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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자녀의 말에 상처 받는다

나는 아이 편에 섰다 벌과 칭찬 사이에서 외줄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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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에겐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지적하고 언급하면서 주의를 주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런 행동들은 단지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것에 불과했다. 즉,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은 민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저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더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시선을 한 번 더 받고 아이들 사이에서 우뚝 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남의 나쁜 점 꾸짖기를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그 말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착한 일 가르치기를 너무 높은 것으로써 하지 말라.
그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


-채근담


“신문 찢기 놀이 어땠니? 속이 후련하지?”
“아니요. 재미없었어요!”


교실에서 실컷 재미있게 열을 내며 놀고 나서 어땠는지 물어보면 꼭 부정적으로 대답하는 민규. 제가 탐탁지 않아 하는 활동은 표가 나게 ‘싫어요. 재미없어요. 이거 왜 해요. 난 안 할래요’를 연발한다. 이처럼 머뭇머뭇 몸을 빼는 듯하다가도 뛰어들어 신 나게 활동한 후, 막상 끝나고 나서는 또 큰 소리로 ‘진짜 쓸데없는 거 한다!’라고 말하는 녀석이 꼭 있다.




“사실 그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나를 봐달라’는 것이다.”

민규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나를 사랑해달라는 말을 그렇게 한다. 처음에 그걸 모를 땐 화가 참 많이 났다. 기껏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나름 이것저것 세심하게 준비물도 챙겨 어렵게 시간 내서 놀이를 준비했는데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힘도 빠지고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물론 때때로 너무나 혈기 왕성한 교사가 지나친 열정을 쏟아붓고선 아이들이 좋아하길 강요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민규와 같은 반응은 교사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을 때 나타난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더구나 가정에서 애정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한 아이들은 모범이 되는 행동이건, 눈총을 받는 행동이건 그렇게 해서 교사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마주치며 반응해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민규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므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혼자 학원을 돌고 도우미 아줌마와 저녁을 먹는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고 완벽하길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칭찬을 받기 위해 마음의 틈새를 노린다.

그러다 칭찬받을 일이 마땅히 없을 때는 어김없이 과장된 행동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고, 친구들의 생각을 심하게 부정하기도 하며, 큰 소리로 억지웃음을 웃어 수업을 방해한다. 처음엔 그런 행동들이 너무나 싫었다. 무엇보다 꼭 내가 앞에 있을 때만 골라서 그러는 것 같아 화가 더 많이 났다. 따끔하게 야단을 친 적도 있고, ‘상벌 스티커’를 활용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교실에서 해볼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다 써봐도 민규는 변하지 않았다. 심할 땐 다른 반 아이나 선생님한테도 함부로 굴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오기도 했다. 그럴 땐 얘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규가 운동장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솔직히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그 옆에 앉아 물었다.

“민규야, 왜 혼자 앉아 있어? 집에 안 가?”
“엄마가 오기로 했어요. 우리 엄마 아주 유명한 회사 다녀요. 선생님, 그 회사 알아요?”
“그래? 근데 지금은 엄마가 회사에 계실 시간 아니니?”
“…….”


민규는 엄마가 해가 있는 밝은 낮에 데리러 오길 바랐나 보다. 직책도 높은데다 회사일이 바빠 학교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엄마. 민규는 그런 엄마를 참 많이도 기다린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던진다.

“선생님…. 우리 엄마랑 얼굴이 많이 닮았어요.”



그러고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발딱 일어나 교문 쪽으로 뛰어간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보는 앞이면 더 그렇게 과장된 행동을 했던 거구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민규는 나를 보면서 엄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잠깐 얼굴 보고 자기 전에 잠깐 보는 엄마가 아닌, 하루 종일 함께 있고 같이 놀고 느긋하게 점심도 먹고 칭찬도 해주고 야단도 치는 그럼 엄마를 원했을 것이다.”


