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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 도어스(The Doors)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광인의 음악 체제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의 숭고한 의식(儀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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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儀式)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것으로 짐 모리슨은 ‘청각적이면서 또한 시각적인 하나의 강력한 심리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음악가들은 때로 광인(狂人)을 자처합니다. 음악 또한 자기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인 만큼, 이러한 자세는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예술가들에게만큼은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지요. 여기,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짐 모리슨이라는 광인의 음악이 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명반은 도어스의 대표작, < The Doors >입니다.


도어스(Doors) < The Doors > (1967)

그들의 노래는 문학적이며 간결하나 무섭다. 그들은 곡 형식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팝에서 시가(詩歌)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짐 모리슨(싱어)과 로비 크리거(기타), 레이 만자렉(오르간), 존 덴스모어(드럼)의 4인조 그룹 도어스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휘몰아친 히피즘과 반전, 그리고 록 혁명이라는 사회적 영향과 결탁한 독특한 컬러의 사운드로 록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것의 집적된 결과물이 바로 1967년 1월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이었다. 기존 가치의 총체적 전환을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로 주창한 히피즘의 우산 아래 도어스가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접근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왜곡된 현실사회에 대항했다. 도어스의 음악이 무서웠다 함은 바로 이 점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히피들의 현실참여 대신 ‘현실탈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도어스의 음악이 정치적이었으면서도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이 같은 방식 때문이었다.

“우리 사랑은 화장용 장작더미가 되는 거야. 자 어서 와 내 불을 밝히라구. 이 밤을 불지르는 거야” (「Light my fire」)

현실 탈출을 통해 그들은 일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 세계’로 향하고자 했다. 짐 모리슨은 당시 “세상에는 그 진상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도어스”라고 말했다. 도어스라는 그룹 이름이나 음악 모두가 그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 나아가는 문이었고, 그 문을 열면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리 곡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에서 ‘the other side’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문제시된 곡 「The end」은 ‘알려진 사실’만이 존재하는,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현실탈출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11분에 걸쳐, 아들이 어머니에게 품는 이성애,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쇼킹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패륜아라는 지탄도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이 심안(心眼)에 포착된 제임스 조이스적인 팝’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는 이 곡을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록 레코딩의 가장 완벽한 순간 중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샤먼(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빠져 들어갔다”고 술회했다.


도어스(왼쪽부터 John Densmore, Robby Krieger, Ray Manzarek, Jim Morrison) [출처: 위키피디아]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儀式)의 산물 그 자체였다. 그것으로 짐 모리슨은 ‘청각적이면서 또한 시각적인 하나의 강력한 심리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짐 모리슨의 의식 거행은 때로 오만하고 광기가 넘쳐흘렀으며 독을 토해내듯 거침이 없었다. 그의 보컬은 차라리 한 마리 짐승에 가까웠다.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Light my fire」, 「Take it as it comes」 등의 앨범 대표곡들이 그 전형인데, 거기에 나타나는 짐 모리슨의 야수적 외침은 바로 기존 사회에 대한 통렬한 절규다.

하지만 곡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자칫 한 가지 틀에 곡조를 가두지 않을 만큼 도어스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했다. 「The crystal ship」는 웬만한 발라드 뺨칠 만큼 부드러운 선율을 획득하고 있고 「I looked at you」는 마치 미끄럼을 타는 듯 곡 진행이 유연하고 순조롭다.

이와 함께 블루스맨 윌리 딕슨의 작품이며 하울링 울프의 것으로 유명한 「Back door man」으로 도어스는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가 흑인 블루스에 있음을 밝힌다. 「Alabama song」는 서사극을 확립시킨 마르크시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베를린 지하운동이 제재(題材)가 된 곡으로, 도어스는 동명의 노래에 그들의 대담성과 이데올로기적 색깔을 깔아t다.

도어스 특히 짐 모리슨이 당시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범 전체적으로는 마약음악, 이른바 애시드 록(acid rock)의 느낌이 강하다. 레이 만자렉의 반복적이고 잘 훈련된 오르간 연주는 한층 사이키델릭한 환상을 고조시킨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Light my fire」는 당당히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앨범도 밀리언 셀링을 기록했다. 그리하여 히피의 축제로 상징성을 부여받은 기간인 1967년 여름, 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수놓은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도어즈와 그들의 최고 걸작인 이 앨범은 젊음의 사회변혁 욕구와 반전이 일궈낸,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대상황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그 같은 시대성을 간과한 채 이 앨범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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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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