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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슈바이처 박사와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

슈바이처 박사, 그가 아프리카 의료봉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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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의 의사이며 음악가, 철학자, 개신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슈바이처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이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9월 4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의 의사이며 음악가, 철학자, 개신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슈바이처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이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9월 4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슈바이처(1875년 1월 14일~1965년 9월 4일)는 알자스의 카이제르스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인 루이 슈바이처 목사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몸이 약한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 부모의 뜻에 따라 농촌 귄스바흐에서 자랐다. 그가 태어난 알자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영토 다툼이 심하던 곳으로 당시에는 독일 영토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로 넘어가 현재에 이른다. 슈바이처도 알자스의 국적이 바뀌면서 독일에서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었다.

카이제르스부르크에서의 유년시절은 슈바이처의 기독교 믿음에 영향을 주었다. 루터교회 목사인 아버지는 아들이 성서를 읽으며 궁금해하는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교우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농부들이었던 주위환경은 슈바이처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했다. 1931년에 쓴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을 보면, 슈바이처는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슈바이처의 아버지는 성찬예배 때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자주 설교했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슈바이처를 역사적 예수연구 1세대에 참여한 진보적인 신학자이자, 아프리카 의료봉사자가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 19세 이상의 독일 국민은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였으며, 중대장의 배려로 군인신분으로 대학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1899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이듬해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했는데 신학생 시절 그는 당시 서구 신학계에 등장한 예수전들을 연구하면서 예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신학적으로 맞는가를 연구하였다.

1899년 스트라스부르의 목사가 되었으며, 1902년 모교의 신학부 강사가 되었다. 군대 복무 중 성령강림주일 휴가를 집에서 보낼 때에 “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는데, 이러한 행복을 나만 누려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나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라는 인식으로 성숙한 것이었다. 그는 21세 때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 속에서 살고, 그 후부터는 인류에의 직접 봉사 활동으로 들어가자’는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의학을 공부했다. 30세 되던 해인 1905년 의학과정에 진학했으며, 1912년에 의사 고시 합격, 1913년에 예수의 정신질환 이론에 대한 비판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듬해인 1913년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흑인을 위한 의료 사업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현재 가봉 공화국)의 랑바레네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통역은 백인 선교사들과 동역한 흑인 누쳉이 해주었으며, 병원 건물은 선교사가 사용했던 닭장을 수리하여 사용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연주, 레코드 등에 의한 수입으로 병원을 자력으로 운영하였다.

자금이 달려 병원 운영이 어렵게 되자, 병원의 기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마침 그가 태어난 알사스 지방은 당시 독일의 영토였으므로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쟁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상처는 어머니가 1916년 프랑스 군인들의 군마(軍馬)에 치여 죽은 사건이었다.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슈바이처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가봉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국적을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꿨다.

그 후 6년간 유럽 각지로 돌아다니며 모금을 한 다음 다시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갔으나 병원은 부서져 뼈대만 남아 있었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원조금이 들어와 병원은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를 돕기 위하여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곳으로 자원하여 왔다. 그는 한센병 환자 거주지도 추가로 세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의료시설도 만들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36명의 백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다수의 원주민 직원들의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운영에 필요한 돈은 3년에 한 번 꼴로 유럽으로 돌아와 연주회를 열어 번 돈과 저서의 인세, 강연으로 받은 돈과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1957년 라디오 강연과 신문 기고를 통해 핵무기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을 하였다. 1965년 9월 4일, 랑바레네에서 그가 사랑하는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숨을 거두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출처: 위키백과)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은 거룩하며, 희생되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는 기독교 사상인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저서 <나의 삶과 사상>에서 주창하였다. 그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현대사회에 분노하는 순수한 사람이 있을 때에 역사가 바뀐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바흐 연구의 권위자이며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로, 파이프 오르간의 기술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찍부터 핵무기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을 하였고 평화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저서도 매우 많으며, 대부분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신학 관계 저서로 <예수전 연구사>, 철학 저서로 <문학 철학>, <물과 원시림 속에서>가 있다. 자서전 <나의 삶과 사상>은 독문학자 천병희 선생이 한국말로 옮겨서 한국독자들에게 소개했다.

