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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위드 러브> 뉴욕, 서늘한 도시의 자의식을 내려놓다

<로마 위드 러브>와 함께 본 우디 앨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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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가 ‘파리’라는 낯선 배경을 판타지로 풀어냈던 것에 비한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훨씬 더 방랑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속 우디 앨런은 캐릭터 제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과 ‘은퇴는 곧 죽음’이란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이미 너무 쇠약해진 그의 심적 상태를 고백하는 것 같다. 한국나이로 79세,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예술가이지만, 충분히 왜소했던 그의 체구는 더욱 구부정하고 축 늘어져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모순된 감정이 부유하는 서늘하고 이기적인 도시, 뉴욕은 우디 앨런의 영혼을 담아낸 그릇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그의 콤플렉스와 소심한 도시인의 자의식을 수다스러운 재담으로 풀어낸 그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에게 계속 품고 가야 하는 정체성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었다. 그런 그가 뉴욕을 떠났다. 영국, 파리, 스페인에 이어 그가 선택한 도시는 ‘로마’.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앨런의 영화답게 그는 아주 많은 캐릭터를 뿌려놓고 4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 속에 녹여낸다. 편집만큼이나 능수능란한 연출력은 역시 우디 앨런답지만, 뉴욕이라는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했던 그의 전작들에 비한다면 ‘로마’라는 장소는 그 속에서 생겨나는 ‘우연성’을 담아내기 위한 배경이 된다. 그래서일까? 우디 앨런이 2006년 <스쿠프> 이후 다시 배우로 출연한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여전히 낯설고 이물감이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파리’라는 낯선 배경을 판타지로 풀어냈던 것에 비한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훨씬 더 방랑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 속 우디 앨런은 캐릭터 제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과 ‘은퇴는 곧 죽음’이란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이미 너무 쇠약해진 그의 심적 상태를 고백하는 것 같다. 한국나이로 79세,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예술가이지만, 충분히 왜소했던 그의 체구는 더욱 구부정하고 축 늘어져 보인다.


living in New York, leaving New York의 연대기



<돈을 갖고 튀어라>


<애니 홀>

초창기 우디 앨런의 영화는 가벼운 슬랩스틱 코미디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1969년 <돈을 갖고 튀어라>는 코미디 작가 겸 배우로서의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코미디 영화였다. 멍청한 좀도둑의 일생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주인공 버질이 되어 찰리 채플린 식 무성영화의 슬랩스틱을 한껏 보여준다. 이어 70년대 중반까지 그는 <바나나 공화국>, <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 <슬리퍼>, <사랑과 죽음> 등 SF와 시대극, 정치풍자를 버무린 실험적 성격의 코미디영화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 이 영화들에서 우디 앨런은 세상의 불공평함에 관해 불평하는 신경증 환자이자,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왜소한 남자로 등장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캐릭터에 투영시킨다. 그리고 1977년 그에게 오늘 날의 거장이라는 명성을 안겨준 <애니 홀>이 탄생했다. 스탠딩 코미디언이지만 매사에 비관적인 앨비 싱어 역할을 맡은 그는 당차고 쾌활한 여성 애니 홀(다이앤 키튼)을 만난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형을 한 이 영화를 통해 우디 앨런은 ‘뉴욕’이라는 대 도시에서의 지난한 삶을 영화 속에 녹여낸다. 이 영화는 제5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우디 앨런은 미리 일정이 잡힌 재즈 클럽에서의 연주를 위해 시상식에 불참했다는 일화도 남겼다.


<맨하탄>


<한나와 자매들>

<애니 홀>과 시작된 그의 영화 인생은 1980년대를 맞아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코믹한 요소가 전혀 없는 무거운 영화 <인테리어>를 통해 뉴욕 상류층의 버거운 삶을 그려내고, <애니 홀>에 버금가는 영화로 손꼽히는 <맨하탄>에서는 뉴요커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현대 도시인의 신경증을 헤집는다. 그렇게 우디 앨런은 코미디로 한정지어졌던 그의 영화 세계를 변화시켰다. 뉴욕을 벗어난 적이 없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 그였지만, 그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미친 감독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같은 유럽의 시네아스트들이었다. 가장 미국적인 도시 뉴욕에 살면서 유럽의 감성에 그의 장기인 이죽거리는 비관적 코미디를 버무려 낸 <한나와 자매들>을 통해 우디 앨런은 미국 시장보다는 유럽에서 더욱 사랑받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90년대는 우디 앨런의 인생이 스캔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미아 패로와 사실혼 관계를 맺으며 두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한국 출신의 순이 프레빈이었다. 미아 패로는 집에서 순이 프레빈의 누드 사진을 발견했고, 순이 프레빈과 우디 앨런의 근친상간은 폐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를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몰아 세웠다. 그런 개인사적 스캔들도 상관없다는 듯 우디 앨런은 전처럼 매년 한 편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미아 패로와의 마지막 작업이 된 <부부일기><맨하탄 살인사건>,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마이티 아프로디테>, <해리 파괴하기> 등을 통해 그는 여전히 건재한 감독으로 남았다. 그리고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마이티 아프로디테>에는 늘 비관론적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그의 작품에 낙관과 희망이 담기기 시작했는데 순이 프레빈과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한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매치 포인트>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21세기를 맞이해 우디 앨런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2004년 <멜린다와 멜린다>의 미지근한 반응 이후 우디 앨런은 평생 그의 영화의 배경이 된 뉴욕을 떠나기로 하는데,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국, 스페인, 파리, 로마로 이어지는 그의 유럽 방랑기가 시작되었다. 34번째 장편영화이자 해외를 배경으로 한 그의 첫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범죄스릴러 영화 <매치 포인트>였다. 계급 갈등과 섹시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 파격적 섹스 씬과 범죄 묘사는 우디 앨런의 작품이 맞나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웃음기를 걷어낸 도발은 우디 앨런의 오랜 팬들도 21세기의 새로운 관객도 모두 좋아할만한 영화가 되었다. 도발적 매력을 간직한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매치 포인트>, <스쿠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다이앤 키튼과 미아 패로에 이은 우디 앨런의 새로운 ‘뮤즈’가 되었다.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의 장기들을 모두 숨긴 새로운 형식의 영화였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세계가 철학적 사유의 깊이 속으로 심화된 것은 아니다. 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코미디의 형식을 빌어 이죽거리는 그의 태도가, 코미디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냉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영국 런던에서 <매치 포인트>와 <카산드라 드림>, <환상의 그대>를 만든 우디 앨런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만들었고,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를 찍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아름다운 파리의 풍광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뉴욕을 떠난 그가 찾은 일종의 파라다이스처럼 파리의 시내를 그려내며 그의 영화적 감수성의 고향 뉴욕에서 그는 ‘뉴요커’로서의 근본적인 삶을 다룬 그의 전작들과 달리,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2013년 우디 앨런은 파리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한 <블루 자스민>의 촬영을 마쳤다. <로마 위드 러브>를 끝으로 유럽 방랑기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금 뉴욕을 통해 삶을 냉소할 것인지 아니면 확 달라진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것인지 여전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깡마른 노인의 이죽거리는 입술보다 두꺼운 안녕 너머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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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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