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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고 불운한 존재들에 관한 김애란식 비극의 향연

니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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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진정한 소통이 어려운 우리 시대의 우울과 소외를 자기 스타일로 혁파하면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진정한 소통의 자장을 넓고 깊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그렇게 행복을 기다리느라 지겨웠던, 비행운과 맞씨름을 하느라 힘들었을 친구들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다시 김애란 소설의 미덕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소리 나는 책

2회에 걸쳐 다룬 <비행운>에 들어가 있는 단편들, 그리고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침묵의 미래’ 속의 구절들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처음에 읽어드릴 부분은 비행운에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입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라는 소설인데요. 여자주인공이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최악의 마음으로 먹기 대회에 임하는 바로 그 장면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중략) 상황이 고스란히 펼쳐지는 것 같죠? 대단한 속도감이고 대단한 묘사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처연한 느낌도 들고요. 두 번째로 제가 읽어드릴 구절은 ‘물속 골리앗’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고립된 철거지역에 내리는 장마를 굉장히 진진하게 묘사하신 부분인데요. 읽어드릴게요.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듣다 보니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티브이와 라디오는 나오지 않았고, 양초는 되도록 아껴야 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거나 이런저런 몽상에 잠기는 일로 시간을 때웠다. 그러곤 눅눅한 방바닥에 누워 지구의 살갗 위로 번져 나가는 무수한 동심원의 무늬를 그려봤다.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들…… 오래전에도, 그보다 한참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양으로 떨어졌을 동그라미들. 우리의 수동성을 허락하고, 우리의 피동성을 명령하며, 우리의 주어 위에 아름다운 파문을 일으키는 동그라미들. 몹시 시끄러운 동그라미들. 그렇게 빗방울이 퍼져가는 모양을 그리다 보면 이상하게 내 안의 어떤 것도 출렁여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고, 당장 뭘 이해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떼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의 봉분 위에도 동심원이 고요하게 퍼져 나가고 있을 터였다. 아직 떠내려간 것만 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거다.
『비행운-물속 골리앗』 (김애란/문학과지성사) 中에서


에디터 통신

참 흉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정말 더 끔찍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닌 죄책감을 모르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까요.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입니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는 투고원고였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원고를 투고해 주시는데요.


이러한 원고들이 출판으로 이어지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저희가 이 작품의 출판을 결정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 기발한 설정, 소름 끼치는 반전, 게다가 검찰청에 근무한 바 있는 작가분들의 이력 또한 저희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박하와 우주는 부부작가로, 검찰청에 근무하며 많은 피해자들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피의자들은 법의 보호 아래서 잘 지내고, 오히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평생 괴로워하며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형법 자체가 피의자의 인권 보호만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정작 피해자들의 입장을 놓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에 들어서야 범죄피해자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잡았다는 얘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작품의 내용들이 뉴스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작품에서처럼 그렇게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많느냐는 저의 질문에 정말 많다고 저자분들이 말씀하셨을 때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이런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을 가까이서 보며 함께 아파해서인지, 작가들은 이 작품에서 피해자들의 이런 심리를 너무나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따라가는 동안 감정이입되어 조금이나마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좀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소름 끼치는 반전을 통해 그 입장이 되어 통쾌함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이 작품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 보내셨으면 합니다.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의 편집자 정낙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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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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