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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th is only skin deep...! - 〈닙턱〉

2003년 7월 22일에 첫 방영된 〈닙턱〉은 TV 드라마의 수위를 실험하는 듯한 강도 높은 수술 장면과 아찔한 러브신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수술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할 만큼 사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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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아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솟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잉글리시 코카 스패니얼과 아메리칸 코카 스패니얼 버프를 믹스시켜 절묘하게 장점만을 뽑아냈다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커다랗고 동글동글한 눈에,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한 얼굴 윤곽,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와서 적당히 풍만한 몸매, 거기에 너무도 눈부신 크림색 털과 그 부드러운 웨이브 컬이라니요. 한번은 미장원에 강아지를 같이 데리고 가서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얘처럼 절묘하게 웨이브를 넣어 주세요” 하면서 “스타 따라하기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평범한 소시민이 자기 모습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시도라고 해야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는 게 고작 시작이자 끝인 것이죠. 우리 강아지처럼 기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져보고 싶기도 하고, 탱크톱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소매 정도는 거리낌 없이 입어봤으면 좋을 텐데 하고 하나하나 따지다가, 거울에 팔을 들어올려 비추어 보기라도 하면 한숨 한번,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다가 또 한숨 한번, 뭐 그렇게 됩니다. 그럴 때면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보면 어떨까, 칼을 댄다고 해도 마취를 하니까 통증은 없을 것이고 다 나으면 흉터조차 남지 않으니, 무에 그리 걱정이, 문제는 오로지 돈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진한 유혹에 빠지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 진한 유혹은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 그룹 산하 케이블 TV 방송국인 FX에서 현재 시즌 3이 방영중인 〈닙턱〉을 보다 보면, 충격요법에 의한 일시적인 효과일지는 몰라도 온데간데없이 싸그리 사라져 버리고 만답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고 해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사실적인 수술 장면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거든요.

2003년 7월 22일에 첫 방영된 〈닙턱〉은 TV 드라마의 수위를 실험하는 듯한 강도 높은 수술 장면과 아찔한 러브신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수술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할 만큼 사실적입니다. 바로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콜드 케이스〉가 사건을 해결한 말미에 근사한 올드 팝을 선사하는 것처럼, 〈닙턱〉에서도 수술 장면이 나올 때마다 멋진 팝송이 흘러나옵니다. 아름다운 선율 아래로 서걱서걱하는 매스 소리에 등골이 싸늘해지게 마련인 것이지요. 제목인 “닙턱(Nip/Tuck)”은 성형수술을 나타내는 은어입니다. 왜 우리도 “저거 분명히 성형수술한 거야”라고 표현하지 않고 “필시 칼을 댄 게야”, 그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Nip(자르고)” “Tuck(쑤셔 넣다)”, 성형수술을 더할 나위없이 정확하게 나타낸 표현인 셈입니다.

〈닙턱〉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성형수술”이라는 판타지를 중심에 놓고 파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럭셔리한 삶에 대한 욕망, 섹스, 돈, 범죄, 마약 등 온갖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보시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워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흔히 지목되는 성형수술의 효과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각종 “메이크오버 리얼리티 쇼”와 차별성이 없다면, 과연 그것을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닙턱〉은 ABC의 〈Extreme Makeover(도전 신데렐라)〉 같은 프로그램, 즉 일반인들을 성형수술로 변화시키는 리얼리티 쇼의 한계와 가능성을 드라마라는 장르의 힘으로 완성시킵니다. 리얼리티 쇼의 “real”이 드라마 〈닙턱〉에서는 특수효과를 통해 수술 장면에서 생생하게 거듭납니다. 리얼리티 쇼의 “show"는 드라마 〈닙턱〉에서 등장인물들이 사고를 치고 극복하고, 내외적인 성장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나가는 치밀한 각본을 통해 흥미진진한 쇼로 선보입니다. 이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제 구체적인 줄거리보다는 드라마의 이미지만을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하나, 〈닙턱〉의 성형외과 수술 장면에서 나오는 특수효과는 〈X-Files〉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CSI〉 시리즈에서 익히 보아 왔던 “인간신체 노출전략”의 최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료 케이블 채널인 HBO를 제외하고 케이블 채널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노출증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영화를 보면 스펙터클과 감동으로 밀고 나가다가, 어느 한 장면에서 난데없이 으악, 하는 장면을 보여주곤 하는데(가령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전차에 발목이 잘리는 장면이나 〈데스티네이션〉에서 지나가는 기차에 파편이 튀어 목이 댕강하는 장면), 〈닙턱〉에서는 매 에피소드마다 이런 장면이 하나씩, 둘씩 들어 있는 나머지 심장을 철렁철렁하게 합니다.

