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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뒷골목 매력에 푹 빠진 이유

서울의 알려지지 않은 골목 ‘아! 저 골목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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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촌길, 삼청동길, 가로수길, 서촌길, 정동길처럼 서울의 예쁘다는 길도 수집하듯 다녔다. 대개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길이거나 산책하기 좋은 길이거나 예쁘고 화려하거나 이국적이거나 그랬다. 그런데 요즘 빠져 있는 길은 유명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길이다. 아, 이런 취향을 공감받을 수 있을까?


쇼핑, 맛, 호텔, 문화체험 등 저마다 여행을 통해 충족받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거리, 길 같은 게 그렇다. TV나 잡지를 보다가 ‘아! 저기 가보고 싶다’ 감흥이 온다면 그건 지중해를 가르는 요트도, 칠성급 호텔도, 7대 불가사의라는 유적지가 아니라 거리가 주는 특별한 느낌일 것이다. 언제 꼭 들려봐야지 하는 곳도 뉴욕보다는 뉴욕의 미트패킹 스트리트, 런던보다는 런던의 노팅힐, 상해가 아닌 상해의 타이캉루.

물론 북촌길, 삼청동길, 가로수길, 서촌길, 정동길처럼 서울의 예쁘다는 길도 수집하듯 다녔다. 대개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길이거나 산책하기 좋은 길이거나 예쁘고 화려하거나 이국적이거나 그랬다. 그런데 요즘 빠져 있는 길은 유명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길이다. 아, 이런 취향을 공감받을 수 있을까?


국민대 뒤편 청수장 가는 길은 어느 잡지에선가 ‘교토 철학자의 길 찜 쪄먹는 실핏줄 골목’이라는 글을 읽고 찾아간 곳이다. 국민대에서 한규설 고택, 봉국사, 청수장으로 루트를 잡고 걷다보면 달동네를 하나 만난다. 자장면을 배달시켜도 오토바이가 못 올라와 아래까지 내려와 그릇을 받아가야 하는 동네. 그 동네를 걷다보면 여기가 골목인지 남의 집 마당인지 구분이 안 가고, 여기가 끝이겠거니 하고 접어들면 어디론가 또 이어진다. 실핏줄이란 표현은 이때 쓰는 거구나 실감한다.

서울의 재래시장 중 제법 큰 서대문 영천시장의 골목길도 그렇다. 재래시장은 대부분 시장 안에 큰 길을 품고 있고, 그 양 옆으로 가치처럼 골목들이 뻗어 나가 있는데 그 옆길로 빠지면 그게 또 요지경이다. 시장의 번잡함과는 달리 고요하다. 화상이 차린 중국집과 제법 멋 부린 여관처럼 식욕과 육욕이 넘치는 것도 의외.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우지만 매번 미로 같은 그 곳에서 길을 잃고 만다.

효자동 군인아파트 맞은편 길로 들어가면 옥인동 재개발 구역이 나오는데 그 곳에선 시계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중국어 교습소라 써 붙여놓은 청나라 풍의 2층집. 어느 중국인이 어떤 사연으로 이런 구석에 흘러들어와 정착한 걸까, 혼자 상상해본다. 이 일대가 시인 이상 같은 19세기 지식인들이 살던 동네라 그런지 어느 골목에선가 바싹 마른 몸에 퀭한 눈의 문인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

한강 옆 망원동 길도 꽤 좋아하는 길이다. 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망원동엔 유독 국수집과 선술집이 많다. 고된 하루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천 원짜리 노가리 안주와 잔술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곳. 어쩌다 끼니를 놓쳐 국수 한 그릇 시켜도 고작해야 3천 원이다.


이런 허름한 골목, 미로 같은 길에 스스로를 풀어놓으면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걷거나 허우적대며 멍하게 걷는다. 헤매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누군가에게 같이 걷자고 제안하기에 부담스러운 곳에서 오롯이 혼자 헤맨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풍경에 매료되는가 생각해 본다. 서울에선 흔치 않은 골목. 시간의 흐름을 덜 탄 곳. 시간은 앞으로 흐르고 사람의 정서는 거꾸로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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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서울 김지현 저 | 네시간
방송작가 특유의 객관성 있는 담담한 어조로 ‘도시, 서울 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현장성 있게 그리고 있다. 마치 나래이션을 듣는 듯한 느낌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자신을 타인화하여 감정을 한 꺼풀 걷어낸 단조롭고 관조적인 감성도 매력적이다. 여행과 지리적 공간, 풍광이나 맛집 등을 찾아다니는 표피적인 도시 즐기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 서울의 지도에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노선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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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현

1975년생, 14년차 방송작가, 2년 전세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서울을 뜰 생각을 하지만 19년째 유예하고 있는 중견 서울생활자다. 요리와 정리정돈을 잘하고 맥주, 씨네큐브, 수영장, 효자동을 좋아한다. 게스트하우스, 똠얌꿍 식당, 독신자 맨션처럼 실천 가능성 없는 사업을 자주 구상하며 그나마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일이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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