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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사색의 공간

집에도, 마음 한 구석에도 그렇게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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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배척하기보다 즐기고, 사색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거듭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즉 여백의 공간은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하루에 일정 시간 혹은 인생의 일정한 시간은 세상의 소음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열려 있는 창문을 스르륵 밀어서 닫을 필요가 있습니다. 조용한 방의 한가운데에 앉아, 혹은 내 인생의 한가운데에 앉아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는 것입니다. 


여기는 어디이고, 지금 나는 어디까지 왔으며, 지금은 어떤 시간인지……. 

고독의 시간, 그것은 얼마나 멋진 순간인가요. 


고독은 사색을 불러오고 사색은 필연코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불러옵니다. 철학적인 은유라기보다는 누구나 겪는, 환경에 따른 인간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입니다. 우리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집을 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살아갑니다.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며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한쪽에서는 음식이 부족해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들어설 틈이 없고, 또 한쪽에서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군가 혼자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극단적 과잉 속에서 중간지점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과잉은 필연적으로 반대의 결핍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글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정작 그 안의 개인은 누구와도 진심어린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고, 과잉의 영양 속에서도 사람들은 헛헛한 속을 메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고독을 죄악시하거나, 혹은 한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는 나락으로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그런 상황을 거부하고 막거나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독으로 인한 성찰만큼 인간에게 값진 활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평생 독신으로 살다 생을 마친 프란츠 카프카의 전기를 읽다가, 그가 여러 번의 결혼 기회를 포기한 것은 ‘고독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한참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독에 대한 향수…… 그렇다면 그 글을 쓴 사람은 혹은 카프카는 고독이라는 것을 인간의 원천적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혹은 고향 같은 것으로 본 것은 아닌가 궁금해졌습니다. 하긴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생을 마치는 것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늘 고독을 곁에 두고 살고 있습니다. 다만 그걸 인정하지 않고 거부할 뿐입니다. 우리는 때로 고독을 위해 일요일이면 배낭에 물과 방울토마토 몇 알과 초콜릿 몇 개를 넣고 산에 오릅니다. 혹은 고속버스를 타고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로 갑니다. 그것도 아니면 낚시터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밤새 하염없이 물을 바라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들으며 하염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순간, 또는 약속장소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때, 곧 오게 될 누군가를 아직 만나기 전 덤으로 얻은 몇 분의 시간이 바로 고독의 시간입니다. 


또 제가 아는 어떤 선배는 어릴 때 혼자 지붕에 올라가 발아래 펼쳐진 세상에서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 연결이 전혀 안 되는 일본의 어떤 료칸은 바깥과의 연결을 잠시 끊고 혼자 조용히 휴식하고 싶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덕에 늘 6개월 이상 예약이 밀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그런 고독과 사색의 공간에 대한 설계를 의뢰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가로세로가 각각 2미터가 채 안 되는, 한 사람 겨우 들어가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에 있을 때 가장 편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방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실은 너른 마당이 있는 무척 큰 집에 사는 사람이었고, 물론 그 집에는 여러 개의 방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만한 마음 편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어나면 막 머리가 닿을 듯 천장이 낮고, 아무런 가구 없이 앉은뱅이책상 하나 겨우 놓을 정도의 좁은 면적의 방을 그렸습니다. 별다른 설계랄 것도 없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는 본채와 시선을 적당히 가리는 얇은 벽을 하나 세웠고, 그냥 아주 작은 방과 그에 딸린 마루를 하나 놓았을 뿐입니다. 방의 창을 열면 마음이 열리듯 환해지며 세상의 풍경이 들어오고, 창을 닫으면 세상과 단절된 완전한 고독의 순간이 되는 공간. 한 사람이 들어갈 작은 방을 하나 만드는 일이란, 별것 아닌 듯 시작했지만 새삼스러웠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따로 공들여 어떤 공간을 만들지 않더라도, 주변에 있는 나무 아래, 석양을 볼 수 있는 작은 발코니, 벽에 등을 기대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방…… 모두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는 고독과 사색의 공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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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고독을 즐기고 고독이 가져다주는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입니다. 혼자 있을 때도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을 이용해 여기 없는 누군가와 소통하며 고독에서 벗어나려 애씁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덜어내고 비우고 내려가기보다는 덧붙이고 채우고 올라가는 것에 더 익숙하고 그런 것들이 삶의 목적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주로 수채화를 많이 그리는 편인데, 수채화는 잘 아시다시피 색을 칠하는 방식이 더하는 것이 아니고 빼는 것입니다. 하이라이트를 나중에 칠하며 양감을 주는 유화와는 달리, 수채화는 하이라이트를 빼내고 혹은 하이라이트 부분을 미리 칠해놓아 그 영역을 확고히 한 다음 나머지 부분을 순서대로 칠해 나갑니다. 그래서 늘 어디를 어떻게 비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끝까지 잘 비워져 있는지에 대해 강박을 가지면서 작업을 합니다. 


집에도, 마음 한 구석에도 그렇게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방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부터 인구 대비 세대의 구성원이 한두 명인 가구의 비율이 표준적이고 평균적인 행복한 가정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구의 비율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살아가는 삶이 더 이상 낯설거나 드문 일이 아닙니다. 또 한편으론 가족 간에도 서로 간섭하기보다는 독립성을 존중해주고, 다른 생각,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자아를 늘 확인하고 성찰하는 철학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배척하기보다 즐기고, 사색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거듭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즉 여백의 공간은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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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임형남 공저 | 예담
집을 짓기 전에, 이사를 가기 전에,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 집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길 권하는 책이다. 노은주ㆍ임형남 부부 건축가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하고,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소나기학교’의 기획을 맡는 등,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자들은 집이 가족의 관계를 존중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지, 단열과 환기에 대한 오해는 없는지 등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과연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노은주,임형남 저자의 집 이야기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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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은주,임형남

노은주
1969년 원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월간 플러스, 공간사에서 건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수목건축에서는 건축기획을, 서울포럼에서 웹진기획을 했다. 리빙TV의 「살고 싶은 집」, 교보웹진 「Pencil」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을 했으며,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임형남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삼건축, (주)삼우설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다가 (주)SF도시건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이곤 한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SALUBIA Time capsule’, ‘외침과 속삭임’(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환원된 집’(이루 갤러리)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고,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2012년 에 멘토 건축가로 출연했으며, 그 외 <명사들의 책읽기>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등이 있고, <세계일보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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