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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간장 먹고 맴맴

하루 한 상 – 여덟 번째 상 : 달래 간장과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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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면서 거실, 베란다, 냉장고의 차가운 공기가 너무나 싫다. 고로 식사 준비도 너무나 귀찮다. 그럴 때 만들어 놓으면 좋은 그것. 그에게 만능 간장이 있다면 나에겐 이것이 있다. 그래서 여덟 번째 상은 달래 간장과 밥

달래, 그 다가가기 힘든 이름 


달래를 보통 봄에 입맛을 돋우는 나물로 생각한다. 요즘엔 비닐하우스가 있기 때문에 계절에 상관없이 맛볼 수 있다. 된장찌개에 넣어먹어도 맛있지만 개인적으론 생으로 다져서 달래 간장으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하지만 달래 간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했으니.. 우연히 발견한 싱싱한 달래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온 게 발단이었다. 달래는 다가가기 힘든 야채였다. 자자란 줄기와 뿌리를 다듬다가 성질이 나서 그냥 잘라버리고 파란 부분만 쓸까를 계속 갈등했다. 하지만 입이 그걸 허락지 않는다. 뿌리까지 다져서 넣어야 맛있으니까. 그렇게 폭발할 것 같은 내 성격을 ‘달래’며 ‘달래’를 다듬었다. 이래서 달래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은 채집하기 힘들고 만들기 귀찮은 음식들을 많이 먹는다. 찾아보니 역시 미국이나 서양에서는 달래를 그냥 잡초로 생각한단다. 갑자기 ‘시애틀 고사리’가 생각난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한 워싱턴 주 시애틀은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데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보고 ‘이게 웬 질 좋은 고사리’라면서 잔뜩 채취해서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서 그렇다면 지금의 난 맛을 위해 고단함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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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다듬은 달래 한 움큼. 만세!



봄의 첫날을 꿈꾸게 하는 맛


다듬기만 지나면 그 뒤로는 뭐 할게 없다. 다지고, 넣고 (간장 들기름) 비비면 끝이다. 양은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하면 된다. 그렇게 달래 간장을 만들어 작은 통에 담아 보관한다. 입맛 없고 귀찮을 때 밥과 함께 먹으면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한 입 가득 넣었을 때 떠오른 가사가 있었으니 루시드폴 2집의 『오, 사랑』  이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의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가을의 끝에서 겨울을 건너 봄의 첫날을 느끼게 해주는 맛.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봄의 향기가 가득한 달래 간장은 왠지 전이랑 같이 먹으면 맛이 반감되는 것 같다. 전은 그 맛을 살려주는 그냥 연한 간장에 찍어 먹어야 가장 맛있다. 역시 달래 간장의 맛을 살리는 데는 맨밥, 플레인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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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던 남은 콩나물, 무를 넣어 만든 밥에 달래 간장 슥슥



단출하지만 함께하는 밥상의 풍성함 


얼마 전 읽은 책이 생각난다. 미국에 있는 청렴한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 아미쉬 공동체에서 발간하는 <PLAIN>이라는 잡지의 글을 묶어 낸 『그들이 사는 마을』 이라는 책이다. 그들은 현대문명의 혜택에 기대기 보다 버리는 단순한 삶을 택한다. 자동차, 세탁기, TV, 라디오 등등 하나씩 포기하고 그 자리에 다른 단순한 즐거움을 초대한다. 그리고 식탁에도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다. 


‘음식에 관한 한 가장 멋진 점은 물론 먹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함께 먹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 별 재미가 없다. 음식을 나누며 우리는 뜻깊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이웃을 사귀고 베풀고 감사하고 삶을 나눈다. (중략)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식탁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이다.’ ? 아트 기쉬, <하루 세 번, 식탁 위의 축제>, P. 146 


달래 간장을 만든 날, 근처에 사는 시누이가 놀러 왔다. 둘만의 식탁에서 셋, 넷의 식탁으로 늘어나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올 연말 모임은 집에서 자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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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건 셋이건 달래 간장 한 종지면 충분하다. 



(부록) 남편의 상 : 닭의 비상


곧 연말입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모두 안녕하신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야금야금 분량을 늘려가는 남편입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지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왕 만나는 거, 자신 있게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친구 부부와 홀로 친구 그리고 여편님까지 5명의 상을 차리려고 보니 조금 막막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총각 시절부터 자랑이었던 닭찜이 있었습니다. 


여동생과 자취하던 시절, 찜닭은 김치찌개, 제육볶음과 함께 저의 3대 주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불고기를 먹고 나서 찜닭을 먹은 여동생은 두 음식의 국물 맛이 똑같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이때부터 심기일전, 연마를 거듭했습니다. 제 찜닭을 먹어 본 여편님은 그냥 그렇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다시 의기소침해서 한동안 닭을 멀리했지만 이번 기회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제가 불러놓고 여편님 찬스를 남용할 수도 없고, 기댈 곳은 찜닭뿐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귀갓길에 부랴부랴 시장에 들러 생닭 두 마리를 샀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한 칼에 닭을 썰어 모래주머니까지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친구들 방문 한 시간 전, 끓인 물에 닭을 살짝 데친 뒤, 물을 버린 닭에 간장을 콸콸 붓습니다. 여기에 마늘, 양파, 당근, 감자를 썰어 넣고, 참기름 한 숟가락과 럼주도 좀 넣고 손으로 잘 섞어줍니다. 다 넣고 나니 솥이 꽉 들어찼습니다. 삼십분쯤 재워뒀다가 손님 도착 시간에 맞춰 뚜껑을 닫고 약한 불로 40분 남짓 끓여줍니다. 끝으로 단호박과 불려 놓은 당면을 투하! 10분만 더 끓이면 완성! 


이 많은 닭을 어쩌나 싶었지만, 일찍 도착한 친구가 두 접시를 비웠습니다. 늦게 온 친구 부부도 불어터진 당면과 흐드러진 야채에도 불구하고 맛나게 한 접시를 비웠습니다. 저와 여편님은 그 먹성에 압도되어 얼마 먹지도 못하고 술만 퍼 날랐습니다. 집안에 술독이 비었고, 저흰 아직도 치킨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찾은 덕분에 다음 날 처가에 가서 찜닭 자랑을 했습니다. 한 해 동안 먹여주신 은혜를 갚겠다며, (여편님의 사전 동의도 없이) 장인 장모님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또 닭은 제가 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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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 칠면조라면 동양은 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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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마을스콧 새비지 편/강경이 역 | 느린걸음
지금 내 삶이 혹사당하고 소진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우리 사회와 이 세계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다면,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는 무력감에 좌절하고 있다면, 『그들이 사는 마을』로 여행을 떠나보자.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삶의 이야기로부터 “저건 나도 해볼 수 있겠어”라는 용기,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어”라는 소망, 무엇보다 진정한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적은 소유와 더 많은 향유’로 초대하는 ‘지혜의 사상서’이자 ‘실천적 안내서’. 오늘, 우리에게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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