한편,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오랜 내전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꽃을 피운 삶을 살았다. 뒤늦게 발견한 대장암으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에브리싱 이즈 굿(Everything is good)”이라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위로하였다. 그의 삶은 사제로서의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본보기이자, 사랑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 준 하느님 사랑의 증표다.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실천과 헌신적인 봉사의 삶으로 인제인성대상특별상(2006년), 보령의료봉사상(2007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년)을 수상했다. 구수환 PD에 의해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와 극장판으로 상영되었고,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슈바이처의 일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 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슈바이처를 취재 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왔다. 특등칸과 1등칸과 2등칸을 모두 뒤졌으나 슈바이처를 찾지 못하였다. 기자 한 사람이 3등칸에서 사람들을 진찰하고 있는 슈바이처를 발견 한 뒤 물었다.

“왜 이런 3등칸을 타고 가십니까?”

슈바이쳐가 대답하였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 다니는게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예스24)


슈바이처 추천 도서


나의 생애와 사상

알베르트 슈바이처 저/천병희 역 | 문예출판사

20세기 정신적 스승 슈바이처, 그 자신의 진솔한 삶의 기록. 슈바이처 박사의 유년시절부터 그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음악학자, 철학자로서의 눈부신 명성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의사의 길을 택한 그의 생애는 `생에 대한 외경`이라는 사상을 삶에 그대로 투영한 진정한 실천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방적이고 허식과 편견이 없는 다정다감한 인간, 과거의 인물이 아닌 약동하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슈바이처의 모습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저/송영택 역 | 문예출판사

지난 76년 문고판으로 나온뒤 묻혔던 슈바이처 박사의 에세이를 재출간한 책. 1913∼1917년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의료활동 체험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장황한 일대기보다 진솔한 에세이 한편이 슈바이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늘의 축복

알베르트 슈바이처 저 | 새들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프리카의 성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의사이기 이전에 신학자이고 목사였다. 평화를 위해 힘썼던 그의 사후 30여년이 지나 그가 남겼던 설교들이 출판되었다. 평생을 설교하는데 힘쓰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기쁨을 느꼈던 슈바이처의 수백편의 설교 중 이번에 번역되어 나온 설교는 예수 복음의 핵심인 마태복음 산상설교의 서문, 소위 ‘팔복’에 대한 설교만을 모든 모음집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 나의 어린 시절

알베르트 슈바이처 저/권혁준 역 | 정원출판사

『나의 어린시절』은 슈바이처 박사가 마흔 살의 나이에 자신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돌아 보면서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한 인간이 위대한 인물로 성장하여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슈바이처

정지아 글/임연기 그림 | 주니어RHK

초등학생들을 위한 역사 인물 이야기로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뒤지지 않는 자료와 부족하지 않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초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 실린 인물들을 엮은 책이므로 학습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흑인이 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절을 살았던 슈바이처는 흑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했지요. 고귀한 삶을 살았떤 슈바이처의 삶과 업적을 살펴봅시다.





한국의 슈바이처들

한국국제협력단 저 | 휴먼드림

한국국제협력단이 1968년부터 40여 년간 펼친 ‘의료단 파견 사업’을 책으로 엮어냈다. 그들은 여전히 배고픔에 허덕이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폐렴이나 설사 등의 간단한 증상으로도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는 데 주력했다. 책에는 이처럼 부와 명예를 버리고 지구촌의 가장 낮은 곳,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떠난 의사들이 보여준 감동과 열정, 사랑의 기록이 가득하다. 1968년 처음 감비아에 정부파견의사가 나가면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우리의 기록이자 전세계를 아우르는 희망과 나눔의 증명으로,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태석 저 | 생활성서사

한 수도 사제의 아프리카 사랑 이야기이다. 물질적 가난을 풍요로 바꾸어 줄 수 없지만 그 고통과 가난을 함께하며 사는 신부의 삶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사제라는 신분을 넘어 서서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아픈 곳을 살피고 치료해 주는 의사로, 그리고 다양한 악기와 즐거운 노래를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으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살아가는 저자의 체험이 담긴 따뜻하고 감동적인 휴먼 에세이이다.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

구수환 저 | 비아북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은 「울지마 톤즈」의 감독 무삭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적으로 시작된 구수환 PD와 이태석 신부의 인연,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아프리카 톤즈로 가기 위한 고달픈 여정, 톤즈의 참혹한 실상, 톤즈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에서 발견하는 이태석 신부의 유산들, 이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중심은 사람이다. 이태석을 만났던 사람들,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 사람들, 한 번도 울어보지 못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울지마 톤즈, 그 후… 선물』은 씌어졌다.



[DVD] 울지마 톤즈 극장판

디에스미디어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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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울지마 톤즈 극장판

27,600원(7% + 1%)

상기 이미지는 제작상 일부 변경 될 수 있습니다.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 신부님... 당신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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