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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으로 딸 잃은 경찰, 가해자를 납치 살해 암매장 - 『쿠퍼 수집하기』

사형제도를 버리고 개인의 복수를 선택한 사람 법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가해자를 처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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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반대에 있는, 남반구의 미스터리는 어떨까?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의 『기린의 눈물』 등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나오는 미스터리는 북유럽의 미스터리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날씨만 지독하게 더울 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동일하다.

북유럽 미스터리, 한국에서 인기

 

요즘 북유럽 미스터리가 잔잔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요 뇌스베의 『스노우맨』, 안네 홀트의 『데드 조커』, 로테 하메르와 쇠렌 하메르의 『숨겨진 야수』 등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작품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다. 기존에 출간된 발란더 형사 시리즈의 헤닝 만켈과 『무덤의 침묵』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등도 중요한 작가들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북유럽 미스터리 전체에 깔려있는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경제, 사회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들인 북유럽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사회’는 없다는 암울한 생각도 든다.


그러면 북유럽의 반대에 있는, 남반구의 미스터리는 어떨까?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의 『기린의 눈물』 등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 나오는 미스터리는 북유럽의 미스터리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날씨만 지독하게 더울 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동일하다. 호주 작가 피터 템플의 『브로큰 쇼어』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작은 마을에 감추어진 추악한 비밀을 파헤친다. 아무리 자연이 웅대해도, 인간의 어둠까지 대신 삼켜줄 수는 없다. 뉴질랜드 작가 폴 클리브의 『쿠퍼 수집하기』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한가하고, 어디에서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뉴질랜드의 화사한 풍경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대도시의 끔찍한 광경들이 그대로 재현된다.

 

남반구 미스터리, 뉴질랜드의 『쿠퍼 수집하기

 





『쿠퍼 수집하기』의 배경은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하지만 누군가는 크라임처치라고 부르는 곳이다. 범죄 심리학 교수 쿠퍼가 출근길에 괴한에게 납치된다. 지하 감옥에 갇힌 그에게 에이드리언이라는 남자가 말한다. 당신의 나의 컬렉션이라고.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여대생 엠마 그린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주차장에서 납치된다. 엠마의 아버지인 도노반 그린은 전직 경찰 테이트에게 엠마를 찾아달라고 부탁, 아니 명령을 한다.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복잡한 과거가 있었다.


테이트는 음주운전자가 낸 사고 때문에 딸을 잃고, 장애가 생긴 아내까지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불행을 겪었다. 테이트는 가해자를 법의 처분에 맡기지 않았다. 그를 납치하여 총으로 쏴죽이고, 암매장했다. 테이트는 폭주했고,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1년 전, 테이트는 도시를 횡행하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가 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때로는 무고한 사람마저. 결국 테이트는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가 한 소녀를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했다. 그를 나락으로 빠트린 사건과 동일한 잘못을, 스스로 자행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살아난 소녀의 이름은 엠마 그린이었고, 테이트는 감옥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제 도노반이 찾아와, 자신의 딸 엠마를 찾아달라고 명령한다.

 

기본 추리소설 문법에 충실, 사형제도는 범죄를 응징하기 적절한가


폴 클리브는 『쿠퍼 수집하기』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죄책감으로 가득한 테이트가 실종된 엠마를 찾는다. 정신병력이 있는 에이드리언이 쿠퍼를 납치했다. 테이트의 동료였던 슈로더 형사는 테이트에게 멜리사란 여인을 추적해달라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마의 애인이자, 그와 함께 살인을 저질렀던 여인을.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세 개의 사건은 사실 대단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매듭을 풀면 다음 사건이 등장하는 것처럼, 테이트는 엠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쿠퍼와 멜리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쿠퍼는 범죄 심리학 교수다. 그는 한때 정신병원에 갇힌 범죄자들을 인터뷰하여 책을 쓰기도 했고, 살인범들의 기념품이나 물품들을 모으기도 한다. 에이드리언은 그런 쿠퍼를 ‘수집’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폴 클리브는 서술 트릭도 슬쩍 끼워 넣고, 여기저기 단서를 놓아두면서 독자가 점점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한다. 『쿠퍼 수집하기』는 이야기의 짜임새만으로도 무척 흥미롭고 긴장 넘치는 미스터리다.


그러면서 폴 클리브는 ‘사형제도’와 ‘복수’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테이트는 TV에서 사형제도 부활에 대한 논쟁을 지켜본다. ‘죽음이 희생자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줬다면, 그들을 죽인 살인범들에게도 동일한 호의를 베풀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말만 본다면, 폴 클리브는 사형, 개인적 복수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결론은 무리가 있다. 테이트는, 경찰이면서도 개인적인 복수를 했던 인물이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상습적인 음주운전을 하다가 그의 딸을 죽인 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렸다. 오래 전, 에이드리언이 갇혀 있던 정신병원에, 딸을 잃은 한 남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남자의 딸을 죽인 이는, 법정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서 정신병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를 늘 떠들어대곤 했다. 그를 싫어했던 이들은 그 남자를 병원 지하실로 끌고 갔고, 딸을 잃은 남자는 한 시간 뒤 지하실에서 나와 돌아갔다. 그 후 누구도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 『쿠퍼 수집하기』에는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한다. 때로는 두 가지를 모두 겸하기도 한다. 테이트도 그렇고, 멜리사에게도 끔찍한 과거가 존재한다. 세상에는 끔찍한 트라우마 때문에 때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티븐 킹을 존경하며 호러작가가 되고 싶었던 폴 클리브는 존 더글러스의 『마인드 헌터』를 읽으면서 범죄소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진정한 호러는 범죄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관광엽서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크라이스트처치의 이면에 존재하는 끔찍한 풍경, 어둠이 자신을 유혹한다고 말한다. 『쿠퍼 수집하기』는 폴 클리브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에 깃든 ‘어둠’이 무엇인지 파고든다. 아직 깊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 어둠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솜씨만은 탁월하다. 테이트와 쿠퍼, 에이드리언의 마음은 물론 도노반이나 멜리사 등 조연들의 캐릭터도 이채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엠마 그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가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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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쿠퍼 수집하기

<폴 클리브> 저/<하현길> 역14,220원(10% + 5%)

『양들의 침묵』(1988), 『살인자들의 섬』(2003),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2004) 그리고 2011년, 타락한 도시와 악몽 같은 범죄가 놀라운 소설로 되살아나다! 한동안 국내에서는 노르웨이나 스웨덴 심지어 아이슬란드까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부근의 북유럽 스릴러들이 주목받았다. 반면, 뉴질랜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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