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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 〈Without a Trace〉

세상에는 볼 만한 드라마가 널리고 널려 있고, 꾸준히 본다고는 하나 아직도 시청하지 못한 드라마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드라마의 시즌 또는 시리즈 피날레를 ‘독파’할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독파하나’ 하는 즐거운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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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볼 만한 드라마가 널리고 널려 있고, 꾸준히 본다고는 하나 아직도 시청하지 못한 드라마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드라마의 시즌 또는 시리즈 피날레를 ‘독파’할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독파하나’ 하는 즐거운 갈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것도 보아야겠고, 저것도 보아야겠고 손에 쥔 목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더란 말입니다. 딱히 고전이나 걸작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어찌 보면 손쉬운 선택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가볍기도 한 한편 공연히 난감하기도 합니다. 어떤 드라마는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도 마구 내키는 마음은 들지 않아서 미루게 되는 반면, 어떤 드라마는 입소문이라고 하기에도 뭣할 만큼 어디선가 들은 한 마디에 묘하게 이끌려 당장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든, 책이든, 만화든, 드라마든 시간이 지나갈수록 입소문에 많이 이끌리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입소문 믿고 봤다가 낭패를 본 적보다는 알찬 수확을 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은 듯합니다.

가장 흐뭇할 때는 역시 크게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 경우가 〈Without a Trace〉입니다. 어쩐 일인지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당시 유독 귀가 어두웠는지 입소문도 듣지 못했고, 아는 것이라고는 〈CSI〉를 만든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의 작품이라는 것과 실종사건을 다루는 FBI의 이야기라는 것뿐이었습니다. 〈CSI〉를 엄청나게 좋아하기는 하지만, 또 〈CSI〉, 〈CSI 마이애미〉, 〈CSI 뉴욕〉으로 이어지는 스핀 오프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라마라는 점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마냥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무심코 보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합니다. 한창 수사물에 빠져 있다 보니, 그 분위기를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는 희망사항은 있었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하여 보게 된 〈Without a Trace〉는 드라마 팬의 입장으로서는 뜻밖의 행운이었습니다. 1시즌 첫 에피소드부터 확실한 갈피를 잡고 출발했다는 느낌을 주어서 주저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갔고, 참으로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답니다.

기대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늘 하는 정도의 예상은 했습니다. 〈CSI〉의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작품이고 〈CSI〉를 히트시킨 제리 브룩하이머의 장기가 발휘된 작품이라고 했으니, 전율스러운 폭력과 살인 그리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예상이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Without a Trace〉에는 실종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마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별 생각 없이 실종 하면 으레 납치를 떠올리는 바람에 하게 된 착각인 것도 같습니다. 실험실의 일이 주된 업무인 〈CSI〉나 옛날 사건을 쫓는 〈콜드 케이스〉에 비해 현장에 나가는 일이 잦다 보니 총성이 더 자주 울리기는 하지만, 사건 자체가 험악하다거나 천인공노할 범인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CSI〉의 유혈낭자한 범죄현장과 시신들에 비해 〈Without a Trace〉의 장면에서는 그 같은 자극성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까지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그럼에도 〈Without a Trace〉 의 이야기는 뜻하지 않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Without a Trace〉는 어찌 보면 지독한 반전 드라마입니다. 자꾸 〈CSI〉와 비교를 하게 되는군요. 그러나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비교는 아님을 알아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두 작품 모두 많은 분들이 한 입으로 찬사를 보내 마지않는 작품이고,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같은 수사물 장르에서, 그런 비교가 한 작품의 매력을 말씀드리는 데 유용할 듯은 싶습니다.

자,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CSI〉에서는 폭력이 갈 수 있는 극한지점과 폭력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지능을 동원하는 악한 중의 악한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면, 〈Without a Trace〉에는 간혹 등장하는 악한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선량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건에는 그 어느 수사물의 사건들보다 굴곡이 많습니다. 실종된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굴곡 많은 사연이 인생의 절박함과 허망함을 드러내면서 절정의 아이러니를 이룹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 특유의, 서글프다고 해야 할지 모를, 그런 정서와 분위기를 형성해 나갑니다.

그 정서와 분위기는 단단한 이야기 구조와 배역 간의 넘치는 케미스트리로 확고하게 뒷받침됩니다. 〈Without a Trace〉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수사물 본연의 임무에도 모자람이 없으면서, 수사물치고는 주인공들의 관계와 그들의 감정이 실컷 드러나는 드라마입니다. 어쩌면 냉철함이 가장 큰 무기인 수사관들치고는 과도하게 감정에 치우치는 듯싶고 허술한 데가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거슬리기는커녕 캐릭터의 매력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Without a Trace〉의 힘입니다.

부서를 이끄는 잭 말론 반장은 수사물의 보스치고는 보기 드물게 탈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부하와 바람을 피운 이유 등으로 이혼을 당하거니와 심지어 철없는 행동으로 동료들에게 폐까지 끼치며 철 좀 들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지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만다, FBI 거물의 아들로 나름대로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마틴, 남미계로 사무친 개인사를 품고 있는 대니, 질병을 얻어 경력의 기로에 선 비비안, 여기에 애정의 다각 관계까지 등장하지만, 역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프로페셔널로서의 뛰어난 능력과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을 무기로, 넘친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정감을 안겨줍니다.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 실종되었다는 표현을 쓰겠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이 사라진 사람들은 FBI 뉴욕지부 실종사건전담반 수사관들에겐 흔적이 참 많은 사람들입니다. 있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자의로든 타의로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휴먼 스토리는, 미처 예측할 수 없었지만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습니다. 〈Without a Trace〉는 CBS에서 방영되는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의 다른 수사물과의 차별을 꾀하려는 목표에서, 〈CSI〉 스핀 오프 시리즈가 선보였던 스펙터클한 액션과 화려한 볼거리와는 정반대의 신호에 초점을 맞춥니다. 〈Without a Trace〉는 실종자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잃어버린 무수한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CSI〉 스핀 오프 시리즈가 최신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침묵의 사다리를 놓는다면, 〈Without a Trace〉는 사람과 사람이 스쳐 지나갔던 궤적을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어가듯 쫓아갑니다. CBS의 본격 수사물 시리즈에서 아날로그적인 인간미에 방점을 찍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개성 만점의 정감 있는 캐릭터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는 우수 어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또 하나의 장르화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Without a Trace〉는 분명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설득력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토록 절실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보내오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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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아웃 어 트레이스 시즌 1 (4Disc)』 워너브라더스 | 원제 Without a Trace: The Complete First Season | 2005년 08월
제리 부룩하이머 사단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범죄 수사물! 에미상 2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그 첫번째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와 풍성한 볼거리가 7장의 디스크에 모두 담겼다. Anthony LaPaglia는 노련한 FBI 요원 Malone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Poppy Montgomery, Marianne Jean-Baptiste, Enrique Muciano 그리고 Eric Close의 출연은 Jerry Bruckheimer 제작의 이 시리즈를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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