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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독립적이고 덜 쿨해져야지

어쩌다 나는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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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려면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계약 하고, 세금 내는 법을 익혔다. 물론 혼자라는 게 처음엔 죽도록 싫었다. 혼자 영화를 봤던 날, 혼자 식당에 갔던 날, 혼자 여행 갔던 날, 참으로 생소하고 불편했던 그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식당에 혼자 가면 다들 한 방향을 보며 앉는다. 혼자 밥 먹는 것을 남에게 보이지 않고 나 또한 남의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모른 체한다. 그게 예의다. 혼자 극장에 갈 때는 되도록 동네에 마실 나온 것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다. 매표소 직원에게는 “한 명이요”를 정확하게 말해야 상대방이 “한 명이요?” 되짚는 일이 없다. 혼자 여행갈 때는 심심치 않게 책과 음악을 충분히 챙겨 간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법을 안다. 그렇게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고, 혼자 산책하는 법, 혼자 쇼핑하는 법을 안다. 이 도시에서 나는 뭐든 혼자 잘 하는 사람. 어쩌다 나는 이렇게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었을까? 혼자 살아가는 법 매뉴얼이라도 쓸까?

혼자 살아가려면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계약 하고, 세금 내는 법을 익혔다. 물론 혼자라는 게 처음엔 죽도록 싫었다. 혼자 영화를 봤던 날, 혼자 식당에 갔던 날, 혼자 여행 갔던 날, 참으로 생소하고 불편했던 그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밥은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게 후딱 해치우고 나왔고, 독립 후 혼자 잠들어야 했던 날엔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았다. 처음 혼자 여행하는 날엔 아무도 날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데도 괜히 곧 친구를 만나기로 한 것처럼 어색하게 연기를 해야겠다. 혼자 하는 법을 마치 통과의례인 것처럼 배운 것 같다.

더불어 감정적으로도 혼자인 법을 배운다. 만약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치면 일단 사건 수습부터하고 그 다음 놀람, 무서움 같은 감정을 혼자 다스린다. 어느 밤 외롭다 한들 누군가를 붙잡고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일도 차츰 줄어든다.


지금은 혼자에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되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불규칙적인 친구의 퇴근 시간을 맞춰야 하고, 약속 장소는 둘의 중간지역쯤 정해야 할 것이고, 입맛도 천차만별인데 뭘 먹을지 메뉴도 조율해야 할 것이고, 영화 한편 본다 치면 서로의 취향도 다를 테고. 여러모로 맞출 게 많으니 귀찮아 포기한다.

사소하게 오해하고 어긋난 관계도 일일이 해명하고 오해를 풀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는건 쿨하지 않다는 생각 탓이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 쿨한 사람이 되는 것. 이 모든 목표들은 결과론적으로 메마른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못 먹어 회사 앞 편의점에서 혼자 김밥과 샌드위치, 우유를 사서 먹는데 좋아하는 남자에게 그 모습을 들켰다. 들켰다는 건 혼자 밥 먹는 게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나는 혼자인 것을 잘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걸 왜 굳이 꾸역꾸역 익숙해지려 노력했을까.

아! 혼자인 것에 더 익숙해지지 말자. 귀찮더라도 움직여서 친구 만나고, 친구의 취향에 맞춰주고, 그렇게 민폐도 끼치면서 공통점을 늘려가야지. 오해가 쌓여 서운해하고, 풀고, 그렇게 세월의 더께를 만들어가야지.

오랫동안 쓰지 않아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집전화기를 다시 꺼냈다. 몸이 피곤해 말 한마디로 꺼내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와 소곤소곤 다정히 통화하다 잠들어야지. 덜 혼자여야지. 덜 독립적이고 덜 쿨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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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서울 김지현 저 | 네시간
방송작가 특유의 객관성 있는 담담한 어조로 ‘도시, 서울 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현장성 있게 그리고 있다. 마치 나래이션을 듣는 듯한 느낌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자신을 타인화하여 감정을 한 꺼풀 걷어낸 단조롭고 관조적인 감성도 매력적이다. 여행과 지리적 공간, 풍광이나 맛집 등을 찾아다니는 표피적인 도시 즐기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 서울의 지도에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노선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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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현

1975년생, 14년차 방송작가, 2년 전세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서울을 뜰 생각을 하지만 19년째 유예하고 있는 중견 서울생활자다. 요리와 정리정돈을 잘하고 맥주, 씨네큐브, 수영장, 효자동을 좋아한다. 게스트하우스, 똠얌꿍 식당, 독신자 맨션처럼 실천 가능성 없는 사업을 자주 구상하며 그나마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일이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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