둘, 아주… 야합니다. 강렬한 비트의 테크노 음악을 배경으로 깔기 때문에 음악 듣다가 간혹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성적인 묘사 역시 케이블 채널 수위의 마지노선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하드고어적이고 사실적인 특수효과와 이런 성적인 묘사로 인해 19금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셋,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것에다가 반 보만 더 전진하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할리우드적인 센스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드라마의 최대 장점으로 뽑는 것 중 하나가 지극히 상식적인 구성을 포용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인데요. 웬만큼 영화 보고 웬만큼 드라마 섭렵한 사람이라면 〈닙턱〉을 보면서, 저 사람 죽겠군, 저거 들키겠군,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군 하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마냥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미국 드라마라는 것이 바로 이 상식적인 구성을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기승전결 확실하고 권선징악 명료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냥 눈에 뻔히 보이는 상식적인 구성만을 취한다면 분명 평범한 작품으로밖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식적인 구성, 이야기를 꾸며내는 데 필요한 일종의 기본에 대해 진부하네, 할리우드적이네(여기서는 비판적인 의미의 할리우드) 하면서도 대안 없이 무조건 다르고 특이한 방식만을 취하려 했을 때 바로 수작도 컬트도 못되는 잡동사니 못 만든 드라마가 탄생하는 일도 비일비재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닙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구성을 취하면서도, 그것이 진부하지 않게 다양한 장치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반 보만 더 전진하는 센스를 보여줍니다. 그런 이유로 폭발적인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드라마가 〈닙턱〉입니다. 분명 〈닙턱〉에는 컬트나 매니아라는 단어보다는 대중성이라는 단어가 더 들어맞습니다.

넷, 등장인물이 매우 정이 갑니다. 〈CSI〉나 〈Without A Trace〉 〈Grey's Anatomy〉 등의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맨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냥 외적인 사건만을 놓고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면, 그 드라마는 일급 내지 특급 드라마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간 드라마를 주욱 보아온 저의 개인적인 판단이랍니다. 〈CSI〉에서 인물은 멀끔하나 도박이나 일삼고 다니는 워릭, 폼은 잡지만 사랑에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노총각 그리섬 반장, 반장으로서 카리스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하 직원과 바람이나 피우고 이혼이나 당하는 〈Without A Trace〉의 잭 반장 등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캐릭터는 사고뭉치일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들이 개인사를 해결해 나가고 그 와중에 서로 정을 쌓아나가는 과정도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닙턱〉은 이 부분을 아주 잘 처리합니다. 이 드라마는 대학동창 사이인 세 친구 션 맥나마라와 크리스천 트로이, 줄리아 맥나마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션과 크리스천은 마이애미에 성형외과를 함께 개업하고, 션과 줄리아는 부부가 되었지요. 셋은 그저 좋고 친하기만 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과 미운 정의 역사를 쌓아올린 끝에 가족처럼 되어버린 사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으로도 가족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우선 공부는 잘하지만 약간 샌님이었던 션 맥나마라, 공부는 못했지만 초특급 오라비인 트로이 크리스천의 관계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형태의 파트너십이지만 주거니 받거니 사고를 치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고 징하디 징한 우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그럴 듯하면서도 아주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또한 션의 아들인 매트 역시 많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이해심 많고, 어른스러운 성격의 평범한 틴에이저입니다. 매트는 성품과는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겪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다가, 시즌 2부터는 비로소(?) 틴에이저답게 본격적으로 말썽을 피우게 됩니다. 션의 아내이자 매트의 엄마인 줄리아 역시 이혼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불화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닙턱〉의 캐릭터들은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한 초특급 울트라 시한폭탄 하나씩을 품고 있어서 늘 아슬아슬하기만 한데도, 얽히고설킨 그들의 이야기를 감당해 내는 드라마의 힘은 놀랍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완전 초엽기스러울 수 있는 일들이 무럭무럭 일어나는데도 상당히 안정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2005년 골든 글로브 TV 부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현대인의 욕망과 콤플렉스를 가장 적나라하고 본질적으로 드러내주는 성형수술, 경제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나 외모 면에서 별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구하고자 벌이는 사투가 드라마 〈닙턱〉입니다. 혹 비위가 약하여 잔인한 수술 장면만은 도저히 못 보시겠다는 분들은 그 장면을 살짝 피해 가셔도 이 드라마의 주제와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 줄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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닙턱 시즌 1 (5disc)
워너브라더스 | 원제 Nip/Tuck Season 1 | 2007년 01월
대학동창인 크리스찬과 션은 함께 병원을 개업한 성형외과 전문의들. 화려한 삶과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크리스찬은 병원운영 역시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반면 진솔한 삶을 추구하는 션은 성형이 물질적인 사회의 잣대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소신 있는 진료를 추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병원에 찾아온 두 명의 남미 남자. 이 중 한 명은 보스의 여자와 잠을 잔 죄로 도피 중인 신세다. 보스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거액을 제시하며 성형수술을 요청하고, 물질적인 유혹에 흔들린 크리스찬은 이를 수락한다. 한편 션의 아들 매트는 애인인 바네사와 잠자리를 갖고 싶어 하지만, 포경수술을 아직 받지 못해 자괴감에 빠진다. 한편, 션은 크리스찬이 필요 이상 더 돈을 받아낸 것을 알게 되고, 크리스찬과 부딪히지만 크리스찬은 션을 무시한다. 그러나 곧 크리스찬은 그 환자가 보스의 어린 딸을 성폭행하고 도주하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깊은 회의에 잠기게 되는데… 총 5 Disc , 13개 에피소드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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