며 미소 짓는 조지 오말리, 대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속옷 모델을 하기도 했던 귀여운 이미지의 이지, 한국계 캐나다 배우로서 최고를 놓치지 않기 위해 때로는 심술과 시기마저 서슴지 않는 크리스티나 양, 미국 유수 대학에 유학 온 전형적인 러시아 갑부의 아들처럼 행동하는 알렉스 카이브가 그들입니다.

다섯 명의 1년차 인턴들은 선배 의사들에게 인정받아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을 담당하는 바로 위 레지던트는 과장 의사들에게도 소신을 굴하지 않을 정도로 뚝심이 있고, 인턴들에게는 나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란다 베일리입니다. 게다가 메레디스는 인턴 출근 바로 전 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원 나잇 스탠드를 즐겼는데, 그 남자가 다름 아닌 병원의 외과과장인 데릭 셰퍼드였답니다. 너무 어리고 착해 보이는 인상에 힘이 좀 약해 보였지만, 의외로 멋있게 늙어가고 있는 배우 패트릭 뎀시가 분하고 있지요.

이 드라마도 보통의 메디컬 드라마처럼 단막극 형태로 그때그때의 에피소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좀 더 강한 중독성을 안겨주는 면모가 있답니다. 〈ER〉도 의사들의 삶을 실감나고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고 캐릭터와 구성 등이 이보다 더 탄탄할 수는 없어서, 그보다 더 재미있는 메디컬 드라마는 나오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감탄을 자아냈던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그레이 아나토미〉는 그런 지존 같은 존재가 있는 상태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드라마를 만났다는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우선 젊어진 의사들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덜 익은 풋풋함이 주는 신선함이 있지요. 여기에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인턴들의 생존경쟁도 강력한 양념이 됩니다.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암투에, 일선에서 처음으로 직접 접하게 된 환자들의 고통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유능함에 인간성을 더하는 의사가 되려는 과정에서, 각각의 개성과 드라마가 가미되어 저 높은 전문 직업 의사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한껏 충족시켜 줍니다. 유능한 냉혈한은 보통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업계보다 생과 사를 다루는 의료계는 실수가 용인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훨씬 팍팍하지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풋내기 인턴들이 그 첨예한 긴장감 속에서 의사로서, 찌르면 피 나오는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이 겹겹의 매력을 선사합니다. 칼잠만으로 1년을 나야 하는 인턴들이지만, 젊은 혈기로 벌이는 애정행각도 당연히 조미료가 되어주고요.

〈그레이 아나토미〉의 파일럿 에피소드의 시작은 르네 젤위거의 비음과 인상을 절묘하게 닮은 메레디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게임이라는 건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엄마는 최고 중 하나였다. 그에 비해 난 완전 꽝이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역시 메레디스의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향후 전체적인 드라마의 방향을 지시해 줍니다. “내가 외과의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단 한 가지도 생각해 낼 수 없다. 하지만 그만둬야 하는 이유는 수천 가지나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 손에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땐 받아들이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거나, 돌아서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그만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이 게임이 좋다.”

메레디스의 독백에서 읽을 수 있듯 〈그레이 아나토미〉는 자신들이 선택한 의사라는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풋내기 인턴들의 일과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그것도 아주 달콤하고 매혹적인 유혹의 세레나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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