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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사진만 찍어가려고 온 거야

도서전이 끝나면 어디든 멀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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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다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쪽팔리고도 구질구질한 짓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일, 일시불로 해주세요.”

일산 백석동의 동네책방 미스터버티고.JPG

일산 백석동의 동네책방 미스터버티고 

 

특색 있는 동네책방들을 초대하기로 하고 팀을 짜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그 개성을 기록으로도 남겨 독자들에게 선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만들지가 고민이었다. 날개가 없는 핸드북 형태에 책방 소개를 넣으면 어떨까. 아니, 책방 소개만으로는 아쉬운데. 그래서 주인장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권할 만한 다섯 권을 뽑아 달라”고 부탁했다. 고작 닷새간의 행사와 얼마 남지도 않은 준비기간 동안 이래저래 요구하는 것도 많다 여기며 귀찮아했을 법도 한데 모두들 흔쾌히 마감일에 맞춰 원고를 보내주었다.

 

다섯 권의 내용을 담은 원고는 실물 책과 함께 받았다. 글은 각자 써도 사진은 한 사람이 촬영하는 게 여러 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스무 군데 서점에서 다섯 권씩이니까 전부 합치면 백 권. 게다가 이 책들은 한날한시가 아니라 여러 날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했다. 그동안 나는 원고의 교정을 보느라 도착한 책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는 건 변명이지만). 한데 겨우 교정을 마치고 촬영을 하려고 보니 백 권 가운데 한 권이 도통 보이질 않는 거다. 주인장이 잘못 보낸 건지 중간에서 사라진 건지 아니면 내가 잃어버린 건지 오리무중이었다.

 

러시아 사진가인 이브게냐의 『틱시Tiksi』라는 책이다.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사진집을 발행해 온 김진영, 김현국 부부가 운영하는 ‘사진집 전문 책방 이라선’이 아니면 당장은 구할 길이 요원했다. 인쇄일정이 빠듯한데 어떡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당장 이라선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한 후에 책을 다시 보내달라고 해야지. 한데 일이 공교롭게 되려고 그랬는지 원고를 보내준 김진영 씨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는 거다.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수 없이 문자를 남겼다. 급한 용무가 있다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라선은 일반전화도 없다.

 

사진집 전문 책방 이라선.jpg

사진집 전문 책방 이라선

 

다음날, 책방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이라선으로 뛰어갔다. 모처럼 미세먼지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만큼 쾌청한 토요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책방에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 김진영 씨는 보이지 않았다. 손님들을 상대하는 건 김현국 씨였다. 나는 잠시 손님인 척하며 책방을 둘러보았다. 공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틱시Tiksi』가 진열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덥석 집어 들었다. 비닐에 싸여 있어서 내용은 볼 수 없었다. 상관없다. 이제 김현국 씨에게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하고 들고 간 DSLR로 사진을 찍자, 고 결심한 순간 김현국 씨가 뒤에서 말을 붙여왔다.

 

“이거, 사시려고요?”
“네? 아니, 그…….”
“아는 사람이 드문 책인데(라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음).
“네.”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라며 뭔가 기대한다는 표정).
“(실은 나도 몰라, 사진만 찍어가려고 온 거야.)”

 

하지만 김현국 씨의 기대에 찬 표정을 보며 책방에 와서 사진만 달랑 찍어가겠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할 소린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 작업 때문에 필요한 거잖아”라고 누군가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때는 그랬다. 사진집 전문 책방 이라선의 묘한 분위기와 현국 씨의 선한 인상 때문이었으리라. 3초 만에 마음을 정했다. “이거 주세요, 계산은 카드로 할게요”라며 나는 호기롭게 카드를 척 내밀었다. 현국 씨는 ‘당신, 책 좀 볼 줄 아는군’이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책과 카드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얇긴 해도 사진집이니까 3만 원쯤 하려나. 뭐 내가 사진집을 사본 적이 있어야 알지.

 

삑―, 하고 바코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카운터 계산기의 화면에 14,80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현국 씨가 나에게 물었다. “할부로 할까요, 일시불로 할까요.” 어라? 순간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계산기의 숫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14,800이 아니었다. 148,000이었다. 십사만 팔천 원.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읊조려 보았다. 이제라도 다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쪽팔리고도 구질구질한 짓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일, 일시불로 해주세요.” 그때의 내 표정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었다면 이렇게 이름 붙였을 것 같다. Tiktok-I can`t breathe. 이게 산다라박 씨의 노래가사였던가. 그런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책방을 나왔다.

 

이후의 작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기획 단계부터 모든 결정을 함께한 워크룸프레스의 김형진 대표가 직접 디자인까지 맡았다. 이 사람의 디자인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곤란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세련된 구석이 있다. ‘역대급’이라 평가받는 이번 도서전의 홍보 포스터도 그가 작업했다. 아니나 다를까. 리미티드 에디션 『서점의 시대』 역시 ‘이거, 그 인간이 했구만’이라고 할 만한 모양새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리미티드 에디션 서점의 시대.jpg
서울국제도서전에서 2만 원 이상의 도서를 구매하고 ‘사전등록데스크’에서 영수증을 보여주면 『서점의 시대』를 받을 수 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어디서 받느냐. 입구 옆 ‘사전등록데스크’다. 매일 100부 선착순

 

그리고 십사만 팔천 원이 찍힌 영수증과 『틱시』는 지금 내 책상에 놓여 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러시아의 작은 마을 ‘틱시’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구입하는 책도 나쁘지 않구나. 도서전이 끝나면 러시아에 갈까. 모르겠지만 도서전이 끝나면 어디든 멀리 가고 싶다.

 

이걸로 ‘마포 김 사장의 야매책방’ 연재를 마칩니다. 1년 6개월간 이런저런 잡다한 내용을 쓰며 개인적으로 몇 가지 소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너무 소소해서 그게 뭔지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연재를 제안해준 지혜 씨와 늘 꼼꼼하게 챙겨준 의정 씨에게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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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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