엄마가 선생님처럼 늘 함께 있어주길 바랐던 게 틀림없다. 그렇다. 나는 이 아이에게 그런 엄마 역할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결핍을 느끼고 있는 아이들은 그것을 채워줄 사람과 엄마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민규에게는 엄마와 선생님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선생님인 나와 엄마가 동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아이에겐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지적하고 언급하면서 주의를 주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런 행동들은 단지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것에 불과했다. 즉,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은 민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저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더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시선을 한 번 더 받고 아이들 사이에서 우뚝 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 뒤로 나는 민규의 좋은 점을 열심히 찾았다. 무턱대고 칭찬하는 일은 더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한쪽 촉수는 늘 그 아이에게 꽂고 지냈다. 그러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속에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발견하면 그 점을 크게 칭찬해주었다. ‘필통 정리 참 가지런히 잘했네. 민규 너 아까 새롬이한테 고맙다고 했지? 네 목소리 정말 좋더라’ 등 아주 사소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행동까지 일일이 다 찾아냈다.

반면 아이가 보이는 과장된 행동에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쳤다. 또 부모님 상담도 시작하고 그날그날 민규의 행동을 문자나 메일로 말씀드렸다. 민규의 행동에 대해 묻고 따지고 다그치기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맛있는 반찬에 밥해 먹여주시라고 당부하며. 엄마와의 관계에서 결핍을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오직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해결 방법이다. 이것은 아주 명확한 해결 고리이다.

그러기를 일주일쯤 했을까? 민규의 과잉행동이 눈에 띄게 없어졌다. 모범생이 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른 행동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 역시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행동이겠지만, 어쨌든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변화를 만들면서 조금씩 커나간다. 적어도 친구들과 교사에게 눈총 받지 않고 자존감을 갖춘 긍정적인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소년원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그렇다. 모두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큰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좀 더 눈에 잘 띄고,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시키고 싶어 문제행동을 보인다. 그냥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함께 풀어주면 이내 가라앉을 수 있는 문제인데, 윽박지르고 벌주고 매몰차게 내쳐버리니 아이는 더 독기를 품게 된다. 지은 죄까지 무조건 연민으로 감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죄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한다.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전에 그 아이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벌을 다 받고 나서는 어떻게 안아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그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몫이다.”


몸과 마음의 문제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영유아, 초기 청소년들에게 쓰는 기법은 네 탓이 아니라고 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자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영영 깊은 우울과 문제행동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그 시기 아이들에게는 ‘너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 학교 혹은 사회 때문’이라고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 스스로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다. 이처럼 문제행동이나 과잉행동이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도 달라져야 한다. 그 정도에 따라 아이에게 어떤 벌을 주어야 할지, 어떤 칭찬을 해줘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벌이 무조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벌도 있다. 칭찬 또한 마찬가지다. 덮어놓고 칭찬만 하는 일은 아이에게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항상 아이의 상황과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고려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도 잘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의 과제이며, 미뤄두거나 어물쩍 넘겨서도 안 되고 지금 반드시 꼭 행해야 하는 의무란 것도 안다.




편집자의 말

아이는 자신의 말에 어른이 상처 받는다는 걸 모른다. 사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고통도 크지만, 아이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도 엄마에겐 큰 상처이다. 그러나 아이의 부정적인 말, 과장된 행동의 목적은 어른들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봐달라’는 표현을 그렇게 할 뿐이다. 따라서 괘씸하다고 생각하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의 말에 상처 받기보단 ‘이 아이가 사랑이 부족하다고 떼를 쓰고 있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나쁜 행동에 대한 죗값은 반드시 치르게 하되 왜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벌을 받은 이후로는 어떻게 안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 옆에서 지켜보며 다독여주고 맛있는 반찬에 밥 먹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엄마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한때 우리도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고 반항하던 소녀였음을 인지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자 할 때, 아이들이 비로소 손을 내미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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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립 초등학교, 대안학교, 기간제 교사, 소년원 상담교사 등을 거치면서 결국 맘과 쌤은 하나임을 깨닫는다. 가끔은 엄마란 이름에서, 교사란 이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 자신도 끊임없이 키워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꿈을 꾸는 엄마가 진정 행복한 엄마가 되는 길임을 피력한다. 이 책은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선 ‘진정한 나를 찾아 아이와 함께 꿈을 꾸고 부대끼며 성장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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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란

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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