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엘비의 진득한 소포모어

최엘비 <CC>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수많은 젊음의 상징물 가운데서도 중심 소재로 '사랑'을 택했다는 점. 이 점을 결정적인 공격처로 사용한다. (2020.12.09)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주제로 청춘의 단면을 재치 있게 풀어낸 <오리엔테이션>은 최엘비에 대한 간결한 요약본일 것이다. 투박한 라임과 직관적인 발성, 청자의 기억과 공감대를 살살 자극하며 세밀히 풀어나가는 서사, 무엇보다 그가 속한 우주비행(WYBH) 크루가 가진 특수성과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결과물까지. 추구하는 캐릭터 자체는 힙합 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요소지만, 본인만의 특징이 잘 취합된 작품을 제시하여 설득력을 얻은 경우다.

그 연장선인 2집 <CC>는 전반적인 포맷 자체의 변동은 없다. 물론 이는 새로운 시도나 전략을 따로 취하지 않아도 아직 보여줄 무기가 많이 남아있고, 그만큼 작업물에 자신 있다는 의미로 먼저 다가온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많은 젊음의 상징물 가운데서도 중심 소재로 '사랑'을 택했다는 점. 이 점을 결정적인 공격처로 사용한다. 크루 특유의 몽글몽글한 신스 사운드와 정직한 드럼, 안정적인 퍼포먼스는 전과 동일하지만, 상징물을 연달아 호출하며 공감을 요하던 전작에 비해 감정적인 면에서 깊은 묘사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소재를 가공하는 법을 연습해본 덕일까, 표현법에도 여유가 묻어난다. 중복 노선에서 풍기는 일말의 불안함은 첫 트랙 '난 완벽하지 않아요'의 등장과 함께 깨끗이 사라지는데, 일렁이듯 감정을 동요시키는 사운드가 포문을 연 뒤 '중요한-건 난 한 번도 완-벽한 첫 장을 완-성해 보지 못했단-걸'과 같은 정석적인 라임 배치가 등장하고, 뒤이어 쉽고 캐치한 훅으로 연결되는 구성은 누구나 이해할 만큼 친절하고 귀를 사로잡는 킬 포인트를 담고 있다.

신시사이저 방울 속 치기 어린 사랑을 논하는 '사랑은 위대해!'와 'CC(Campus couple)', 장난스러운 기타에 위트 있는 훅을 섞은 '아님말고', 로파이한 건반 사운드의 '비가와 (Interlude)' 등 장점이 농축되고 안정적인 트랙들이 독창성을 공고화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일각 존재하는데, '구름구름'은 빈지노의 래핑이 짙게 드리우고, 공명하는 비트와 쿤디판다의 수려한 피처링이 담긴 '미안해'는 개개의 높은 퀄리티를 가졌지만 각자의 개성이 강한 탓에 응집 단계에서 겉도는 양상을 보인다. 라디오 사연을 삽입한 '결혼소식'은 야심 찬 장치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결점이 그저 생채기로 보일 정도로 작품은 높은 몰입감을 자랑한다. 이는 최엘비가 소위 명반이 상징하는 육각형의 기준에 다가가기보다, 앞서 말했듯 본인이 가진 강점을 탐구하고 지표를 뚫는데 온전히 에너지를 집중한 덕이다. 일관된 콘셉트 아래 여전히 생생한 일화가 살아 숨 쉬는 <CC>는 진지함과 엉뚱함을 겸비한 시트콤의 형태로 손을 뻗는다. '완벽하지 않기에, 친근하고 독보적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