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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난도질, 순수 피칠갑 영화의 쾌감: <악의 교전>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

우리 선생님은 사이코 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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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는 <검은 집>, <푸른 불꽃> 등으로 유명한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 <악의 교전>에서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아닌 주인공의 죄의식 없는 연쇄살인의 모티브를 재현해 낸다. 자신의 악행을 눈치 챈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14세 소년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시작은 대놓고 젠체하면서 만들어 꽤 우아한 느낌이다. 십 수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의 시공간은 어느 한적한 고등학교로 툭 옮겨온다.


이거야 원. 포스터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선생이 학생을 몰살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사제지간의 성추행, 동성애 등)과 폭력 등을 버무려 놓지만, 이는 추악한 교육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고등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처럼 펼쳐진다. 그러다 선생의 연쇄살인과 조금도 망설임 없는 하드 고어 몰살로 이어진다. 이야기도 새롭지 않고, 깜짝 놀랄만한 반전도 없다. 죽어가는 학생들에 대한 동정심도 주인공이 사이코패스가 된 이유도 과정도 모두 생략되었다. 그런데 이게 멋지다. 쓸데없는 설명과 감정이입 없이 피칠갑 하드고어 장르의 관습적 쾌감을 보여주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악의 교전> 말이다. 한국에서 같은 날 개봉한 <짚의 방패>가 이야기와 질문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아쉬움을 준 것에 비한다면 <악의 교전>은 막힘없이 쭉 뻗어나가는 느낌이다. 잔인하면서도 이상하게 통쾌한 후반 30분이 지나면, 정말 끝난 거야, 하는 순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그렇다고 허무해할 것도 없다. 우리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이름에서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그 30분 안에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이케 다카시는 <검은 집>, <푸른 불꽃> 등으로 유명한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 <악의 교전>에서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아닌 주인공의 죄의식 없는 연쇄살인의 모티브를 재현해 낸다. 자신의 악행을 눈치 챈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14세 소년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시작은 대놓고 젠체하면서 만들어 꽤 우아한 느낌이다. 십 수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의 시공간은 어느 한적한 고등학교로 툭 옮겨온다. 하스미(이토 히데아키)는 훈훈한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교무회의를 이끈다. 선생과 학생들은 그를 신뢰하지만, 정작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여고생과 밀회를 즐기거나, 협박한다. 그러다 하스미의 본 모습은 곧 여러 사람에게 들키게 되고, 걸리적거리는 인물은 망설임 없이 제거된다. 시체가 늘어나면서 하스미를 의심하는 시선도 늘어가고, 한두 명 없애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하스미는 학교를 봉쇄하고 전원 몰살을 결심한다. 자신의 제자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하스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까지 죽어나가지만, 동정심을 가지고 응원하게 되는 캐릭터나 감정이입이 되는 캐릭터를 애초에 만들어두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그저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맥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숨어있는 학생들이 무사히 탈출하기를 응원하기 보다는, 하스미가 곳곳에 숨어있는 학생들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사이코 패스 혹은 특이 취향이라고 의심하진 말자. <악의 교전>은 학생들 중 누가 살아남느냐의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라,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야 한다는 하스미의 서바이벌 게임이기 때문이다.


악취미의 정서적 쾌감


<오디션>

1995년 <신주쿠 흑사회>로 장편 데뷔한 후, 1997년 쓸쓸한 야쿠자의 일생을 그린 <극도흑사회>, 1998년 동성애적 취향을 숨긴 야쿠자의 슬픈 멜로 <블루스 하프> 등 초기의 미이케 다사키 감독은 쓸쓸함과 상실감을 기본정서로 한 섬세한 야쿠자 영화를 선보인다.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거쳐 미이케 다카시를 세계적으로 알린 영화는 2000년 <오디션>이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지루할 정도로 조용하다. 아내를 잃고 아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는 아오야마의 이야기는 거의 가족 드라마라 할 정도로 건전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순수하고 신비로운 여인, 아사미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는 시점부터는 멜로영화가 된다. 하지만 아사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후반부부터 <오디션>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지절단의 하드 고어로 변신한다. 그녀는 검은 가죽 장갑과 앞치마를 두르고, 남자의 혀에 주사를 찔러 넣거나, 돼지고기를 자르는 줄로 발목을 절단하기까지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오야마가 아들이 있는 홀아비라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어떤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아사미의 집착은 그를 잔인하게 난도질한다. 영화를 보다 구역질을 했다거나, 도중에 박차고 나갔다는 일화는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피투성이 자루가 꿈틀대는 장면과 눈을 질끈 감아도 들리는 아사미의 소리, ‘끼리끼리끼리끼리…….’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치 더 킬러>

2001년 <비지터 Q>는 작정하고 만든 엽기 영화다. 오직 비디오카메라로만 촬영되어 더욱 묘하고 변태적인 느낌을 준다. 근친상간은 기본이고 살인, 시체 강간 등 다카시의 악취미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같은 해 <이치 더 킬러>는 하드 고어의 팬이 아니라면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김지운, 박찬욱 감독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손꼽는 다카시 감독의 대표작을 확인해 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참고 보아도 좋겠다. 지금도 미이케 다카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디션>, <이치 더 킬러>, <비지터 Q>는 2000년~2011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그 기간 중 연출한 작품이 12편이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다작을 하는 감독인지 알 수 있다.


<착신아리>

이후의 작품은 앞선 세 작품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2003년 <착신아리>는 <링>과 <주온> 이후 귀신과 악령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작정하고 만든 대중영화였다. 의뢰가 들어오면 그냥 촬영에 들어간다는 그의 말처럼, <착신아리>는 귀신 영화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말해오던 그가 만든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이다. 휴대폰의 저주, 예고된 죽음 등 <링>의 아류처럼 보이지만 다카시는 사다코 캐릭터를 베끼는 짓은 하지 않았다. 다카시의 이름을 기대하고 보면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장 위로 걸어오고 휴대폰 화면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귀신의 모습은 정말 무섭다. 공포영화의 장르적 특징을 잘 살린 대중영화로 무난하게 즐길만하다. 거기에 죽음의 현장을 취재하러 나온 취재진들이 만들어가는 매스 미디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사회적 이슈까지 더했다. SF적인 요소에 동성애적 감성을 녹여낸 실험작 <46억년의 사랑>, 엉뚱한 서부극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2011년 3D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임> 등 이후의 작품들은 실험적이긴 하지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2008년 <이겨라 승리호>는 70년대의 동영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유치하면서도 과장된 표현법이 손발이 오글거리게 만드는 전체관람가 SF 영화였다.

2010년 영국 영화잡지 토탈필름에서 역대 가장 불편한(Disturbing) 영화 25선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불쾌감을 조성하는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사이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함께 미이케 다카시는 <오디션>과 <비지터 Q>로 10위권 안에 2개의 작품을 올렸다. 결과를 보고 <이치 더 킬러>가 왜 빠졌냐고 투덜댔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작품의 제목 혹은 감독의 이름은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하지만, 명성이 있다고 해서 그가 대중적인 감독인 것도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것도 아니다. 시간이 나면, 의뢰가 들어오면 영화를 찍는다는 그의 말처럼 70여 편이 넘는 연출 작품 중에는 비디오 영화도 있고, 어린이 영화, SF, 호러, 코미디, 멜로, 판타지 등이 마구 뒤섞여 있고 작품의 완성도도 편차가 심한 편이다. 영화제에서 다카시 감독의 영화는 순식간에 매진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시간낭비만 했다고 악평을 늘어놓는 관객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다카시 감독의 영화는 그의 명성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그의 악취미와 그 정서에 대한 호기심과 그 잔혹함 속에 피어오르는 그의 장난기를 즐기면서 봐야한다. 즐길 자신이 없다면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은 솔직히 평생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게 다카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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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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